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삭발하고 감옥도 갈 순교자 같은 판사들이 나올 수 있을까?
“사법부는 대법원장의 사조직이 아니다. 대법원장의 정치적 신념에 사법부 전체가 볼모로 동원되어서는 안 된다.”
서울중앙지법의 판사가 올린 대법원장 사퇴 권고문이다. 민주당의 대표가 그 문장을 인용하면서 대법원장의 사퇴를 주장했다. 대법원장이 지난 대통령 선거를 바로 앞두고 이재명 대통령 후보에 대한 사건을 유죄로 선고한 것에 대한 것 같다.
나는 지난 사십 년간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대법원의 부당한 판결을 여러 번 목격했다. 정의가 특정 대법관의 정치적 야심과 오만 앞에 무너지는 현장을 직접 경험했기에 그 실망은 더욱 깊었다. 먼저 나의 체험부터 털어놓아야 하겠다.
나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뇌물을 제공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국정원장의 변호인이었다. 내용은 간단했다. 수십 년 동안 청와대는 쓰는 돈의 일부를 정보기관에 은닉하고 사용해 왔다. 그걸 가져다 쓰면서 그에 어떤 성격이라는 것에 대한 의식이 없었다. 어느 날 그게 박근혜 대통령에게만 뇌물죄로 적용되어 기소된 것이다. 변호사들은 물론이고 1심과 2심의 판사들이 모두 뇌물이 아니라는 의견이었다. 무죄가 선고됐다. 그런데 특정 대법관만 그에 유죄라고 하면서 다시 재판하라고 사건을 돌려보냈다. 무죄라고 선고했던 고등법원 판사는 대법관의 명령에 따라 유죄로 양심을 바꾸었다. 판사들 여러 명의 소신과 양심이 한 대법관에 의해 뭉개지는 순간이었다. 수많은 법조인들이 무죄로 판단한 것을 유죄로 판단한 그 대법관에게는 분명 어떤 정치적인 의도가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대법원 판결은 진리일까 아니면 대법관 개인의 결론일까.
한 대법관과 의견을 나눈 적이 있다. 그가 이렇게 속을 털어놓았다.
“신념이 성숙하지 못하고 비틀린 성향을 가진 대법관이 있어요. 그런 대법관은 국민의 상식적인 생각과 판단보다는 자신에게 국민들이 따라와야 한다는 오만이 있죠. 그런 법원 우월주의 사고방식이 국민의 법 감정과 동떨어진 판결을 만들죠. 정의의 반대 개념은 불법이 아니라 야심과 공명심이라고 생각해요. 누구나 이념과 소신을 가질 수 있죠. 그렇지만 오만과 편견을 가지고 판결을 하면 객관적 공정성을 해칠 수 있지 않겠어요?”
같은 사안을 두고 대법관에 따라 다른 판단을 하기도 했다. 대법관들이 제 취향에 따라 정치를 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을 때도 있었다.
나는 대법원에서 확정된 판결 내용에 도전하고 싸운 적이 있다. 법은 재심의 문을 꽁꽁 닫아걸고 있었다. 법원 권위주의가 그 뒤에 또아리를 틀고 있다. 그들은 심판하는 사람이지 심판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는 의식이 있다. ‘내가 안 믿으면 그만이다’라는 오만도 있었다.
나는 대법관의 잘못된 사실 판단을 언론을 통해 조목조목 지적했다. 나를 피고로 하는 소송이 걸려 왔다. 나는 진실을 주장하고 입증했다. 1심 판사들은 난처해 했다. 대법원의 결론을 어떻게 감히 틀렸다고 할 수 있겠느냐며 몸을 사렸다. 내 주장이 맞지만 그렇게 판결할 수는 없다고 했다. 사법부의 구조적인 문제였다. 나는 진실이 대법원보다 위에 있다는 신념이었다.
항소심 재판장은 번개같이 나의 패배를 선언했다. 그 얼마 후 그 재판장이 대법관이 된 걸 신문을 통해서 알았다. 진실보다 출세가 더 중요한 것 같았다. 법의 밥을 먹어왔지만 나는 사법부를 신뢰하지 않는 편이다. 거리에 최루탄 연기가 자욱하던 1980년대, 아직 젊었던 나는 이 법정 저 법정을 돌아다녔었다.
피를 흘리며 싸운 투사들이 법정에 가득 들어차곤 했다. 그때 판결로 부당한 정치권력에 맞서는 판사들을 거의 보지 못했다. 오히려 정치권력이 원하는 것을 판결문으로 변환해 읽어주는 판사가 많았다. 사법부는 우리 사회의 뿌리를 지탱하는 양심의 아성이 아니었다.
민주화가 됐다. 그들은 남의 피와 투쟁에 무임승차해 사법 관료로 살아갔다. 이제 민주당 정권이 사법부에 메스를 대려고 하는 것 같아 보인다. 사법부는 국민들로부터 선출되지 않은 집단이다. 그런 사람들이 사회의 모든 분야에 결정적 영향력을 미치면서도 국민들로부터 한 번도 통제받은 적이 없다는 소리가 터져 나온다. 판사들은 어떻게 사법부의 독립을 지킬까. 삭발하고 감옥도 갈 순교자 같은 판사들이 나올 수 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