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준 칼럼] 흔들리는 마음, 가라앉히려면…

요즘 사람들의 마음엔 기쁨보다 불안·분노·후회·자책감 같은 감정이 더 자주 찾아온다. 어떤 감정은 하루 종일 머릿속 한 귀퉁이에 남아 있고, 어떤 감정은 불쑥 들이닥쳐 마음을 뒤흔든다. 마음이 흔들리면 몸도 덩달아 요동친다. 심장이 뛰고, 가슴이 답답해지고, 뒷목이 뻣뻣해지고, 잠은 달아난다. 이게 며칠, 몇 주 이어지면 결국 몸과 마음의 병으로 번진다.
문제는 이 감정들을 의지나 생각으로 다루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힘들다. 그래서 지친다.
사람들이 대응하는 두가지 방식
첫째, 맞서 해결하려 든다. “왜 이런 마음이 들지?”, “어떻게 해결할까?” 머리로 원인을 찾고, 논리로 해결하려 한다. 하지만 이 방식은 종종 문제를 더 꼬이게 만든다. 인간관계로 비유하자면 내가 생각하는 원인(A)과 상대가 느끼는 원인(B)이 다를 때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지금 느끼는 감정의 진짜 근원은 종종 마음 속 깊숙한 곳에 저장된, 무의식의 기억일 때가 많다. 그러니 의식(생각)으로 해결하려 하면 풀리지 않는 것이다.
두번째, 회피한다. 마음을 돌리려 술을 마시거나, 운동을 하거나, 바쁘게 움직인다. 효과가 있는 듯하지만, 근본은 남아 있다. 무의식 속에 남은 감정은 언젠가 엉뚱한 순간에 튀어나와 또 마음을 흔든다. 나도 오래도록 이 방식으로 살아왔다. 맞서 싸우거나, 잊으려고 애쓰거나, 반대되는 감정으로 덮어버리려 했다. 그러나 미해결 감정들은 결국 분노∙불면·우울·루미네이션으로 되돌아왔다.
마음 내버려두기
그러다 알게 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 ‘바라보기’다. 이 지점에서 명상과 심리학이 만난다. 어느 날 불쾌한 감정이 올라왔을 때 나는 이렇게 해본다. “아. 지금, 내가 이런 감정을 느끼고 있구나.” “지금, 이런 생각이 지나가는구나.”
딱 여기까지. 그 이상 나아가지 않는다. 판단도, 분석도, 실랑이도 없다. 그저 바라본다…그러면 신기한 일이 일어난다. 조금 뒤 그 감정이 슬며시 사라지는 것이다. 또 다른 생각이 떠오르고, 그것도 그대로 흘러간다. 마치 흙탕물을 그대로 두면 바닥에 흙이 가라앉고 물이 맑아지듯이 마음이 맑아지게 된다. 이것이 위빠사나 명상의 핵심이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이 강조한 “직면(confrontation)”의 원리다.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그대로 보게’ 하면 감정은 힘을 잃고 흘러간다.

스즈키 순류가 한 말처럼
1960년대 미국에서 선(禪)수행의 돌풍을 일으킨 스즈키 순류 선사는 이렇게 표현했다. “양이나 소를 넓은 들판에 풀어놓아야 잘 다스릴 수 있듯… 생각도 내버려두라. 저절로 가게 두라.”
비틀즈의 명곡 「Let it be(내버려 둬)」도 이 가르침에서 나왔다. 명상으로 마음을 내려놓았을 때 얻은 깨달음이다.
그저 한발짝 떨어져 바라볼 때 나오는 평정
마음을 통제하려는 순간, 마음은 더 거세진다. 하지만 바라보기 시작하면 마음의 주인은 다시 ‘나’가 된다. 감정은 밀어낼수록 커지고, 바라볼수록 작아진다. 생각은 붙잡을수록 복잡해지고, 흘려보낼수록 단순해진다.
이제 마음이 흔들릴 때, 나는 예전처럼 씨름하지 않는다. 그저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본다. 그러면 어느새 고요가 찾아오고, 평정이 생기고, 때로는 해답까지 자연스레 떠오른다. 물론 하루아침에 이뤄지지는 않는다. 반복 훈련과 마음 속 깨달음이 필요하다.
영국 옥스포드대와 캐나다 토론토대, 미국 매사추세츠대는 이에 착안한 치유프로그램을 만들어 우울증 재발률을 절반 이하로 떨어뜨렸다. 그것이 ‘마음챙김 기반 인지치료(MBCT: Mindfulness—Based Cognitive Therapy)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