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교육도 ‘축제’처럼 확 바꿨죠”

<사진=김남주 기자>

‘댄디 시니어’ 윤은기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석좌교수

민간인 최초 중앙공무원교육원장으로 취임해 공무원 사회에 감성과 소통의 바람을 불어 넣어 화제가 됐던 윤은기(62) 전 원장. 지난 봄 퇴임 후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석좌교수로 돌아온 그는 100명의 명강사를 모아 ‘백강포럼’을 만들었다. 시테크 이론부터 스마트경영, 리더십, 감성경제, 매력지수까지 최신 트렌드를 콕 집어내는 강의로 유명하다. 인터뷰를 위해 커피숍으로 들어선 윤은기 교수는 체크무늬 스카프를 멋스럽게 둘렀고 푸른색 상의에는 빨간색 장미꽃 브로치를 달았다. 한국 중년 남성으로는 보기 드문 패션 감각이다.

-옷을 잘 입는다.
“국민행복시대에 매력지수에 대해 연구했다. 매력적인 상품, 도시, 리더, 카페, 학교 등 매력이 중요하더라. 첫 번째 매력은 ‘보이는 것’이다. 웃으면 보기 좋고, 인상 쓰면 안 좋다. 두 번째는 ‘패션’이다. 그동안 생각 없이 옷을 입어왔다. 때와 장소, 내 몸에 맞게 입어야 한다. 공무원 세계에 들어섰을 때 내 옷을 보고는 반응이 두 갈래로 나뉘었다. ‘공무원문화를 모르는 사람이구나’라는 우려와 ‘공무원사회에 큰 변화가 있겠구나’라는 기대였다. 결국 변화를 이끌어냈다. 요즘 옷 판매원들은 코디도 해주고 달라졌던데, 그런 면에서 내가 5년은 앞서간 게 아닌가 싶다. 나이 들어도 멋있는 ‘댄디 시니어’가 많아야 선진국이다.”

-감성을 강조한다.
“감성과 예술이 뜨는 이유가 있다. 육체노동을 중시하던 ‘손발경제’에서 정보와 지식을 중시하는 ‘두뇌경제’, 그리고 지금 ‘감성경제’로 변했다. ‘호감경제학’이라는 용어도 생겼듯 물질적 개념에 ‘호감’을 사는 거다. 인간의 본성은 이성과 감성이 함께 있다. 그동안 감성을 억압하고 있다가 먹고살만하고 민주화되니 드러난 것이다. 국민행복시대를 위해서는 이제 감성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이 필요하다. 학력 등 스펙은 좋아도 기분 나쁜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말하고 싶지도 만나고 싶지도 않다. 옳은 말 하면 더 기분 나쁘다. 즉 감성의 비논리성과 비과학성을 비판할 게 아니라 감성을 통해 창조경영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감성을 잘 경영해야 인간관계도 좋아진다. 사회적 리더십도 거기서 나온다.”

-분노하는 사람들이 감성을 키우려면.
“한국인은 감성보다 감정이 세다. 또 기분 좋은 감정보다 분노가 더 많다. 감정조절을 잘 못해서 그렇다. 감정노동자들도 ‘진상’고객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분노의 사회적 원인은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 여부와 관련 있다. 개인 역시 행복을 가꾸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감성을 이해 못하면 성공할 수 없고 행복해질 수도 없다. 감성지능을 키우려면 문화예술과 자연, 인문학이 중요하다. 인문학은 비과학적 영역을 다 다룬다. 바보 온달은 이성으론 이해 안 된다. 인간을 복합적으로 이해하며 지혜로운 해결책을 찾는 답이 인문학에 있다. 문화예술을 보면 기분이 좋아지고, 대자연을 보면 인간이 그 일부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윤은기 교수는 리더의 3요건으로 ‘실력, 담력, 매력’ 등 ‘3력’을 꼽았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담력’과 상대에게 호감을 주는 ‘매력’이 자신의 ‘실력’을 빛내줄 수 있다. <사진=김남주>

윤 교수는 지난 2010년 대한민국 공무원들의 교육을 책임지는 중앙공무원교육원 원장으로 임명됐다. “3년 간 있으면서 30년 정도의 변화를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았다. 때 되면 와서 교육시간 채우다가 가는 곳으로만 여겨졌던 교육원에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공무원 교육, 무엇을 바꿨나.
“처음에 공무원들에게 ‘교육이 뭐냐’고 물었더니 ‘지겹다, 재미없다, 졸립다’ 그렇게 답하더라. 어쨌거나 시간 때우고 수료증 받아 가는 거니까. 하지만 배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축복인가. 교육은 ‘축제’고 ‘축복’이다. 우선 재미있게 바꿨다.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들을 초청해 공연했고, 강의 후 강사와 교육생이 서로 사진 찍고 기념할 수 있도록 ‘포토존’을 만들었다. 사진은 스토리고 히스토리다. 예전엔 글로 썼지만 요즘은 사진으로 설득하고 공감한다. 강의 모습은 바로 인화해서 대형보드에 붙여놓는다. 사진을 ‘나중에 보내드리겠습니다’ 이런 거 없다. 바로 하는 것이 ‘스피드 경영’이다. 또 분임토의는 원탁테이블 몇 개 놓고 쿠키도 갖다 놓아 리셉션처럼 운영했다. 예산 안들이고도 충분히 할 수 있는 것들이다.”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의 질은 강사가 결정한다. 각 분야별 최고 강사를 부르려 노력했다. 삼고초려가 아니라 13고초려를 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도 강사로 모셨다. 강사료는 적지만 최고의 의전을 하고, 올해의 베스트강사를 선정해 상도 주고, 축제처럼 운영하는 거다. 거침없이 교육환경을 뜯어고쳤는데 왜 마찰과 갈등이 없냐고 묻더라. 변화와 혁신은 고통스러운 게 아니다. 좋은 비전을 갖고 바람직한 상태로 가는 노력이다. 그간의 관행을 존중하면서도 공무원의 시각은 바꿨다. 평생 쌓아온 지식과 정보와 네트워크를 다 쏟아 부었다.”

