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 창안] 언어, 2주에 하나씩 지구상에서 사라진다

세계 소멸위기 언어 지도. 보라색이 소멸위험이 가장 높은 지역이다.


문자 창안, 그 역사 문화적 배경 (5)

문자 없는 소멸위기 언어 수천 종

지구상에 현존하는 언어는 6000여 종으로 추산된다. 이 중 독창적인 문자를 갖춘 언어는 40여 종에 불과하다. 가장 널리 쓰이는 83개 언어를 세계인구의 80%가 사용하고, 3500개 토착언어는 인구의 0.2%만이 사용한다.

문자를 갖추지 못한 상당수 언어는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미국 국립지리학회가 발행하는 <내셔널 지오그래픽 매거진>이 소멸위기언어연구소(Living Tongues Institute for Endangered Languages)와 함께 조사한 바에 따르면 지난 500년 동안 전체 언어의 4.5%가 소멸됐다. 같은 기간 동안 멸종된 포유류가 1.9%인 것에 비하면 언어가 동식물보다 더 심각한 소멸 위기에 처해있음을 보여준다. 지금도 2주일에 1개꼴로 언어가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있다. 2100년에는 현존 언어의 절반이 소멸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500여 개 언어는 사용자가 10명 이내이며, 그들이 사망하면 언어도 사라지게 된다.

소멸위기언어연구소는 언어가 사라질 위기에 처한 원주민 거주지역 18곳을 정도에 따라 위험도 심각, 높음, 낮음으로 분석한 보고서를 냈다. 호주 북부, 시베리아 중앙과 동부, 북미 북서부, 남미 중부 등이 심각한 지역으로 분류돼 있다. 호주 북부의 경우 62개 언어군 153개 토착언어가 소멸 직전인데, 대부분 원주민 거주환경이 파괴된 탓이다. 동시베리아와 중국·일본에서도 9개 언어군 23개 언어가 국가지정 언어에 밀려 사라져가고 있다.

이렇게 사멸되는 토착언어들은 없어도 좋은 폐기물일까. 한정혜 캐나다 사이먼프레이저대학 언어학과 교수는 “언어를 잃는다는 것은 그 속에 담긴 지식과 경험, 역사, 신화, 사고체계, 인식도구를 영원히 사장시키는 결과”라고 말한다. 거꾸로 말해 언어를 지키는 것은 집단의 전통과 정체성을 지키는 길이다. 한 교수는 한 해양생물학자의 연구 사례를 소개했다.

이 학자는 서태평양 팔라우에서 한 어부를 인터뷰했는데, 그는 300개 이상 어종의 이름을 토착어로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는 또 과학문헌에 올라있는 자료의 몇 배나 되는 물고기의 음력 산란주기를 알고 있었다. 이런 지식은 수천 년 동안 고유어로 구전돼 왔지만 토착언어를 잃은 오늘날 팔라우의 젊은이들은 대부분의 토종어류를 식별하지 못한다고 한다.

언어가 사라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드물지만 사어(死語)가 되살아나는 경우도 있다. 영국 남서부 웨일즈에서 사용하던 언어 코니시(Cornish)는 18세기 후반 소멸됐으나 꾸준한 노력을 통해 복원돼 현재 1000여 명이 제2언어로 사용하고 있다. 유네스코 보고서는 언어 보존의 바람직한 사례로 일본 홋카이도 아이누족의 경우를 제시했다. 아이누족은 1980년대 말 모어를 쓰는 사람이 8명밖에 안됐으나 박물관을 열고 어린이들에게 모어를 가르친 결과 지금은 사용자가 수백 명으로 늘었다고 한다.

글로벌 정보통신 시대에 국경은 사라지고 언어가 사실상 국경을 대신할 것이란 담론이 나오고 있다. 그만큼 언어는 한 사회집단을 다른 집단과 구별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다양한 지식 취득과 경제적 성취의 도구인 보편언어에 대한 요구가 커지는 한편으로 집단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욕구도 무시할 수 없다. 이 상반된 지향성의 충돌을 막기 위해 유네스코는 ‘링구아팍스(Linguapax, 언어를 통한 평화)’ 프로그램을 개설했다. 소수언어 보호, 모어와 제2언어의 조화로운 공존을 꾀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정신을 배경으로 유네스코는 1996년 다음과 같은 ‘언어권리에 대한 보편선언’을 발표했다. “모든 언어는 집단적 정체성을 인식하고 세계를 묘사하는 독특한 표현양식이다. 교육은 반드시 언어·문화 다양성을 보장하고, 다른 언어공동체와 조화로운 관계를 목적으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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