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untry in focus] 팜나무 생산, 환경훼손 주범인가 재생에너지 개발인가
삼성·SK 등 한국 대기업, 남한 넓이만한 숲 확보
인도네시아에서 여름철 산불은 연례행사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올해는 정도가 심했다. 수마트라섬에서 발생한 대규모 산불이 뿌연 연무를 만들면서 바다 건너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까지 뒤덮었다. 외교문제로까지 번지자수실로 밤방유도요노 대통령이 두 나라에 사과하면서 사태가 진정됐다.
밀림 화재는 몬순기간인 5~9월 집중적으로 일어난다. 바람의 방향이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 방향으로 향하면 문제가 심각해진다. 올해 연무가 유독 심했던 것은 오랜 가뭄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산불은 수마트라와 칼리만탄 지역에서 밀림을 개발하기 위해 화전식 정지작업을 하면서 생긴 것으로 조사됐다.불법임에도 현지 주민과 개발권을 획득한 기업들이 가장 경제적인 방법인 화전식 정지작업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최근 열대우림과 이탄(泥炭)지 개간을 금지하는법령을 2년간 더 연장하기로 했다. 한시법인 개간금지법 효력이 중단되지 직전 내린 조처다. 유도요노 대통령은 트위터에서 “야자수 농장 확대를 위해 숲에 불을 지른 기업에 단호한 조처를 내릴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그는 벌채와 경작지 조성을 2015년까지 금지하는 법령에 서명했다. 이로써 6400만 헥타르(64㎢)의 산림이 보호대상이 됐다고 인도네시아 환경당국은 밝혔다.
그러나 환경단체들은 그동안에도 개발금지 법은 있었지만 환경훼손이 심화돼왔다고 지적했다. 단속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데다 처벌규정이 미약해 실효성이 크게 떨어진다는 것이다. 환경운동가들은 최소한 산림개발금지법을 시한이 없는 항구적 법으로 만들 것을 요구하고 있다.
팜나무는 바이오디젤로 각광받으면서 경작이 늘고 있는 수종으로 인도네시아가 최대 생산국이다. 야자열매에서 추출하는 식물성 오일인 팜유는 전 세계 식물성유지 사용량의 31%를 차지하고 있을 만큼 수요가 많다. 팜유 소비시장은 지난 10년간 평균 12% 고속성장해왔다. 화장품과 바이오디젤 주원료로 각광받으면서 세계 각국 대기업의팜농장 투자가 잇따르고 있다. 팜나무 경작지는 매년 40~50만㏊씩 늘어나는 추세다.
삼성·SK 등 한국 대기업들도 바이오연료 사업에 뛰어들었다.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에 위치한 삼성물산의 팜농장은 크기가 무려 2만4000㏊에 달한다. 서울시 면적의 40%에 해당한다. 대기업들이 바이오연료를 생산하기 위해 인도네시아, 라오스, 필리핀 등지에 확보한 숲은 대한민국 면적에 육박하는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오랑우탄 멸종 위기…생태계 질서도 깨져
국제사회에서는 바이오연료 생산과정에 문제가 있고 현지 주민의 인권과 환경을 침해한다는 지적이 계속 제기되고 있다. 바이오연료는 화석연료를 대체할 에너지원이라는 긍정적측면과 환경을오염시키고 주민들의 건강권, 인권을 침해한다는 부정적 측면이 상존하는 양날의 칼이다. 독일 정부는 ‘바이오디젤인증제’를통해팜오일을지속가능한 재생에너지로 인정하지 않고 정책지원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밀림의 왕국’ 인도네시아는 야자수 농장 때문에 역설적으로 세계 최대 온실가스 배출국으로 지목돼왔다. 경작지를 개간하려면 탄소가 풍부한 이탄(泥炭)지대를 배수해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것이다.
생태계도 파되됐다. 기업농과 벌목회사들은 쓸만한 나무들을 베어낸 뒤 다양한 식물종들이 어우러진 원시림을 무차별적으로 태워 없애고 그 자리에 팜유나 성장이 빠르고 재질이 강한 나무를 심어왔다. 이 때문에 1982~83년 가뭄 때도 산불이 발생해 죽은 나무의 구멍 속에 살던 박쥐나 작은 동물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나무열매를 먹는 오랑우탄은 멸종위기에 처했다. 1992~93년에는 칼리만탄 동부의 원시림 80만ha와 조림지 75만ha가 불 타버렸다. 쿠타이국립공원 대부분이 파괴됐고 산불에서 살아남은 나무의 70%는 가뭄으로 말라 죽었다. 이 같은 이유로 1억ha가 넘는 인도네시아 산림 가운데 1972~2000년 사이 20% 산림이 사라졌다. 지구의 허파노릇을 하는 대규모 숲이 사라지는 건 전 인류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