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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5월 “나는 혼자다”…신현확 총리는 왜 끝까지 신군부와 맞섰나

신현확이 최규하에게 다가갔다. “저는 총리를 그만두겠습니다.” 최규하가 놀란 듯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비상계엄이 확대되면 내각의 권한이 몽땅 군으로 넘어갑니다. 아무 권한도 없이 가만히 앉아 구경만 하라는 겁니까? 난 그렇게는 못 하겠소!” 최규하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7시, 신현확은 장갑차와 군인들이 에워싼 중앙청 국무회의실에 있었다. 비상계엄 전국 확대안이 의결됐다. 신현확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는 총리직을 사퇴합니다.” “저도 사퇴하겠습니다.” “사퇴하겠습니다.” 국무위원 전원이 뒤따랐다. 그날 밤 신군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600명이 체포됐다. 김대중은 내란 음모 혐의로, 김종필과 이후락은 부정축재 혐의로 연행됐다. 김영삼은 가택연금됐다. 그리고 광주에서 참혹한 유혈 사태가 벌어졌다.-본문에서. 신현확 총리가 최규하 대통령에게 총리 임명장을 받은 뒤 선서를 하고 있다. <국가기록사진집>

1980년 5월 17일 저녁 7시.

신현확 총리가 탄 검은 승용차가 중앙청 정문에 다가섰다. 장갑차가 문 양쪽에 버티고 서 있었다. 기관총의 검은 총구가 가로등 아래서 섬뜩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문뿐 아니라 또 다른 장갑차 두 대가 청사 옆에 버티고 있었다. 벽을 따라 무장 군인 수백 명이 총검을 들고 서 있었다.

그는 청사 안으로 들어섰다. 현관에서 국무회의장까지 이어진 계단과 복도에 군인들이 도열해 있었다. ‘이것들이 아주 작정을 했구나.’ 그는 품속의 사표를 만졌다. 오늘이 마지막이었다. 계단을 오르며 그는 서울역 광장에서 학생들이 자신의 허수아비를 불태우며 “물러가라 신현확!”을 외치던 모습을 떠올렸다. 그들은 몰랐다. 자신이 물러나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를.

엿새 전, 5월 11일 밤. 서울 시내는 최루탄 냄새로 가득했다. 신현확 총리는 집무실에서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거리마다 시위대와 전경이 대치하고 있었다. 전두환의 얼굴이 떠올랐다. 사실 그는 12·12 이후 이런 순간이 올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12.12 쿠데타 주역들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 중심의 신군부는 같은 군끼리 총격전을 벌이는 초유의 사태를 일으켰다. 그러나 최규하 대통령이 결국 사후 재가를 하면서 결과적으로 명분을 부여한 셈이 됐다. 당시 신군부는 아직 정교한 집권 시나리오를 완성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들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 내세울 얼굴이 필요했다.

처음 그들은 최규하를 생각했다. 그러나 곧 생각을 바꿨다. 10·26 당시 김재규가 박정희 대통령을 시해했다는 사실을 알고도 즉각적인 대응을 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던 인물이었다. 신군부의 눈에 다른 인물이 들어왔다. 김재규에게 “시신을 확인하자”고 당당히 맞섰던 신현확이었다.

전두환 보안사령관과 참모들. 이학봉 수사국장, 허화평 비서실장, 장도영 보안처장, 전두환 사령관, 권정달 정보처장, 허삼수 인사처장(왼쪽부터) <사진 조선DB>

1980년 1월 어느 날, 전두환이 그를 찾아왔다. “대통령을 맡아주셔야겠습니다.” 신현확의 얼굴에 불쾌감이 스쳤다. “네가 뭔데 일국의 재상에게 대통령을 맡으라 마라 하나? 건방진 놈!” 그는 그 자리에서 신군부와 확실히 선을 그었다. 하지만 세상은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

“신현확이 전두환과 손을 잡고 대통령이 되려 한다.” 그런 소문이 퍼졌다. 김영삼도, 김대중도, 김종필도 그를 의심했다. 언론은 연일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안개 정국’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쏟아냈다.

1980년 3월, 신현확은 전국 주요 신문사 편집국장들을 총리공관으로 불렀다. “내가 몇 번이나 발표했습니까. 새 헌법을 만들고 선거를 치른 뒤 정부와 국회를 새로 구성한다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런데 왜 자꾸 앞이 보이지 않는다고 합니까?”

한 국장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하시는 말씀이 진심인지 확신할 수 없다는 겁니다. 최 대통령이 계속하실 수도 있고, 총리께서 나서실 수도 있지 않습니까?” “현 정부의 역할은 관리입니다. 대통령과 나는 엄격히 중립을 지킬 것이고 새 정부가 들어서면 물러날 것입니다. 이 약속을 몇 번이나 했는데도 못 믿으시겠다면 내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국장들은 서로 눈치만 볼 뿐 대답이 없었다. 그는 허탈했다. 아무도 믿지 않았다.

“최규하 대통령이 전두환 중앙정보부장 서리 임명장을 수여한 뒤 선서를 받고 있다. <사진 국가기록원>

그 무렵 전두환이 중앙정보부장 서리를 겸임하려 한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신현확은 긴장했다. 중앙정보부장은 국가 정보를 장악하고 막대한 예산을 쥐며 국무회의에도 참석하는 핵심 요직이었다.

그는 최규하 대통령을 찾아갔다. 한 번이 아니었다. 일주일 동안 세 번이나 찾아갔다.“절대로 군인을 중앙정보부장에 앉혀서는 안 됩니다. 민간인이어야 합니다.” “전두환의 보안사와 정보부를 분리해 서로 견제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다시 말씀드립니다. 군인은 안 됩니다.” 그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런데 며칠 뒤 미국 <타임>지에 이런 기사가 실렸다. ‘최규하 대통령이 중앙정보부장을 군인으로 임명하려 하는데, 신현확 총리가 민간인이어야 한다며 반대해 임명이 늦어지고 있다.’ 대통령과 단둘이 나눈 대화가 그대로 보도된 것이었다. 배석자도 없었다.

