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노벨평화상 시린에바디 “빈곤과 차별은 21세기 최대 적”

시린 에바디

[아시아엔=시린 에바디 2003년 노벨평화상 수상, 이란 변호사] 오늘날 세계 곳곳에서 평화가 위협받고 있습니다. 많은 지식인들과 민간 단체들이 평화 정착을 위해 활동하고 있고, 그들의 노고는 칭찬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근본적으로 평화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봐야 합니다. 다시 말해 전쟁이 없는 것만으로 평화스럽다고 말할 수 있냐는 것입니다.

즉 어떤 국가가 직접적으로 전쟁을 치르고 있지 않다면 그 나라 국민들이 평화 속에서 살고 있다고 믿을 수 있을까요? 그 답은 ‘아니오’입니다. 전쟁이 아니라면 평화라는 이러한 정의는 수세기 전까지만 유효했습니다. 21세기의 평화는 다른 방식으로 정의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전 세계, 특히 아프리카 국가들에 퍼져 있는 에이즈는 그 어떤 총이나 무기보다 더욱 위험하고 무서운 것입니다. 2009년 유니세프 통계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14세 미만 에이즈 환자는 300만명 이상입니다. 이 아이들은 나라가 전쟁 중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생명을 곧 잃게 됩니다. 또 차드 공화국, 기니비사우,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 아프가니스탄, 소말리아와 같은 빈곤한 50여 개국에서는 6명 중 1명이 5세 이전에 사망합니다.

그리고 그 사망의 주요한 원인은 위생시설과 마실 물이 없기 때문이고, 영양이 부족하며 백신주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아이들이 폭탄 때문에 목숨을 내놓게 된 것입니까? 아닙니다. 극심한 가난 때문에 죽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평화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필요한 것입니다. 평화의 의미는 평온함입니다. 인간은 평온 속에서 자신의 인권과 존엄성을 지킬 수 있습니다. 빈곤 때문에 교육을 받을 수 없는 사람들, 자신의 의견을 밝혔다는 이유로 구속되고 처벌받는 사람들, 살 집이 없어 노숙하는 사람들에게는 평온함이 없으며 평화롭게 산다고 할 수 없습니다.

평화가 사회에 확고하게 자리잡기 위해서는 두 가지 토대가 확실히 마련돼야 합니다. 바로 민주주의와 사회 정의입니다.

종교적인 독재이든 정치적 독재이든 어떤 사회가 독재정치 체제 하에 있다면, 어떤 나라가 국민들의 의견과 투표권을 존중하지 않는다면, 정부에 반대하는 의견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구속하거나 총을 겨누는 방법으로 반대 의견을 잠재우는 사회가 있다면, 분명 그 나라의 평화는 언젠가 깨져버릴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민주주의의 정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자는 것입니다. 고전적인 의미에서 민주주의란 다수에 의한 통치입니다. 그러나 자유 선거를 통해 다수가 권력을 얻은 것이라 할지라도 그 다수가 원하는 방식으로 통치할 권리는 없습니다. 세계의 많은 독재자들이 민주주의, 즉 국민 대다수의 투표로 정권을 잡게 되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합니다. 히틀러가 바로 그 예입니다.

그러므로 선거에서의 승리가 민주주의를 의미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자유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잡은 다수는 민주주의의 틀을 준수해야 합니다. 그러면 민주주의의 틀이란 무엇입니까?

민주주의의 틀은 인권에 대한 원리입니다. 다시 말해 권력을 잡은 다수는 오직 인권을 준수하는 틀 안에서 통치해야 하며, 이를 위반할 권리는 없습니다. 어떠한 권력을 잡은 다수라도 종교를 핑계로 우리 사회의 절반인 여성을 억압할 권리는 없습니다. 현재 이란은 이슬람이라는 종교적인 이유를 들어?여성들을 억압하고 있습니다.

어떠한 권력자도 이데올로기를 이유로 자신의 신념을 표현하는 자유를 억압할 권리는 없습니다. 쿠바와 중국에서 일어난 일들이 그런 예입니다. 어떠한 권력자도 시민의 자유를 제한할 권리는 없습니다. 사람들의 전화 통화를 도청하고, 이메일, 소포 등을 검열하는 북한이 그러한 예입니다.

이러한 민주주의의 정의를 바탕으로 통치자들은 단지 국민들의 투표 뿐만 아니라 인권 존중을 통해서?정당성을 찾아야 합니다. 인권을 무시하는 어떠한 핑계도-문화적 상대성, 종교, 이데올로기-받아들여질 수 없습니다.

평화에 있어서 두 번째 토대가 되는 것은 사회 정의입니다. 계급 차별이 극심한 사회에서는 평온이 정착될 수 없습니다. 언젠가 우리 이웃들이 굶지 않을 때 행복한 시기가 올 것입니다. 세계 부의 75% 이상이 1% 사람들의 손에 달려있는 지금 국제 사회에서 평화가 정착되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2008년 국제노동기구의 자료에 따르면 전 세계 1억 3천명의 아이들이 위험이 따르는 직업에 종사하고 있습니다. 사회정의는 국제적인 차원에서 뿐만 아니라 국가적 차원에서도 관심을 두고 다뤄야 할 문제입니다. 부자와 빈자의 차가 큰 사회는 평온한 사회가 될 수 없습니다. 역사적인 경험들이 이를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지난 2009년 8월10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아시아기자협회 주최로  열린 ‘평화와 휴머니즘 다양성 비전-노벨평화상 수상자 이란 인권운동가 시린 에바디(62) 변호사와 함께하는 토크’를 마친 후 시린 에바디 변호사(오른쪽). 그는 이날 아시아기자협회 명예대사로 위촉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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