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방송문화진흥회 김광동 이사께
김광동 이사!
우선 지난 한달 여 가까이 김 이사께서 겪었을 가슴앓이에 위로를 보냅니다.
문화방송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여당추천 이사로 연임하면서 김형이 나름대로 균형을 잡으려 애쓴다는 얘기는 종종 들어왔던 터입니다. 2월 하순 김문환 새 이사가 이사장으로 내정될 무렵 통화하고, 그후 김재철 사장 해임에 앞장선다는 보도를 보고 내심 반갑기도 하고 걱정도 했습니다.
“내년 2월인 김 사장의 임기를 보장하기로 암묵적으로 동의가 이뤄졌다”는 김 이사의 말을 들은 지 며칠 지나지 않았던 데다 그동안 우리 사회 관행으로 보아 아무리 이전 정부에서 임명된 사장이라 해도 여당추천 이사들이 해임에 필요한 과반수를 넘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서였지요. 너무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김재철 사장이 지금껏 버텨온 걸로 봐서 네 번째 해임결의안이 올라왔지만, 어떻게든 피해갈 것이란 예측이 더 많았거든요.
하지만 문화방송 최초로 임기중 사장이 해임되는 결과가 나왔지요. 사람들은 김 이사가 여당추천 후보란 점을 들어 보수측을 대변한다고 생각하더군요. 하지만 1992년 김 이사께서 안기부장 출신의 안무혁 전 의원 보좌관 시절 우리가 처음 만난 이후 김 이사는 결코 어느 한쪽에 치우치거나 진영 논리를 옹호하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더욱이 김 이사가 1996년 고려대에서 받은 ‘전략산업에 대한 국가의 정책과 역할의 변화’ 박사논문 심사위원장이 최장집 교수이며 문정인, 김형국, 김병국, 염재호 교수가 위원으로 참여한 것을 보면 어느 개인에 대한 진보와 보수의 이분법적 분류는 부질없는 일종의 ‘매도’와 다름없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특히 2007년 말 이명박 당선인의 인수위 전문위원으로 있던 사람들 중 고위 정무직이나 고액연봉과 임기가 보장되는 정부투자기관의 임원으로 이동하지 않은 유일한 사람이 바로 김 이사란 사실을 나는 참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난 번 해임안 표결에서 재적 9명 가운데 5명이 찬성표를 던지면서 야당추천 이사 3명과 여당추천 이사 2명에 김 이사가 포함되지 않았다는 얘기도 흘러나옵니다. 이를 두고 김 이사가 막판에 신념을 꺾은 게 아니냐는 말도 있습니다.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김 이사가 해임안을 발의해 이가 관철됐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더더욱 중요한 것은 후임 사장을 제대로 뽑는 일입니다.
김광동 이사!
예전엔 아이들이 다투다가도 “그거 신문에 나왔어. 문화방송에서도 봤어” 하면 상대방은 승복할 수밖에 없었지요. 아마 김 이사도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 같구요.
그런데 언제부턴가, 아마 2000년대 들어 심화된 것 같습니다만, “신문에 나왔어. TV에서 봤어”는 더 이상 진실을 담보하는 말이 아닌 것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보수나 진보 혹은 좌나 우로 갈려 정파적 이해에 매몰되고 특히 방송의 경우 정치권 특히 청와대 입김 때문이지요. 거기 눈치를 안 볼 수 없는 구조 때문이지요. 이는 보수정부건 진보정부건 그다지 차이가 없었습니다.
김 이사, 나는 1990년 봄, KBS와 MBC에서 시작된 ‘방송민주화 투쟁’ 당시를 가끔 떠올립니다. 영등포경찰서를 출입하던 병아리 기자 시절, 연일 두 방송사를 오가며 직원들이 방송민주화를 이뤄내려는 몸부림을 1면 톱기사와 3면 해설, 그리고 사회면 스케치기사로 보도하던 것 말입니다. 지금은 퇴직한 문화방송 정혜정 아나운서가 대열 맨 앞에서 구호 외치던 모습이 선합니다.
