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신’ 양준혁, 스포츠 복지 향해 ‘전력질주’ 중
양준혁야구재단 설립 2년, “선수보다는 아이들의 꿈을 키운다”
한국에 프로야구단이 생기고, 1993년부터 2010년까지 지난 20여년. 야구를 좋아한 팬들은 그를 안다. 그가 운동장에서 얼마나 ‘전력질주’ 했는지를. 프로야구 통산 최다 홈런(351개, 지금은 지난 6월 이승엽 선수가 352개로 기록을 바꿨다), 통산 최다 안타(2318개), 통산 최다 경기출장(2135번), 통산 최다 타수(7332개), 통산 최다 타점(1389개), 통산 최다 득점(1299개), 통산 최다 루타(3879개), 통산 최다 4사구(2658개) 등 수많은 기록을 만들며 ‘야구의 신’으로 불렸던 양준혁 선수.
2010년 선수생활에서 은퇴했지만, 그는 지금 더 바쁘다. 프로야구 해설위원을 비롯해 방송과 강연 등 다양한 활동도 그렇지만, 재단 이사장으로 가장 분주하다. 2011년 ‘양준혁야구재단’을 설립한 것은 아이들에게 스포츠를 통해 꿈과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서다. ‘선수’를 키우기 위한 목적도 아니고, ‘야구 지도자’로서 매진하는 것도 아니다. 바로 ‘스포츠 복지’에 전력질주하고 있다.
아시아엔(The AsiaN)은 서울 양재동에 있는 양준혁야구재단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아시아기자협회 대외협력팀장인 리사 위터 아시아엔 기자가 특별히 ‘스포츠복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국인인 리사 위터 기자는 국제스포츠NGO에서 일한 경험이 있으며 스포츠가 세상의 많은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다. 아시아의 많은 아이들이 스포츠를 통해 꿈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꿈이다. 그렇게 ‘스포츠복지’에 대한 같은 꿈이 만났다.
먼저 양준혁 이사장은 5월30일로 설립 2주년 된 양준혁야구재단에 대해 “나는 야구 선수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올바른 리더가 될 큰 인물을 키운다. 이승엽 박찬호도 좋지만 반기문 총장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애들 불쌍하다. 주입식 교육에 길들여져 있다. 학교에서 공부만 먼저 가르치는데, 건강이 먼저다. 튼튼하게 자라야 한다. 그리고 남을 배려하는 것, 위기 대처 능력을 가르쳐야 한다. 야구에는 모든 것이 담겼다. 팀워크를 통한 협동심과 선후배간 예절과 배려, 희생번트를 통해 희생정신도 배우고, 져보기도 하고 위기상황에서 대처방법도 알게 된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스포츠를 통해 자연스럽게 그런 것들을 배울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인성교육이다.”
-아이들에게 스포츠가 부족한가.
“요즘 애들이 자기밖에 모르고, 양보도 잘 안한다. 외국에 나가도 자기네들끼리만 챙긴다. 이렇게 이기적이니 공부하다 말고 다른 생각을 한다. 학교폭력으로도 이어진다. 이런 것을 치유하는 것은 스포츠다. 혼자 하는 개인운동보다 단체운동을 통해 가능하다. 그 다음이 문화생활이다. 오케스트라처럼 악기 안에서 화합을 이루는 활동 등으로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변화된다.”
“학교폭력을 해결하는 것은 스포츠, 야구는 인생의 축소판”
-학교폭력을 해결할 수 있을까.
“사실 학교폭력 아이들 만나서 얘기해보면 처음부터 악한 애들은 아니다. 사회에서 방치하고, 부모들이 관심이 없으니 엇나가고 그런다. 운동장에서 땀 흘리게 하면서 풀어주면 아이들이 서로 어울리게 된다. 이런 생각을 추진하려고 얼마 전에 경북교육청과 협의해 학교폭력 아이들 명단 만들어 야구팀을 만들려고 했는데, 예산이 없어서 못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모여서 야구도 하고 대화도 하고 희생번트도 해보고 그러면 애들이 그렇게 안 된다.”
학교폭력의 가해자와 피해자를 한데 모아 야구팀을 만들면 혹시 피해 아이들이 더 힘든 것은 아닐까? 양 이사장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다문화 야구팀을 보며 더욱 확신했다고 설명했다.
“야구재단에서 다문화 아이들과 저소득층 아이들로 3개의 야구팀을 운영하고 있다. 처음에는 피부색이 다른 아이들이 놀림을 받고 싸우고 그랬는데, 점점 아이들이 변하더라. 이 아이가 다른데서 놀림을 받으면 애들이 다 찾아가서 보호해주더라. 2년 됐는데 180도 달라진 것이다. 처음에는 움츠리며 도망 다녔던 아이들이 밝아지고, 자기네들끼리 팀워크가 생기는 거다. 부쩍 자란 게 느껴진다.”
