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고백하는 작업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먼저 위대한 인물들의 고백과 성찰이 담긴 책들을 찾았습니다. 4세기 기독교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록>, 프랑스 계몽사상가 루소의 <고백록>, 그리고 러시아 대문호 톨스토이의 <고백록>. 시대와 문화는 다르지만, 이 세 책은 모두 인간 내면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자아 성찰의 깊이를 보여줍니다. 이번 회로 톨스토이 편을 마칩니다. <편집자>
“신앙 속에는 진리가 있다. 하지만 거짓도 함께 존재한다.”
러시아 문호 레프 톨스토이는 <고백록> 제16장에서 이같은 고백을 남겼다. 오랜 회의와 사색 끝에 신앙에 대한 믿음을 되찾았지만, 그것이 전부 진리는 아니었다는 자각에 이르렀던 것이다.
신앙, 진리인가 거짓인가?
톨스토이는 오랫동안 모든 종교적 가르침은 거짓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는 그 판단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대중들의 삶을 이끄는 종교 속에는 의심할 수 없는 진리의 요소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그렇게 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대중들에겐 진리에 대한 지식이 있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내, 신앙 속 진리가 전부가 아니었다는 깨달음이 찾아왔다. 거짓 또한 그 안에 스며들어 있었다. 교회의 대표자들뿐만 아니라 평범한 농민들의 신앙 속에서도 톨스토이는 혼합된 진실과 위선을 목격하게 된다.
“진리와 거짓은 둘 다 교회라고 불리는 존재에 의해 전해져 내려온 것들입니다.”
이러한 인식은 톨스토이로 하여금 새로운 결심을 하게 만든다. 종교적 가르침 안에 담긴 진리와 거짓을 구분해내는 작업이다. 그는 전통과 성경, 교리와 설교 모두를 비판적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작업이 바로 자신이 착수하려는 일이며, 그 탐구의 결과는 언젠가 후속 글로 전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꿈속에서 본 ‘진리의 상징’
<고백록>의 마지막 부분, 후기에서는 한 편의 몽환적 꿈이 묘사된다. 이는 단순한 환상이 아니라 톨스토이의 내면세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으로 읽힌다.
그는 자신이 침대에 누워 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공중에 매달린 채 끝없는 높이와 깊이를 체험한다. 아래쪽의 ‘심연’은 공포의 상징이고, 위쪽의 ‘창공’은 안도감과 평화의 상징이다. 하지만 정작 그를 떠받치고 있는 것은 얇은 밧줄 하나. 밧줄은 구체적 지지 없이 기둥에 연결되어 있지만, 그는 그것이 결코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 확신한다.
이 꿈은 진리 없는 종교적 구조의 불안정함, 그리고 내면의 확신이야말로 진정한 지지대임을 암시하는 듯하다. 그리고 누군가가 그의 귀에 속삭이듯 말한다. “이것은 반드시 기억하시오.”
결론 없이 끝난 탐색, 그러나…
<고백록> 제16장은 명확한 결론을 제시하지 않는다. 오히려 결론의 유보 속에서 탐구의 필요성을 선언한다. 진리와 거짓이 혼재된 세계에서, 삶의 의미를 묻는 작업은 멈추지 않는다.
하지만 후기에서 묘사된 꿈과 내면의 깨달음은 톨스토이가 진리란 외부에서 얻는 것이 아니라, 깊은 사색과 자기 성찰을 통해 다가갈 수 있는 것임을 말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종교를 ‘믿음’이 아니라 ‘의심을 통해 가는 여정’으로 전환시키는, 톨스토이식의 구도(求道)가 여기에 있다.(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