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문화전당 콘퍼런스] 사람들을 연결하는 예술의 힘

2일 열린 ‘아시아문화전당 국제콘퍼런스’에서 일본 기타카와 프람 에치코츠마리 트리엔날레 총감독이?’새로운 공공의 부상’을 주제로 발표했다. 이번 콘퍼런스의 총론격에 해당하는 발제로 서울과 멀리 떨어진 광주광역시에 위치한 ‘아시아문화전당’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기타카와 감독은 “에치코 츠마리에서 예술제를 연다고 했을 때 ?‘그것이 이 지역 부흥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가?’, ‘세금의 낭비는 아닌가?’하는 논의가?있었지만 그 다음에는 사람들이 관여하고 마침내 예술작품에 대해 설명하기에 이르렀다”며 “예술이란 아기와도 같아서 그 자체는 생산성이 없고 손이 많이 가며 통제를 벗어나는데, 이러한 예술을 매개로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어가는 과정이 있다. 이것이야말로 예술이 갖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장소를 연결시키는 힘”이라고 강조했다. ?이하는 발제문 전문이다.

산자락과 섬에서 이룬 세대 장르 초월한 협력

나는 ‘에치고츠마리 아트 트리엔날레 대지 예술제’와 ‘세토우치 국제 예술제’의 총감독을 맡고 있다. 이 둘은 산자락과 섬이라는 전혀 다른 지역에서 예술을 매개로 하여 지역, 세대, 장르를 초월한 협력의 장을 만들어내며, 현대인의 대이동을 창출해내고 있다.

에치고츠마리는 니이가타현(新潟?)의 남단에 위치하며, 동경에서 전철로 약 2시간 거리에 있는 세계적인 강설지대이다. 이 지역은 도시화에 의한 노동력의 이주, 인구 감소, 고령화, 국가의 농업정책 변화 등으로 인해 선조 대대로 전해져 내려 온 생활방식이나 문화가 붕괴될 위험에 처해 있다. 1년 중 절반 정도가 눈으로 뒤덮여 있어 젊은이들은 도회지로 나가 살기를 선택하고, 이로 인한 영농 후계자 부족으로 고민하는 곳이다. 그 결과 몇 세대를 걸쳐 경작해온 논들이 버려지고 있다.

그러나 이 지역은 시나노강(信濃川)의 혜택을 받아 1500년이라는 긴 세월에 걸쳐 농업을 통해 대지와 연관을 가져 왔다. 계단식 논과 강의 우회로 등으로 대표되는 이 지역의 경관, 생활양식, 커뮤니티는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일본의 전형적인 ‘산자락’ 가운데 여전히 존재한다.

이 산자락을 무대로 2000년에 시작된 이래 3년에 한 번, ‘에치고 츠마리 아트 트리엔날레 대지 예술제’가 개최되어 왔다. 논밭, 민가, 폐교 등을 활용하여 현재까지 다섯 번의 예술제를 치르는 동안 세계의 아티스트들이 창작한 작품은 900점 이상이며, 그 가운데 약 200점이 행사 이후로도 이 지역에 상설로 남아있다.

방문객들은 이 작품들을 이정표 삼아 산자락 지역을 돌아다닌다. 사계절 자연의 아름다움을 풍성하게 강조할 뿐만 아니라 겹겹이 쌓인 시간과 역사를 떠올리게 하는 작품들을 통해 이곳에 방문한 사람들은 오감을 개방하면서 잃어버린 신체성을 회복하게 되고, 예술제는 사람들의 ‘마음의 고향’이 되어 간다.

거기서 또한 예술을 매개로 하여 지역, 세대, 장르를 초월한 다양한 협력이 생겨나고 있다. 아티스트들은 타인의 땅에 무엇인가를 만든다. 하지만 예술작품을 타인의 땅에 설치하기 위해서는 허가가 필요하다. 이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이는 흔히 ‘현대미술은 이해가 잘 안 간다’라는 의문이나 거부로부터 시작된다.

또한 ‘그것이 이 지역의 부흥에 어떻게 도움이 되는가?’, ‘세금의 낭비는 아닌가?’하는 논의가 있다. 하지만 아티스트들은 물러설 수 없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커뮤니티와 역사에 대해 좀 더 배우고자 하며, 그렇게 하여 교류는 촉진된다. 그들의 열의는 어떤 의미에서는 무상의 것이기 때문에 설득력이 있다.

그들을 수용하려는 움직임이 이웃으로부터 자치회 그리고 더 넓은 커뮤니티에 이르기까지 퍼져 간다. 겨우 허가가 떨어지고, 마침내 작업이 시작된다. 지역 주민들 또한 작업에 참여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해서 작품은 아티스트의 것이면서도 지역 주민들의 것도 되는 것이다. 방문객들이 작품을 보러 오면 이 지역의 할아버지 할머니가 설명을 하고, 이는 곧 이곳의 역사와 기억으로 진화하게 된다.

이처럼 처음에는 반대나 의문이 제기되며, 그 다음에는 사람들이 관여하고 마침내 예술작품에 대해 설명하기에 이른다. 이러한 모든 과정이야말로 협력이라는 것의 실체이다. 말하자면 예술이란 아기와도 같아서 그 자체는 생산성이 없고 손이 많이 가며 통제를 벗어나는데, 이러한 예술을 매개로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어가는 과정이 있다. 이것이야말로 예술이 갖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장소를 연결시키는 힘이다. 커뮤니티 형성에 왜 예술인가라고 의문을 표시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바로 예술이 이 시대에 많은 장소에서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이유이다.