‘최고의 강사’ 100명이 100만 명에게 강의할 때까지

-최고 강사들을 모아 ‘백강포럼’을 만들었다.
“좋은 강의가 좋은 세상을 만든다고 생각해 사회공헌의 하나로 ‘대한민국을 위해 봉사하는 100인의 강사포럼’을 구상했다. 100명이 100만 명에게 강의하면 나라의 운명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SNS시대니 가능하다. 유튜브에 올리면 된다. 모든 회원이 100번씩 재능기부 강의를 할 것이다. 양극화로 심화된 빈부격차, 교육격차, 문화격차 등을 줄여야 행복한 사회가 된다. 최고의 강사들이 최고의 자리만 가는 것이 아니라 오지 학교나 군부대 등을 찾아가 한 달에 한 번씩만 강의해도 변화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석 달 전 출범했는데, 멤버는.
“전직 장차관과 대사, 참모총장, 학자, 전문가 등 다양하다. 백강포럼에 들어오겠다는 사람들이 많아서 150명이 됐다. 2014년 200명까지 늘릴 생각인데, 확실히 인정받은 사람으로만 구성할 거다. 강의 요청이 들어오면 150명에게 ‘밴드(모임관리 앱)’를 띄워서 강사를 모집하고 운영위원들이 적당한 강사를 선정해 연결시켜주는 식이다. 한 달에 한 번 조찬포럼을 한다. 강의 내용도 공유하면서 서로 배운다.”

-강의를 잘 하려면.
“공군장교 나와서 1983년부터 강의했으니 30년이 넘었다. 우선 듣는 사람들이 뭘 원하는지 생각해야 한다. 권위주의 시절에는 강사가 우월적 지위에 있었다. 그래서 기업에서 초청강연할 때 교육생들이 졸면 강사가 항의하고 그랬는데, 이제는 그런 강사 안 부른다. 교육생이 뭘 원하는지 알려면 끊임없는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세상은 변하는데 똑같은 강의로는 안 된다. 변화하는 시대의 중요한 가치를 먼저 찾아내서 제공한다.”

-어떻게 변화를 읽나.
“내 전공은 ‘심경학’이다. 학부에서는 심리학, 대학원에서는 경영학을 했기에 이를 합성한 말이다. KBS ‘생방송 오늘’이라는 2시간짜리 시사프로그램을 10년간 매일 했다. 방송 전에 시사뉴스를 부지런히 다 훑어봐야 한다. 하루에 3시간씩 10년 동안 하면 1만 시간 몰입의 법칙이 된다. 그렇게 하니 대학을 한 번 더 다닌 이상의 도움이 됐다. 뉴스 보는 훈련을 통해 시대 변화의 방향과 이면을 보게 됐다.”

-지금 한국사회가 필요한 것은.
“<설국열차>, <더테러라이브>와 같은 영화가 나오는 이유가 있다. 더 가진 자, 더 배운 자가 단군 이래 가장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부자는 너무 부자고 가난한 사람은 너무 가난하다. 부자는 자신의 노력 말고도 국가와 사회 발전의 혜택을 본 사람들이다. 이들이 스스로 베풀며 행복감을 느껴야 한다. 격차를 완화하고, 희망을 줘야 한다. ‘Helper’s high’. 즉 조건 없이 남을 도왔을 때 느끼는 고도의 행복감이 국민행복시대의 핵심요인이다. 어릴 때부터 소액이라도 기부 습관을 길러줘야 한다. 공군본부 순직공군유자녀 장학재단에 기부를 하고 있는데, 돈이 남아서 하는 게 아니다. 조금 절제하면 된다.”

윤은기 전 원장은 “리더가 되려면 실력, 담력, 매력 등 3력을 기르라”고 강조했다. 최경주, 류현진, 김연아는 실력 뿐 아니라 결정적 기회와 큰 위기에서 담력으로 이겨냈다. 여기에 자신의 장기를 개발해 매력을 덧붙이면 소통이 원활해진다. 우리 사회는 지금 이런 리더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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