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문화

‘수백 번 접힌 종이’…아버지의 6.25전사통지서를 평생 품은 딸

최석순 일병 전사통지서는 정부가 만든 행정문서였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한 가족의 유품이 되었다. 처음에는 믿을 수 없어 몇 번이고 펼쳐 보았을 것이다. 친척이 찾아올 때마다 다시 꺼내 보였을 것이고, 제삿날이면 또다시 펼쳐 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손을 타며 종이는 늙어 갔다. 전쟁은 사람만 늙게 하는 것이 아니라 종이도 늙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황건>

부산 유엔평화기념관에서 나는 가장 오래된 상처를 만났다. 그것은 총상이 아니라, 수백 번 접혔다 펴진 종이 한 장이었다. 며칠 전 정전협정 70주년을 맞아 열린 ‘유엔참전용사의 흔적을 기억하다’ 특별전을 찾았다. 6·25전쟁 소장품 모으기 캠페인을 통해 참전용사와 유가족들이 기증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군복과 훈장, 사진과 편지 사이에서 내 발길을 붙든 것은 낡은 전사통지서 한 장과 그 곁에 놓인 유가족수급증서였다.

전사통지서

모서리는 헤어질 만큼 닳아 있었고, 접힌 자국은 종이섬유까지 마모시켜 놓았다. 흐릿한 글씨 사이로 ‘전사통지서’라는 제목과 ‘일등병 최석순’이라는 이름만 겨우 읽을 수 있었다. 검은 원형 직인과 붉은 사각 직인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나는 한동안 그 유리 진열장 앞을 떠나지 못했다. 내 시선을 붙잡은 것은 글자가 아니었다. 수없이 접혔다 펴진 흔적이었다.

이 종이는 정부가 만든 행정문서였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한 가족의 유품이 되었다. 처음에는 믿을 수 없어 몇 번이고 펼쳐 보았을 것이다. 친척이 찾아올 때마다 다시 꺼내 보였을 것이고, 제삿날이면 또다시 펼쳐 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손을 타며 종이는 늙어 갔다. 전쟁은 사람만 늙게 하는 것이 아니라 종이도 늙게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석순 일병 유가족수급증서

그 옆에는 유가족수급증서가 놓여 있었다. 국가가 전사자의 유족에게 연금과 급여를 지급하기 위해 만든 문서였다. 유가족상황에는 부, 모, 처, 그리고 장녀의 이름이 차례로 적혀 있었다. 전사자는 일등병 최석순.

전시 설명을 읽다가 나는 잠시 숨을 멈추었다. 기증자는 최영애였다. 유가족수급증서에 장녀로 기록되어 있던 바로 그 이름이었다. 아버지를 잃은 어린 딸은 성장하여 그 문서를 평생 간직했고, 70여 년이 흐른 뒤 유엔평화기념관에 기증하였다.

그 순간 나는 두 장의 종이를 새롭게 읽게 되었다. 전사통지서는 국가가 가족에게 보낸 문서였다. 그러나 유가족수급증서는 가족이 평생 붙들고 살아야 했던 문서였다. 전사통지서는 한 사람의 죽음을 알렸지만, 유가족수급증서는 그 죽음 이후에도 계속된 한 가족의 삶을 기록하고 있었다.

유가족 수급증서

우리는 전쟁을 전투로 기억한다. 그러나 유가족은 종이로 기억한다. 누군가에게는 전사통지서였고, 누군가에게는 유가족수급증서였다. 그 종이들은 군복보다 오래 남았고, 총성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한 어린 딸은 평생 그 종이를 간직했다. 그리고 70여 년이 지난 어느 날, 그것을 우리에게 맡겼다. 그녀가 기증한 것은 낡은 종이 한 장이 아니었다. 아버지를 잊지 말아 달라는, 70년을 품고 살아온 한 가족의 부탁이었다.

그 부탁을 잊지 않기 위해, 나는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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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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