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항로와 군 병원의 택배, 중독은 어떻게 이동해 왔는가

제국의 항로와 군 병원의 택배…중독은 어떻게 문명을 따라 이동하는가
얼마 전 나는 제40회세계 마약퇴치의 날을 맞아 열린 ‘마약중독 재활을 위한 유관기관 실무자 역량강화교육’에 참석하였다. 경상대학교 심리학과 윤상연 교수는 국내 마약범죄의 심리학적 이해를 설명하며, 최근 하수처리장에서 마약 대사산물이 검출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소개하였다. 해외 연구에서는 요일에 따라 검출되는 성분도 다르다고 했다. 어떤 도시는 주말이면 코카인과 MDMA 성분이 증가하고, 어떤 곳은 평일에도 메스암페타민 계열이 일정하게 검출된다고 한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문득 오래전 런던 그리니치의 영국해사박물관(National Maritime Museum)에서 보았던 전시를 떠올렸다.
동인도회사(East India Company) 전시실 한편에는 제국의 무역 항로와 함께 아편중독자의 사진이 크게 걸려 있었다. 당시 영국 의회 내부에서도 아편 수출에 대한 격렬한 찬반 논쟁이 있었지만, 결국 국가의 이익과 무역수지를 위해 수출이 지속되었다는 설명도 함께 있었다.
나는 그때 놀랐다. 단지 아편무역의 역사 때문만이 아니었다. 제국의 흑역사를 공공 박물관 안에 비교적 가감 없이 전시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많은 나라는 승리와 번영을 전시하지만, 타인의 파괴 위에 세워진 번영까지 함께 드러내려 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곳에는 동인도회사의 영광 옆에 중독자의 얼굴이 놓여 있었다.
생각해 보면 중독은 늘 문명의 발전과 함께 이동해 왔다. 배가 빨라지면 마약도 더 멀리 이동했고, 무역이 확대되면 중독 역시 국경을 넘었다. 오늘날에는 컨테이너선과 국제우편, SNS와 암호화 메신저가 과거의 범선을 대신한다. 형태는 바뀌었지만 인간의 취약성을 상품화하는 구조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내가 근무하는 군 병원에서는 외부 우편물을 하루 두 차례 정해진 시간에만 받을 수 있다. 보안책임자 앞에서 택배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한 뒤 가져가야 한다. 몇 년 전 입원환자가 택배로 마약을 배송받다 적발된 이후 생긴 절차라고 들었다.
처음에는 꽤 불편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곧 그것이 단순한 행정 절차 이상의 의미라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은 원래 인간을 회복시키는 공간이다. 그런데 이제 병원 안에서도 ‘유입 차단’과 ‘감시’가 중요한 기능이 되었다. 제국의 항로와 군 병원의 택배 사이에는 20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지만, 인간은 여전히 중독을 운반하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 전 한 경찰 고위 관계자는 국내 마약사범 증가와 관련해 “5배밖에 늘지 않았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여 논란이 되었다. 나는 그 표현을 듣고 적잖이 놀랐다. 아마 행정적 맥락에서는 방어적 설명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의료 현장에서 인간의 손상을 보는 사람에게 ‘5배’는 결코 작은 숫자가 아니다.
중독은 단지 개인의 일탈이 아니다. 그것은 가족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공동체의 기능을 약화시키며, 의료와 사법 체계 전체에 장기적인 부담을 남긴다. 외과의사인 나는 육체의 손상을 치료해 왔지만, 중독은 종종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인간을 무너뜨린다. 한 사람의 충동과 의존이 가족 전체를 잠식하는 과정은, 심한 외상만큼이나 오래 흔적을 남긴다.
사실 나는 오래전 가까운 사람의 도박중독으로 힘든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그 경험 때문에 중독정신의학회에도 가입하였다. 약물과 도박은 다르지만, 인간의 보상체계와 충동조절이라는 측면에서는 서로 닿아 있다. 많은 중독자들은 단순히 쾌락을 좇기보다 불안과 공허, 외로움과 스트레스로부터 도망치려 한다.
그래서 나는 하수처리장에서 검출된 마약 대사산물 이야기가 단순한 과학 뉴스로 들리지 않았다. 그것은 어쩌면 한 사회의 불안과 고립, 야간 문화와 스트레스가 녹아든 집단적 그림자처럼 느껴졌다.
역사는 반복된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완전히 같은 모습으로 반복되지는 않는다. 과거의 아편선은 오늘날 국제 특송과 온라인 거래로 바뀌었고, 제국의 무역회사는 글로벌 범죄 네트워크와 플랫폼 경제로 변했다. 다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인간 사회는 언제나 누군가의 취약성을 시장으로 바꾸려는 유혹을 받아 왔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리니치 박물관의 전시가 인상 깊었던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강한 사회란 단지 경제력이나 군사력이 강한 사회가 아니라, 자신의 그림자를 숨기지 않고 직면할 수 있는 사회인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 역시 언젠가는 후세에게 지금의 중독 문제와 대응 방식을 어떻게 설명하게 될지를 스스로에게 물어야 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