“이제 무엇을 내려놓으시겠습니까?”

곰 한 마리가 빈 수레를 발견했다. 길에서 쓸 만한 물건을 만날 때마다 하나씩 주워 담았다. 수레가 무거워질수록 곰의 허리는 굽었다. 처음에는 하늘을 보고 걷던 곰이 어느새 땅만 보며 수레를 끌었다.
나무 위 종달새가 외쳤다. “피해! 나무가 쓰러져!”
곰이 고개를 들었다. 수레는 나무에 깔려 부서졌지만 곰은 살아남았다. 앙드레 프리장의 그림책 《곰과 수레》 이야기다.
수레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었을까. 재산과 명예일 수도 있다. 자식에 대한 기대, 버리지 못한 직함, 오래된 원망일 수도 있다. 그림책은 설명하지 않는다. 굽은 곰의 등과 부서진 수레를 보여줄 뿐이다.
당신은 지금 어떤 수레를 끌고 있습니까?
김영아 그림책심리성장연구소장도 오랫동안 자기 수레를 끌었다. 어린 시절 외모 때문에 조롱 받았고, 초등학생 때는 달리는 기차에서 떨어져 크게 다쳤다. 그가 붙잡은 것은 공부였다. 공부를 잘하면 무시당하지 않았다. 공부는 상처 입은 아이를 지켜주는 갑옷이었다.
세월이 흘러 그는 잘나가는 논술 강사가 됐다. 그리고 어린 딸의 수레에도 자신을 구해준 공부를 차곡차곡 실었다. 일곱 살 딸의 머리카락이 빠지기 시작했다. 정신과 치료가 필요했다. 김 소장은 울며 딸 앞에 앉았다. “엄마가 너를 사랑하는 딸로 보지 않고, 관리하는 학생으로 봤어. 미안해.”
그날부터 그의 길은 국문학에서 상담심리학으로 꺾였다. 글과 그림이 사람의 마음을 여는 순간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사람에게 “무엇이 힘드세요?”라고 물으면 입을 닫을 때가 있다. 그러나 그림 속 곰을 보며 묻는다. “저 곰은 왜 저렇게 힘들어 보일까요?” 그러면 자기 이야기가 나온다. “내가 저 곰 같아요.”
김 소장은 이를 당구의 ‘3쿠션’에 비유한다. 상처를 정면으로 건드리지 않는다. 그림과 이야기를 한 번 거쳐 마음에 닿는다. 같은 그림 앞에서도 누구는 부모를 보고, 누구는 직장을 보고, 누구는 오래전의 자신을 본다.

심리학에서는 책과 등장인물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감정을 표현하며 새로운 관점을 얻는 과정을 ‘독서치료’ 또는 ‘독서치유’라고 부른다. 어른들은 아이보다 많이 안다. 그래서 자기 마음도 잘 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하루 종일 머리를 쓰면서도 어깨가 굳었는지, 숨이 가쁜지 모른다. 자신이 슬픈지, 무엇을 원하는지도 잊고 산다.
이제 무엇을 내려놓으시겠습니까?
누구에게나 각자의 수레가 있다. 오래된 후회, 인정받고 싶은 마음, 자식에 대한 기대, 버리지 못한 직함과 체면이 그 안에 실려 있다. 우리는 그것을 왜 끌고 가는지도 모른 채 땅만 보며 걷는다.

때로는 두꺼운 심리학 책보다 얇은 그림책 한 권이 먼저 고개를 들게 한다. “이제 무엇을 내려놓으시겠습니까?” 곰이 부서진 수레 앞에서 고개를 들었다. 푸른 하늘이 거기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