에치고츠마리에는 약 200개의 집락이 존재하며, 예부터 집락 단위로 상부상조하면서 생업이 계속되어 왔다. 예술제에서는 이러한 ‘집락’에 근거하여 역사를 존중하고 장소의 고유성을 발견하는 한편, 아티스트들은 글로벌한 관점에서 이 지역의 모든 곳에 ‘세계’를 투영시킨다. 지역의 다양한 시간과 공간에 따라 글로벌 노마드의 대이동을 수용하면서 조용하게 펼쳐져 온 이 ‘비효율적인’ 프로젝트는 10년 이상의 세월을 거쳐 지역의 자립을 위한 작업을 시작했다.

2008년에 설립된 NPO법인 에치고츠마리 산자락협동기구는 그것을 위한 첫걸음이다. 이 지역이 여러 해 동안 쌓아온 브랜드 인지도와 인적 네트워크, 예술작품의 축적을 지역 고유의 자산에 포개어 빈집·폐교 프로젝트에서 보여진 것처럼 ‘있는 것을 활용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고자 한다.

강설로 인해 생산되는 맛 좋은 산채, 쌀, 버섯류를 산지직송이나 총판을 통해 유통시키며, 이는 ‘지역 소비를 위한 지역 생산’으로 브랜드화된 식품산업의 구축을 위한 잠재적 토대가 될 수 있다. 기존의 예술작품 컬렉션에 더하여, 빈 창고를 갤러리로 만드는 등 고용을 창출하고 방문객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다.

이러한 활동을 위한 자산도 정부 지원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츠마리 팬클럽 및 계단식 논 지주들의 기부, 기업이나 단체의 CSR활동 등을 포함한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협찬이나 참여를 호소하기 시작했다. 대안적인 삶을 추구하는 많은 사람들, 특히 젊은 세대들이 에치고츠마리의 활동에 관여하려고 하고 있다.

세토우치 국제예술제, 섬사람 자신감 회복시켜???

이러한 에치고츠마리에서의 움직임에 세토우치도 연동하기 시작했다. 인도네시아, 필리핀, 대만, 오키나와 군도로부터 쿠로시오 해류에 둘러싸인 비가 많이 내리는 좁은 섬나라에 이민 온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그 여정을 통해 급류에 저항하며 항해하는 법을 익혔고 이 기이한 곳과의 관계를 구축하기 위한 기술을 고안해냈으며, 그곳의 산, 강, 바다에 맞는 특수하고 정교한 도구들과 문화들을 창조했다. 개국 이전 메이지 시대에 일본에 온 많은 외국인들은 세토우치에 와서 이렇게 아름다운 연해는 처음 본다고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백 년이 지난 지금, 우리들은 내륙의 가상적 가치를 구축하는 데 너무 열중한 나머지 바다가 우리에게 가져다 준 풍요로움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세토나이카이는 일본 열도의 자궁으로서 해상의 길, 대륙과 교류하는 항구, 교통의 요충으로서 다종다양한 인간들이 왕래하는 바다로서의 매력을 상실해버린 것이다.

그 결과 섬과 섬의 왕래는 사라지고, 산업은 쇠퇴하였다. 나아가 고도의 경제 성장기에 시행된 농업 및 어업의 축소정책과 시장제일주의 일변도에 의한 효율화 속에서 느긋한 시간을 즐기는 섬의 독자적 생활양식이 사라지고, 섬사람들은 자신감을 상실해갔다.

이러한 세토나이카이 섬들을 활성화하고자 세토우치 국제예술제가 ‘바다의 복권’을 내걸고 시작되었다. 2010년 7월부터 10월까지 불과 약 100일 여의 기간 동안 93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섬을 방문했다. 방문자들은 섬의 자연과 역사를 배우고 현지인들의 생활방식에 흥미를 가지는 바다 건너 여행을 즐겼다.

섬에 사는 주민들, 특히 노인들은 대대로 전해져 내려 온 그들의 생활양식과 환경의 가치를 인정받음으로써 긍지와 자긍심을 가지게 되었다. 이렇듯 예술은 이 지역의 생활양식과 풍경의 자산을 축복하고 그곳의 매력을 발견하게 돕는 장치가 되었다. 그리고 대도시에서 온 서포터들도 세토우치에 매료되었다.

에치고츠마리, 세토우치의 사례를 통해 살펴보았듯이 많은 지역이 도시를 필요로 하고 있다. 이러한 도시들의 젊은이와 노인들은 온전하고 가치 있는 삶을 누릴 수 있는 제 2의 고향이 될 수 있는 장소를 찾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의 협력과 지역을 초월한 이동이 코드와 정보, 금융을 강조하는 보이지 않는 세계화를 대신하여 신체적이고 얼굴을 마주보는 페이스 투 페이스(face to face)의 관계가 될 때, 지역 커뮤니티를 위한 새로운 장은 시작된다.

내가 추구하는 바는 사회의 주변화된 요소들, 즉 아웃사이더들, 마이너리티의 목소리들, 죽은 자들을 관련시키는 연결들이다. 왜냐하면 바로 이것이 예술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기타카와 프람은

도쿄대에서 순수예술·음악을 전공했다. 일본 Art Front Gallery에서 예술 감독으로 활동했으며 에치코 츠마리 트리엔날레 총감독과 세토우치 국제예술제 감독을 역임했다. 주요 활동으로는 일본의 13개 도시를 순회하며 개최한 ‘안토니오 가우디전’과 77개의 학교를 순회한 ‘Prints Show for Children’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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