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 창안] 태국의 세종대왕 ‘람캄행’ 제정…입말소리 표기 ‘최적’

태국의 람캄행 대왕이 크메르 문자를 본따 변형시켜 만든 ‘타이 문자’


문자 창안, 그 역사 문화적 배경 (3)


13세기 람캄행 대왕 제정…자음 44자, 모음 21자

타이 문자는 한글보다 160년 빠른 1283년 고안되었다. ‘창제’가 아닌 ‘고안’이란 표현에서 유추할 수 있듯 타이 문자는 기존에 있던 문자를 바탕으로 해 입말소리를 가장 효율적으로 표기할 수 있는 형태로 재창조된 문자다. 타이 문자를 고안해낸 장본인은 태국 왕 중에서 최초로 대왕 칭호의 영예를 얻은 람캄행(Ramkhamhaeng) 대왕이다. 최초의 타이인 왕국인 수코타이 왕국의 프라루앙 왕조 3대왕이다. 람캄행 대왕은 상좌부불교를 국가통치 이념으로 한 법왕(法王)으로서 영토 확장과 번영을 이뤄 수코타이 왕국 황금기를 이끈 군주로 유명하다.

가장 큰 치적으로 단연 타이 문자 고안을 꼽는다. 그 이전까지 태국의 상황은 “나라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와 서로 맞지 아니한”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말은 있었지만 문자가 없어 서쪽에 강성하던 몬(Mon)족 문자를 빌려 적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후 13세기 수코타이 왕국이 들어서 세력을 확장하면서 기존에 차용하던 몬족 문자와 크메르 문자의 흘림체에서 착안하여 타이 문자체계를 고안하게 된다.

태국의 세종대왕 격인 람캄행 대왕

람캄행 대왕이 타이 문자를 고안해냈음을 알려주는 결정적 증거는 ‘람캄행 대왕 비문’이라 불리는 ‘수코타이1호 비문’이 유일하다. 흥미로운 것은 이 비문 발견 과정이다. 후에 라마4세가 되는 몽꿋 왕자가 출가를 하여 승려생활을 하던 중 1833년 경 지방 주요도시를 순방하던 차에 고도(古都) 수코타이에서 세 개의 비문을 발견하게 된다. 특히 이 가운데 (후에 1호 비문의 영광을 얻게 되는) 높이 111㎝ 사면에 글자가 기록이 되어 있는 정방형 비문이 포함돼 있었다.

내용을 보니 한 면에 “나의 아버지는 씨인트라팃이고, 나의 어머니는 낭쓰앙이며, 나의 형은 반므앙이다…”로 시작해 아버지(1대왕)와 형(2대왕) 사후에 왕위를 물려받았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어 필자가 람캄행 대왕임을 유추할 수 있었다. 또한 중반부로 가면 주어가 3인칭으로 바뀌며 람캄행 대왕 시기 수코타이 왕국의 풍요로움과 각종 풍속이 묘사되어 있다. 특히 ‘라이쓰타이(타이 문자)’가 없어 백성의 편의를 위해 1283년 문자를 만들었다는 내용이 기록돼 있다. 후반부에는 주로 람캄행 대왕의 치적과 수코타이 왕국의 드넓은 영토에 관한 예찬이 주를 이룬다.

시기적으로 봐 가장 처음 제작된 것으로 유추되는 1호 비문은 문자 제정의 증거자료로 뿐 아니라, 기록 문화가 발달해 있지 않고 열대환경의 영향으로 사료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태국역사 연구에서 최초 왕국 수코타이 시대를 반영하는 가장 중요한 기록물로 인용되고 있다. 하지만 너무 드라마틱한 비문의 발견 과정은 젖혀놓더라도, 초반부와 중후반부의 서술자 인칭 변화와 문체의 차이, 내용상 시기적 이질성 등의 이유로 1호 비문의 진위 여부에 관한 뜨거운 논쟁이 일었다. 이와 관련해 여러 차례 학술회의가 열리고 관련 책이 출간되고 학자들 간 열띤 토론이 있었으나 아직도 완전히 결론 나지는 않았다.

문자 제정 입증 ‘수코타이 비문’

어찌됐든, 타이 문자로 기록된 1호 비문 이전의 비문이나 문서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태국 역사학계 주류가 인정하는 현재 사료를 기준으로 본다면 1283년 타이 문자체계 정립은 언문일치를 이뤄낸 획기적인 사건이다. 특히 남인도계 문자를 수용한 다른 나라 문자의 경우 자신들의 말소리를 제대로 표기해 내지 못하고 문맥을 고려해 여러 가지로 읽어야 하는 불편이 있었던 것에 비해, 타이 문자는 발음되는 모든 모음소리를 제대로 기록할 수 있고, 4개 성조 부호를 추가함으로써 성조까지도 모두 표기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획기적인 사실은 모음을 자음과 한 줄에 병기하는 효율성을 채택한 것인데, 현대에 와서 오히려 자음의 상하좌우에 모두 모음이 붙는 형식으로 회귀한 것은 아쉬운 점이다. 타이 문자의 자음은 ‘꺼 까이’ 와 ‘터 통’ 두 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동그라미에서 시작해 그림을 그리듯 직선과 곡선이 어우러지며 획을 그리기 때문에 예술적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이러한 타이 문자의 형태는 17세기 말 아유타야 시대 나라이 왕 때 현재의 모습이 갖추어지기 시작했다. 그 이전까지 타이 문자는 계속 변모를 거듭했고, 초기인 수코타이 1호 비문까지 거슬러 올라가 살펴보면 현재의 모습과는 다르게 곡선이 훨씬 강조돼 있어 크메르 문자에 가까운 것처럼 보일 정도로 해석본 없이는 이해가 어렵다.

타이 문자는 브라흐미계 문자로, 남인도 문자의 영향을 받은 동남아시아 여러 문자들과 함께 ‘아부기다 문자’로 분류된다. 자음에 기본적으로 ‘어’ 모음이 들어 있으며 다른 모음 소리를 원하면 모음을 결합하는 식이다. 태국어 학습자가 초기에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많은 자음과 모음 글자를 익히는 일이다. 자음이 모두 44자(현재 사용하지 않은 2자 포함)에 모음이 21자(이 모음들이 서로 결합해 다른 소리가 되기도 함), 4개 성조부호와 9개의 고유 숫자, 그 밖에도 다수의 특수기호들까지 합하면 (과장을 조금 보태) 100여 개 문자를 완전히 익혀야만 까막눈에서 해방된다.

자모음 글자 수가 많고 같은 소리인데도 어원과 의미에 따라 다른 자음을 사용해 표기하는 번거로움, 원어 표기를 위해 소리가 나지 않는 음절을 표기하고 묵음 부호를 붙여 단음절화하는 등의 수고를 없애기 위해 20세기 중반 태국에서도 라오스와 마찬가지로 문자혁명 시도가 있었지만 수포로 돌아갔다. 이는 태국인들이 타이 문자에 가지고 있는 애정과 자부심을 반증한다. 최근에는 인터넷 발달로 다양한 서체들이 개발돼 타이 문자의 새로운 진화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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