어릴 때 미국에서 축구를 비롯한 다양한 스포츠를 접하며 자란 리사 위터 기자는 “한국에 와서 아이들이 스포츠를 별로 안 한다는 것에 정말 놀랐다. 어릴 때 남녀 구분 없이, 잘하고 잘못하고 상관없이 다양한 운동을 하는 미국과는 정말 다르다”라고 했다.
이에 대해 양 이사장은 “외국은 스포츠를 하지 않으면 기업에서 채용도 안한다고 하더라. 미국에서 공부를 아무리 잘하더라도 스포츠 하나 하지 못하고 사회 봉사활동 하나 하지 않은 아이에게 입학을 허가하지 않았다는 대학 얘기는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한지를 말해준다. 일본만 해도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스포츠랑 악기를 하나씩 하도록 시킨다. 학교에는 야구 뿐 아니라 다양한 운동을 할 수 있는 시설이 다 갖춰져 있다. 그런 게 교육 아닌가.”
양준혁야구재단에서는 우선 소외된 아이들을 모아 서울과 경기도 양주, 성남에 야구팀을 만들었다. 올해는 고향인 대구를 비롯해 시흥 등 경기도 북부지역에 4팀을 더 만들 예정이다. 마침 경기도에서 관심을 갖고 지원해줘서 경기도 각 시군에 야구팀을 다 만들겠다는 포부다.
“2년 전 재단에서 처음 서울에 야구팀을 만들 때 다문화와 저소득층 초등학생 25명을 모집하려고 했는데 33명이 지원을 했더라. 결국 아무도 탈락 못시키고 다 받아줬다. 2년이 지나니 애들이 쑥 커져가지고 어른이 다 됐다. 초등학교 졸업했으니 이제 보내야 하는데 못 보내고 있다. 중학생이 된 아이들에게 공도 줍고 자원봉사 하라고 하고 있다.”
“지금 야구팀 아이들 100명, 사회인 될 때까지 관리할 것”
리사 위터 기자가 “왜 초등학생을 야구팀원으로 선택하는지” 묻자 양 이사장은 “내가 관리할 수 있는 것부터 하는 것”이라고 했다.
“청소년팀도 만들고 싶은데, 지금 야구팀만도 100명씩 되다 보니 재단에서 다 감당할 수가 없다. 지금까지는 자비로 출자했는데, 후원이 더 들어오면 확장하고 싶다. 일요일마다 야구 하겠다고 모이는 이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서 직장인이 되면 그 때 보낼 거다. 클 때까지 케어할 거다. 사회인이 되면 ‘너희도 혜택을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한다’는 것을 얘기해주려고 한다. 후원이든 봉사든 하면서 함께 살아가도록 할 거다. 혼자 후원하는 건 일시적인 거다. 지속적으로 하려면 아주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해야 한다.”
리사 위터 기자는 스포츠가 건강을 유지하고 자신감을 심어주며 사람들과의 관계를 배우게 한다며 평소 아이들이 스포츠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스포츠 멘토’와 ‘스포츠 멘티’를 강조해 왔다. 양준혁야구재단에서도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멘토리, 스포츠멘토와 스포츠멘티의 만남”
-야구팀 이름이 ‘멘토리 야구단’이다.
“멘토리는 가르침을 받는 애들이다. 멘토는 코치도 될 수 있고 후원자도 된다. 기부를 해주면 아이들에게 유니폼, 글로브, 신발, 배트, 공 등을 사주는데 쓰인다. 멘토가 직접 와서 멘토리 아이들이 훈련하고 운동하는 것도 보고, 밥도 같이 먹고, 잘 커나갈 수 있도록 지켜봐주고 하는 거다. 지금 멘토들은 지인들 위주로 많은데, 멘토들만 활성화돼도 운영이 수월해질 것 같다. 다문화나 저소득층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다문화란 이름도 없어져야 한다. 우리나라만 그런 말을 쓴다. 그래서 우리는 멘토리라고 부른다. 초기니까 설명하기 위해서 다문화라는 말도 쓰는 건데, 말한다고 부끄러운 것도 아니다.”
그는 또 “나도 집안 형편이 어려운 가운데서 야구를 했기 때문에, 애들한테도 떳떳하게 얘기한다.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오히려 야구재단 테두리 안에 있어서 특혜를 받고 있는지 몰라도 우리 아이들은 어디 가서도 기죽지 않는다”고 했다.
