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칼럼

워터게이트 사건의 교훈, “선관위의 ‘우연이다’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의 신뢰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수학은 확률을 말하지만, 정치는 신뢰를 말한다

수학자는 확률과 통계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본다. 따라서 동일한 득표수나 유사한 패턴이 우연히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할 수 있다. 수학적으로만 본다면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정치는 수학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정치에는 국민의 신뢰라는 요소가 존재한다. 아무리 통계적으로 설명 가능한 현상이라 하더라도 국민이 그 과정을 신뢰하지 못한다면 논란은 사라지지 않는다.

만약 선거관리기관이 오랫동안 국민적 신뢰를 충분히 얻지 못했고, 인사·채용·감사·전산관리 등을 둘러싼 논란이 반복되어 왔다면, 수학적으로는 우연일 수 있는 현상도 국민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

나는 특정한 결론을 미리 정해놓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조작이라고 단정하지도 않는다. 다만 광주·전남의 여러 지역에서 나타난 이례적인 현상에 대해 국민이 의문을 제기한다면, 선관위는 “우연이다”라는 한마디로 끝낼 것이 아니라 국민이 납득할 수 있도록 자료와 근거를 공개하며 설명할 책임이 있다고 본다.

민주주의는 결과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 결과에 대한 신뢰, 과정에 대한 신뢰, 관리기관에 대한 신뢰가 함께 뒷받침되어야 한다.

지금 국민이 제기하는 문제의 본질은 숫자 자체보다 선관위에 대한 신뢰의 문제다. 선관위가 충분한 신뢰를 얻고 있었다면 우연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일도, 신뢰가 흔들린 상황에서는 큰 의혹으로 번질 수 있다.

역사를 돌아보면 처음에는 “그럴 리 없다”, “우연이다”, “문제없다”라고 했지만, 나중에 사실관계가 밝혀진 사례들이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워터게이트 사건은 처음에는 단순 절도 사건으로 여겨졌지만 결국 대통령 사임으로 이어졌다. 드레퓌스 사건 역시 국가기관의 판단이 절대적 진실처럼 받아들여졌으나 결국 누명이 밝혀졌다. 국가기관의 불법 도청 사건들도 오랫동안 부인되다가 뒤늦게 사실로 확인된 경우가 있었다. 폭스바겐 배출가스 조작 사건은 기술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설명이 반복되었지만 결국 조직적인 조작이 드러났다. 엔론 회계 부정 사건 또한 시장과 전문가들이 정상으로 평가하던 기업이 거대한 부정의 실체를 드러낸 사례였다.

물론 이러한 사례들이 지금의 상황과 동일하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민주주의 사회에서 중요한 원칙 하나를 보여준다. 의문을 제기하는 것과 결론을 미리 단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라는 점이다.

나는 결론을 정해놓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국민이 의문을 제기한다면 국가기관은 설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민주주의이고, 그것이 국민주권의 정신이다.

결국 이번 논란의 핵심은 우연이냐 아니냐가 아니다. 국민이 왜 선관위를 믿지 못하게 되었는가, 그리고 선관위는 그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의 문제다.

수학은 우연을 설명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는 신뢰를 설명해야 한다. 이번 논란의 본질은 숫자가 아니라 선관위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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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

3선 국회의원, 대통령비서실 정무·홍보수석 역임, 전 새누리당 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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