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배우 조진웅이 은퇴를 선언했다. 30년 전 소년 시절의 범죄 때문이다. 언론은 들끓었고 정치권은 편을 갈라 그를 논쟁의 도마 위에 올렸다. 그는 재빨리 스크린에서 사라지는 것으로 현실의 파도를 피했다. 열일곱 살의 얼룩이 쉰 살 인생의 오점으로 그냥 존재했다.
얼마 전 텔레비전 화면에 명문대의 주임교수가 국회에서 정의로운 말을 하는 장면을 봤다. 낯익은 얼굴이었다. 나는 그의 젊은 시절 한 장면을 목격했었다. 경찰서에서 수갑을 찬 채 강도범으로 조사를 받던 청년이었다. 감옥에서도 분명히 그를 봤다. 그가 명문대의 교수가 됐다. 그럴 수 있다. 절도범 장발장이 시장이 됐다. 인간은 변하는 존재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신문에서 대법관 후보의 사진을 본 적이 있다. 법원장을 지낸 인품이 훌륭한 판사였다. 나는 안다. 그는 청년 시절 사기범으로 입건돼 도망을 다녔다. 대법관 후보인 그와 사기범이던 청년 시절의 그는 이름만 같을 뿐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57년이라는 까마득한 세월 저쪽에 있는 까까머리 검정 교복의 불량소년인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나는 속칭 ‘짱’이 되고 싶었다. 유도 도장을 다니고 태권도 도장을 다니면서 싸움 기술을 익혔다. 담배 피우고 술 마시고 주먹을 휘둘렀다. 모두들 흉측한 벌레 보듯 나를 싫어했다. 어느 날 같은 족속에 속했던 아이가 뒤에서 기습했다. 날카로운 칼날이 귀를 자르고 뺨을 갈랐다.
학교 게시판에 나의 무기정학을 알리는 발표가 떴다. 공식적으로 이방인이고 한센인이 되는 순간이었다. 그다음부터 아이들의 눈에 비친 경멸과 혐오. 그것을 나는 잊을 수 없다. 피해자였지만 어느 누구도 나의 말을 듣지 않았다. 나는 거기서 소년 시절의 일탈과 방황에 마침표를 찍었다. 애벌레를 끝내고 탈바꿈의 몸부림을 시작했다.
세월이 흘렀다. 청년의 산맥을 넘고 나는 장년의 변호사가 됐다. 어느 날이었다. 바짝 마르고 초라해 보이는 남자가 내 방으로 밀고 들어왔다. 병색이 도는 얼굴이었다. 소년 시절 불량 서클에 있던 친구였다. 싸움을 잘하던 아이였다. 그가 외판원이 돼 나를 찾아온 것이다. 나는 그가 제시하는 물건을 샀다. 필요 없는 물건이었다. 그를 사무실 근처의 음식점으로 데리고 갔다.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 그가 갑자기 이런 말을 했다.
“난 네가 변호사가 됐다는 게 정말 이해할 수 없어.”
그가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학교에서 1등, 2등을 하는 아이들만 서울법대에 가고 그중에서도 일부만 사법고시에 합격하잖아? 그래야 변호사가 되는 걸로 아는데 어떻게 네가 이렇게 될 수 있는 거야?” 도저히 납득이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잘생기고 싸움 잘하던 그는 고등학교 시절 서클의 보스인 재벌 집 아이의 호위무사 역할을 했다. 같은 교복을 입고 말은 친구라고 했지만 사실은 부하였다. 그는 그 인연의 사다리를 타고 재벌 회사에 취직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잘린 것이다. 그가 이런 말을 덧붙였다. “사장인 그 친구와 내가 뭐가 달라? 평생을 모셨는데 세상이 왜 이렇게 불공평한 거야? 같이 놀았는데 그 친구는 회장이고 나는 외판사원이잖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돌아간 후 나는 한참을 창밖을 바라봤다. 우리 셋은 정말 무엇이 달랐던 걸까. 같은 검정 교복을 입었던 열다섯 살. 하나는 재벌이 되고 하나는 외판원이 되고 하나는 변호사가 됐다. 세상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그 친구는 여전히 열일곱 살의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여전히 열일곱 살의 그를 보고 있었다. 그는 나의 탈바꿈을 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 자신도 평생을 애벌레로 남아 말라 가고 있었다. 그 차이를 만든 게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세상은 성공한 사람의 과거를 파헤치고 싶어 한다. 피해자는 가해자의 성공을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것도 현실이다. 조진웅을 향한 세상의 시선도 그럴지 모른다. 어떤 이들은 소년 시절의 폭력을 보고 어떤 이들은 후반부의 멋진 배우를 본다. 어느 쪽이 진실에 가까울까. 둘 다 진실이 아닐까. 인간은 변한다. 동시에 과거는 지워지지 않는다.
조진웅은 은퇴해야 했을까. 나는 판단할 수 없다. 용서는 피해자의 몫이다. 하지만 변화의 가능성을 믿는 것, 그것만은 우리 전체의 몫이다. 내게 한 인생을 평가하라고 한다면 전반부보다 후반부를 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