-장애우를 대상으로 대회를 추진한 적도 있다. 소외된 아이들이 다문화나 저소득층 아이들 말고도 있는데.
“곧 새터민 자녀 10명을 받을 거다. 만나보니 많이 어려운 상황이더라. 한국생활 적응이 쉽지 않아 한다. 최근 탈북자 출신 조명철 의원을 만나서 야구팀 만들자고 얘기했다. 이 아이들로 만드는 야구팀은 욕심이 난다. 정식 야구 비슷하게 만들어서 선수로도 키워보고 싶다. 북한은 특히 여자야구도 잘한다더라. 이 아이들의 진로에도 도움이 될 테고, 소외된 애들을 선수로 만들면 대단한 일이 될 것 같다.”
북한은 집단체제라서 개인보다도 단체운동에 강하다는 것, 남북관계가 좋아지면 스포츠가 그 역할을 먼저 한다는 것, 남북탁구 단일팀과 평양에서 열린 축구경기 등의 이야기가 오갔다. 새터민 야구팀이 남북교류에 보탬이 되게 하자는 희망으로도 번졌다.
-리사 위터 기자는 지금도 일요일마다 축구 동호회에서 운동을 한다. 야구는 남자들만 하나.
“세 번째 야구팀인 양주팀을 만들 때 여자 아이 4명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선입견 때문에 여자야구가 많지 않은데, 소프트볼이나 티볼 등으로 시작하면 된다. 우리 야구팀에서는 남녀가 같이 야구를 하는데, 여자애들이 점수를 내면 1.5점을 준다. 일본도 같이 야구 한다.”
-지금 하는 스포츠복지를 전 세계로 확장하려는 생각은.
“지금 몽골에서 야구팀을 만들자고 해서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어려운 환경에 있는 아이들에게 나의 재능인 야구를 전해주면서 아이들도 돕고 싶다.”
한편 리사 위터 기자는 “한국에서는 운동을 하면 공부에 방해가 된다는 인식이 있더라.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양 이사장은 “올해 4번째로 청소년야구대회를 한다. 실제로 이 대회는 1박2일밖에 안하는데, 출전하는 학생들이 준비를 1년간 한다. 그동안 사회에서 방치됐던 애들이 자기네끼리 협의도 하면서 부쩍 자란다. 야구하는 사람들이 사회에 적응을 잘 한다. 처음엔 부모들이 반대했는데, 막상 해보니까 건전하고 스트레스도 풀고 공부에도 집중하게 되더라. 이제는 부모들이 좋아한다. 난 아직 처자식이 없지만 아이에게 과외 시킬 생각이 없다. 공부만 잘하면 뭐하나. 올바른 생각 가진 애들이 사회에서 성공도 하는 거다.”
-지금은 시작이지만 굉장히 할 게 많다. 꿈이 뭘까.
“야구학교를 만들고 싶다. 유도대학처럼 선수, 마케팅, 산업 등을 연결시키는 거다. 야구장도 많아졌으면 좋겠다. 턱없이 부족하다. 유소년야구클럽이 많아졌지만 할 수 있는 곳은 제한적이다. 유소년을 위해서 만들었다는 야구장조차 사회인야구단이 쓰고 있다. 최근에는 서울시에서 4대강 주변 체육시설을 없애라고 했다는데 말도 안 된다. 더 지어줘도 모자란데 없애라니, 생각 바꿔야 한다. 청소년야구페스티발에서도 많이들 참여하고 싶어 하는데 나 혼자 다 할 수는 없지 않나. 교육부든 어디든 동참해줬으면 좋겠다.”
-아시아에서 야구가 나가야 할 방향은.
“야구도 한국과 일본, 대만 통합리그가 필요하다. 아시아를 한 데 묶어서 크게 놀아야 한다. 한국은 개인은 뛰어나지만 혼자 잘났다. 일본은 뭉치는데, 한국은 서로 깔아 내리기 바쁘다. 그러면 세계시장에서 안 먹힌다.”
양 이사장은 멘토리야구단 아이들을 ‘애기들’이라고 칭했다. 자식같다고 생각한단다. 아무리 일정이 바빠도 야구재단 일이 먼저다. 그의 좌우명은 지난 삶이 말해주듯 여전히 ‘전력질주’다. “무슨 일이든 대충하는 건 없다. 파고드는 일은 끝을 본다. 재단 일도 죽을 때까지 할 거다. 힘들지만 재미있고 보람 있다.” ‘애기들’에 푹 빠져있는 그에게서 아주 멋진 일을 그리는 사람에게서 나오는 생기가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