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

‘진짜 사나이’ 전차병의 손…응급실에서 떠올린 한국전쟁의 기억

출처 네이버 블로그

손을 다쳐 내원하는 환자들을 병과별로 보면 포병, 기갑병, 취사병이 흔하다. 취사병은 칼로 재료를 손질하다가 오른손잡이의 경우 왼손 손끝을 함께 베어 절단되는 경우가 많다. 반면 포병과 기갑병은 압궤손상에 의한 손가락 개방성 골절이 흔하다. 포병은 30kg이 넘는 포탄에 손가락이 깔리기 쉽고, 기갑병은 각종 장비와 해치 사이에 손가락이 끼이는 사고가 많다. 특히 장갑차나 전차의 해치를 닫다가 손가락이 끼이면 거의 절단에 이를 정도로 손상이 심하다.

물론 체육활동을 하다가 다치건 훈련 중 다치건 손상 자체는 마찬가지일 수 있다. 그러나 나는 특히 기갑병 같은 젊은 병사들을 응급실에서 처음 마주할 때면, 이들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맡다가 우리 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가운데 하나인 손을 다쳤다는 사실이 안타깝다. 그리고 어떻게 치료하면 이들이 가장 빨리 회복되어 다시 전사로 복귀할 수 있을지를 먼저 고민하게 된다.

이들에게 치료 계획을 설명하기 전에 내가 자주 하는 말이 있다. “6·25전쟁 때 국군은 탱크가 없어서 밀렸어. 자네가 속한 기갑이 제일 중요한 거야.” 이 말은 오래전부터 내가 마음속에 품고 있던 생각이다.

며칠 전 나는 전의-조치원 전투가 벌어졌던 개미고개를 찾은 적이 있다. 지금은 조용한 도로와 논밭이 펼쳐져 있지만, 1950년 7월 그곳에서는 북한군 T-34와 미군 경전차가 충돌하며 한국전쟁 초기의 치열한 지연전이 벌어졌다.

1950년 6월 25일 남침 이후 미군 전차와 북한군 T-34 사이의 본격적인 교전이 처음 벌어진 것은 7월 10일 전의-조치원 전투였다. 미 제24보병사단 예하 부대는 M24 채피(Chaffee) 경전차를 운용하고 있었고, 북한군 제105전차여단의 T-34/85와 충돌했다. 그러나 미군 M24의 75mm 포는 T-34의 전면 장갑을 관통하기 어려웠던 반면, 북한군 전차포는 미군 경전차를 쉽게 격파할 수 있었다. 당시 미군은 일본 점령 임무 중심의 경무장 상태였기에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의 중전차 전력을 즉시 투입할 수 없었다.

반면 한국전쟁 초기 북한군 T-34의 기세를 실제로 꺾기 시작한 핵심 요소 가운데 하나는 미군의 전술항공력이었다. F-80 슈팅스타(Shooting Star), F-51 머스탱(Mustang), B-26 인베이더(Invader) 등이 로켓탄과 네이팜탄, 기관총 사격으로 북한군 전차 종대와 보급 차량을 공격했다. 당시에는 도로망이 제한되어 있었고 북한군 전차들이 종대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아 공습 효과가 컸다. 항공력은 전차 자체를 모두 파괴하기보다 이동을 차단하고, 보급을 끊고, 승무원의 사기를 떨어뜨리며 낮 시간 기동을 제한하는 방식으로 기갑부대의 작전 능력을 약화시켰다.

시간이 지나며 상황은 달라졌다. 1950년 8월 낙동강 방어선 무렵부터 M26 퍼싱(Pershing), M4A3E8 셔먼(Sherman), 그리고 3.5인치 슈퍼 바주카 등이 본격적으로 투입되면서 지상군도 T-34를 효과적으로 상대하기 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의 경험 속에서 “전차는 전차로 상대한다”는 개념은 매우 강했다. 그러나 한국전쟁 초기의 경험은 이후 미군 교리에도 영향을 미쳐 항공력과 기갑의 통합이라는 현대 합동전 개념을 더욱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식 기갑전과 현대 대전차전 사이의 과도기적 모습을 보여준 전쟁이었다. 전차가 여전히 전장의 중심이었지만, 동시에 항공력과 휴대용 대전차무기가 그 독주를 흔들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했다.

며칠 전 해치에 손을 다쳐 내게 수술받고 퇴원한 한 이병은 자대 배치를 받은 지 일주일 만에 부상을 입었다. 그는 전차 조종수였다. 전차 맨 앞에서 머리만 내놓고 운전한다고 했다. 얼마 전 한 여자 미성년자가 바로 그 자리에 앉아 찍은 사진을 본 적이 있어 물어보니, 바로 그 자리라고 했다.

“얼굴이 노출되니 스나이퍼가 무섭지 않은가?” 내 질문에 그는 담담히 대답했다. “전시에는 밑으로 들어갑니다.”

그들이 이 시간에도 전방을 지키고 있기에, 문득 오래된 군가의 한 구절이 떠올랐다. “부모형제 나를 믿고/ 단잠을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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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건

이대 해부학교실 초빙교수, 인하의대 명예교수, '인류의 전쟁이 뒤바꾼 의학세계사'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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