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사람

[추모] ‘자유북한방송’ 김성민 전 대표…자유 안고 떠난 탈북 맏형이자 시인

방송중인 김성민 대표. 그는 2004년 민간 대북 라디오 자유북한방송을 창립했다. 인터넷으로 시작해 단파로 전환된 방송은 매일 2시간씩 20년 동안 단 하루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단 하루도 방송을 중단하지 않았다는 것이 자부심”이라 했다.

북한 인권과 민주화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 탈북 시인이자 방송인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김성민 전 자유북한방송 대표는 군인에서 시인으로, 방송인에서 인권운동가로 삶을 이어왔습니다. 그의 험난한 여정은 한 개인의 생애를 넘어, 우리 시대 자유와 인간 존엄의 상징으로 남게 될 것입니다. 2017년부터 폐암과 뇌종양 투병을 이어갔지만 그는 끝내 병마를 이기지 못했습니다. <아시아엔>은 김성민 대표를 기억하며 여러 동료와 지인들이 SNS에 쓴 글을 모아 그를 추모합니다. <편집자>

남긴 시 한 구절

최근부터 일기 쓰기를 다시 한다
오늘에 대해서가 아니라 지난날들에 대한 정리다
<병사의 자서전–시가 있는 이야기> 중에서

김성민 대표는 병상에 있으면서도 ‘지난날들에 대한 정리’를 계속했다. 시는 그의 무기였고, 동시에 내면을 지탱하는 언어였다.

워싱턴에서 부시 대통령과 김성민 대표

치열했던 생애

1962년 자강도 희천시에서 태어난 그는 북한의 유명 시인 김순석의 아들이다. 평양 김형직사범대학 어문학부를 졸업하고, 북한군 예술선전대에서 작가로 활동했지만, 체제의 부조리를 깨닫고 1995년 탈북했다. 강제 북송을 거쳐 1999년 한국에 입국하기까지의 과정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한국에 정착한 그는 KBS 대북방송에서 근무하다 방송 중단으로 퇴직했고, 2004년 민간 대북 라디오 자유북한방송을 창립했다. 인터넷으로 시작해 단파로 전환된 방송은 매일 2시간씩 20년 동안 단 하루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단 하루도 방송을 중단하지 않았다는 것이 자부심”이라 했다.

미국 방문 당시 김성민 대표(앞줄 왼쪽에서 두번째)

탈북 언론인 주성하의 기억

“그는 이미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해외에서 자유북한방송 김성민 대표의 부고를 들었다. 2002년 그를 처음 만났으니, 23년 동안 알고 지냈다.

2017년 3월, 암진단을 받고 몇 시간 뒤 직원이 내게 전화가 왔다. “오전에 대표님이 암 진단을 받았는데 보험도 없고 어찌해야 할지 몰라 연락했습니다.” “암에 걸렸단 사실을 공개하세요. 도와줄 사람이 엄청 많을 겁니다.”

탈북민 중 그게 가능한 한 사람을 꼽으라 한다면, 주저없이 그를 꼽았을 것이다. 폐에서 뇌까지 전이된 상태에서 발견했는데도 8년 넘게 버텼다. 정신력이 강했으니 가능한 일이다. 재작년 9월, 그의 일대기를 정리했다. 무려 120페이지가 넘는, 내가 쓴 탈북민 기사 중 제일 긴 글이었다. 부고라 생각하고 써갔다.

기사 마지막 문장으로 “그는 이미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로 정했다. 그가 전화를 해왔다. 주저하며 물었다. “내가 정말 그리 산 걸까?” “그럼요.” 그 말의 의미를 서로가 알기에, 둘 다 울컥했다.

동아일보는 1920년 창간호부터 모든 기사를 저장하고 있다. 이제 그를 다시 볼 순 없다. 그러나 우리가 사라진 뒤, 먼 훗날 후손들도 기사를 통해 그의 삶을 자세히 알게 될 것이다.

이제 그는 역사 속에서 숨을 쉬고 있다.

박선영 진실·화해 위원장의 추모

박선영 전 의원은 김 대표 부자의 대조적인 삶을 떠올렸다.
“아버지는 평양에서 대남방송을 했고, 아들은 서울에서 대북방송을 했습니다. 그는 탈북자 사회의 맏형이자 북한 해방운동가였습니다. 어머니를 그리워하던 그의 시처럼, 이제 하늘나라에서는 모자(母子)가 만나 평온하기를 빕니다.”

투병 당시 모습

김성민 시 속의 고백

그가 남긴 시들은 곧 그의 삶의 기록이다.
“다름 아닌 내 것임에도 / 날 때부터 우리에겐 없었던 그것 / … 자유는 / 고향으로 안고 갈 우리의 맹세.” (시 ‘자유’)
“굶어 죽은 자식 앞에서 / 흘리던 눈물을 채 닦아내기도 전에 / … 그런 북한에 비해 대한민국이 / 덜 살기 좋은 나라라고 우겨대는 그런 사람들 없도록 해 주소서.” (시 ‘어느 탈북자의 기도’)

그는 탈북민 정착과 연대를 이끌었다. 그의 삶은 곧 북한 인권운동의 역사였다.

발자취

그는 매년 ‘북한자유주간’을 미국과 한국에서 열며 북한 인권 실상을 세계에 알렸다. 프랑스 국경없는기자회 올해의 매체상(2008), 대만 민주주의기금 아시아 민주인권상(2009), 북한인권상(2019), 국민훈장 동백장(2024)을 받았다. 탈북민으로서 동백장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탈북자 사회에서도 백두한라회장, 탈북자동지회 회장을 맡으며 활동했고, 탈북민 정착과 연대를 이끌었다. 그의 삶은 곧 북한 인권운동의 역사였다.

과제와 희망 동시에 남기고

김성민 대표는 북한 인권과 자유를 위해 몸을 던진 투사였고, 동시에 시를 통해 고향과 어머니를 그리워한 인간적인 존재였다. 그의 삶은 ‘자유는 고향으로 안고 갈 우리의 맹세’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다.

그가 남긴 목소리와 시구는 남은 이들에게 과제가 되었고, 동시에 희망이 되었다.

생전 김성민 대표의 자유를 향한 외침은 저 하늘에서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의 목소리가 깊은 울림이 되어 억압받는 북녘 주민들에게 자유의 메아리로 멀리멀리 퍼져나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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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기

아시아엔 기자, 전 한국기자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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