김 이사, 너무 뻔한 얘기지만 공영방송의 주인은 국민입니다. 문화방송은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공영방송입니다. 김 이사가 지난 4년간 방문진 이사를 하면서 늘 염두에 두고 고민하던 것이 그것이었음을 내게도 몇차례 했지요. 방문진 이사의 역할과 책임이 막중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김재철 사장 후임으로 곧 새 사장이 선출되겠지요.
이번 문화방송 새 사장 선임은 박근혜 새정부와 방송문화진흥회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법규에 따라 이사회에서 아무 외부 간섭과 압력없이 MBC 앞날에 가장 적합한 인물을 뽑는다면 이것은 방문진은 물론 박근혜 정부에게도 매우 큰 치적이 될 것입니다. 김재철 사장이 방문진 최초로 임기 도중 해임된 사장이라면 차기 사장은 정치권이 간여하지 않고 선임된 최초의 문화방송 대표이사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앞으로 KBS, YTN 등 공영방송 혹은 공기업적 성격이 강한 방송사에도 모범적인 사례로 남을 것입니다.
김 이사, 우리는 닮고 싶은 공영방송으로 일본의 NHK나 영국의 BBC를 예로 듭니다. 우리라고 그같은 방송사 갖지 못할 이유가 있나요?
문화방송이 바로 그런 방송들을 능가하지 못할 까닭이 있을까요? 우수한 인적 자원과 수십년의 경험적 성과들은 충분히 하고도 남을 거라고 나는 확신합니다.
일본 NHK 사이트 주소가 뭔지 알려드릴까요? www.nhk.or.jp 입니다. 그들이 영리를 우선으로 하는 회사를 떠올리는 .com이나 co.jp를 안 쓰는 이유는 바로 공공성, 공영성을 최우선으로 하기 때문이지요.
김 이사.
최근 한반도 상황이 심상치 않습니다. 위기국면으로 치닫는 느낌입니다. 한국에 주재하는 외신들이 한국의 긍정적인 뉴스보다는 주로 북핵이나 남북긴장 관계 등에 초점을 두고 보도하는 건 이미 알 사람들은 다 아는 얘기가 되었지요. 이는 앞으로 불시에 다가올 통일국면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날이 오면 전세계 시청자들은 연일 한반도 뉴스에 시선을 보낼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 방송사나 혹은 정부당국 어디에서도 이에 대한 준비를 하고 있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습니다. 아다시피 뉴스는 매우 부가가치가 높은 상품입니다. 통일국면의 한반도 뉴스가 중국의 CCTV, 신화사통신사 그리고 영국의 BBC 등 외국매체에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을까 심히 걱정이 됩니다. 이에 대한 준비는 아무리 서둘러도 이르지 않을 겁니다.
김광동 이사, 글이 길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첨언하고 싶은 게 있어요.
나 역시 23년간 청춘을 바친 한겨레신문을 떠난지 2년여, 역시 친정이 잘 나야 어깨가 들썩, 하는 일도 잘 됩디다. 아마 문화방송 OB들 역시 마찬가질 겁니다. MBC에서 퇴직한 어느 선배는 지난 가을 “내 젊음을 송두리째 보낸 문화방송이 어쩌다 이렇게 됐나”하면서 한숨을 푹 쉬더군요.
세상사 모두 같은 법, 어느 회사든 조직이든 단체든 몸담았던 친정이 잘 되면 시름은 줄고 보람은 느는 법, 이번 문화방송 경영진 선임이?우리사회가 미처 챙기지 못한 대목까지 들여다 보며 선방향으로 개선하는 계기가 됐으면 참 좋겠습니다.
김광동 이사께서 그 역할에 앞장서리라 굳게 믿으며 이만 줄입니다.
2013년 4월15일
아시아엔 발행인 이상기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