신현확은 이상한 느낌을 받았다. ‘대통령이 언론을 통해 자신의 뜻을 간접적으로 밝히는 건 아닐까?’ 1980년 3월 말, 전두환이 다시 그를 찾아왔다. “제가 중앙정보부장을 겸임해야겠습니다. 양해하십시오.” “내 대답은 변함없소. 겸임하지 마시오.” “겸임해야 합니다.” 전두환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돌아섰다.

2주 뒤 최규하 대통령은 결국 전두환을 중앙정보부장 서리로 임명했다. 외신은 일제히 보도했다. “이로써 전두환이 한국의 실권을 완전히 장악했다.” 신현확은 그날 밤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제 시간문제다.’

1980년 5월15일 서울역 앞 시위. 당시 10만여명이 운집해 신군부 반대시위를 벌였다. <사진 한겨레>

1980년 5월 15일, 서울역 앞은 아수라장이었다. 수만 명의 대학생들이 모여들었다. 그들은 전두환과 신현확의 허수아비를 만들어 불태웠다. “물러가라 신현확!” “신현확 퇴진!” 시위대의 분노가 자신에게 쏠리는 것을 보며 신현확은 답답한 마음에 김영삼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 저녁 단둘이 만나 밤을 새워서라도 이야기합시다.”

그날 밤 서울 어느 조용한 곳에서 두 사람이 마주 앉았다. “우리 국회에서 함께 일하지 않았습니까. 그동안 내가 거짓말하거나 배반하거나 의무를 저버린 적이 있었습니까?”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를 믿습니까?” “믿지요.” “내가 관리정부의 사명을 다하면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여러 번 말했습니다. 왜 그 말은 못 믿습니까?”

김영삼의 표정이 단호해졌다. “대권이 걸린 문제인데 그 말을 어떻게 믿습니까?” 신현확이 애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럼 어떻게 해야 믿겠습니까? 내 배를 갈라 보여야 되겠습니까?” 김영삼은 대답이 없었다. “김 총재, 군부는 지금 무슨 핑계로든 출동할 기회만 노리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이 이렇게 협조하지 않으면 내가 무슨 수로 버티겠습니까?”

신현확의 목소리가 떨렸다. “내가 못 버티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압니까? 그때 가서 땅을 치고 후회해도 소용없습니다.” 김영삼은 끝내 침묵했다. 김대중도, 김종필도 마찬가지였다. 모두 대권을 눈앞에 두고 있었고 서로를 믿지 못했다. 신현확은 그날 밤 혼자 돌아오며 생각했다. ‘나는 혼자다.’

1980년 5월 16일 오후.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여러 장성을 거느리고 총리실로 들어왔다. 그들이 서류를 내밀었다. ‘비상계엄 전국 확대’ ‘국회 해산’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설치’ “결재해 주십시오.” 전두환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신현확이 서류를 밀어냈다. “이건 혁명을 하자는 말 아니오? 혁명은 총칼로 하는 거지 결재를 받아서 하는 사람이 어디 있소? 나는 못 합니다.” 전두환은 서류를 거두어 갔다. 그의 표정에는 자신감이 어려 있었다.

다음 날인 5월 17일 오전, 청와대에서 회의가 열렸다. 한쪽에는 최규하 대통령과 신현확 총리가, 반대편에는 신군부 장성들이 앉아 있었다. “전국 대학생 대표들이 어제부터 밤샘 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전국적 궐기가 예고돼 있습니다.” “북한의 동태가 심상치 않습니다. 학생 소요를 빌미로 남침 가능성이 있습니다.”

장성들이 차례로 보고했다. “군이 출동해야 합니다.” 최규하 대통령은 말이 없었다. 신현확이 홀로 맞섰다. “국가 질서에 관한 것은 국무회의에서 논의하겠습니다. 하지만 국회 해산과 국보위 설치는 절대 안 됩니다.” 장성들의 표정에는 이상한 여유가 보였다. 서로 주고받는 눈빛, 날 선 웃음, 지나치게 깍듯한 태도. ‘이미 결정된 일이구나.’ 회의가 끝났다.

신현확이 최규하에게 다가갔다. “저는 총리를 그만두겠습니다.” 최규하가 놀란 듯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비상계엄이 확대되면 내각의 권한이 몽땅 군으로 넘어갑니다. 아무 권한도 없이 가만히 앉아 구경만 하라는 겁니까? 난 그렇게는 못 하겠소!” 최규하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7시, 신현확은 장갑차와 군인들이 에워싼 중앙청 국무회의실에 있었다. 비상계엄 전국 확대안이 의결됐다. 신현확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는 총리직을 사퇴합니다.” “저도 사퇴하겠습니다.” “사퇴하겠습니다.” 국무위원 전원이 뒤따랐다. 그날 밤 신군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른 600명이 체포됐다. 김대중은 내란 음모 혐의로, 김종필과 이후락은 부정축재 혐의로 연행됐다. 김영삼은 가택연금됐다.

그리고 광주에서 참혹한 유혈 사태가 벌어졌다. 블랙리스트에는 신현확의 이름도 거론됐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그러나 그는 체포되지 않았다. 전두환은 그를 꺾었지만 제거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12·12 그날 밤 “이건 내란 아닌가!”라고 외치며 탱크 앞에 섰던 그 총리를 기억했기 때문일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는 배의 닻줄이 끊어지는 순간이었다. 닻 없는 배는 폭풍 속으로 떠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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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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