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 시린 에바디가 겪은 고통과 핍박의 기록 ‘우리가 자유를 얻을 때까지’
[아시아엔=서의미 기자] “나는 잃을 것을 모두 잃었다. 그럼에도 나의 고향, 나의 나라를 위해 끊임없이 일할 수 있어 신께 감사 드린다.”
이란 최초의 여성 판사, 이슬람권 최초의 여성 노벨평화상 수상자, 이란 아동인권후원협회 창립 회장. 이란 출신 변호사 시린 에바디를 뒤따르는 타이틀이다. 1947년 이란에서 태어나 테헤란대학 법과대학을 졸업한 에바디. 그녀는 원래 정치에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았으며 나라의 법과 윤리를 바꿔 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인권변호사로 사회적 약자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돕는 것이 전부였다.
그녀는 꾸란에 기반한 국법에 의해 고통 받는 이들을 변호해 왔기에, 정부로부터 억울한 누명을 쓴 정치범들은 종종 그녀에 도움을 청하곤 했다. 어느 순간 에바디는 진정한 인권을 누리기 위해선 법이 반드시 바뀌어야만 하는 것을 깨닫고, 이란을 휘어잡은 보수 무슬림 집단과 맞서게 된다. 회고록 <우리가 자유를 얻을 때까지>는 노벨상 수상 이후 그녀가 겪은 고통과 핍박의 기록이다.
2003년, 그녀는 수십년간 주도한 인권운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게 된다. 하지만 모국에서는 그녀가 세계적인 상을 받은 것을 그리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아무리 큰 영광이라 할지라도 노벨상은 서구의 상, 즉 미국의 것에 불과했다. 상을 받은 에바디는 국가의 적과 호흡을 맞춘 반역자 신세가 됐다.
그 후 정부는 에바디를 의심했고, 그녀가 일하던 법률사무소에까지 수시로 감시원을 보내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했다. 정작 에바디 본인은 죄를 지은 것이 없다고 생각해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가 변호한 사람들은 대부분 이란의 이슬람 근본주의 정부로부터 피해를 받은 자들이었다. 그들을 보호하는 과정에서 에바디는 사회취약계층의 아픔을 대중에게 알렸고, 당시 이란 집권층의 권력남용과 부패를 밝히는 목소리가 되었다.
하지만 이란 정부의 탄압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심했다. 당국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고, 가장 사랑하는 가족까지 약점 삼아 그녀를 협박했다. 비극이 비극을 낳아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지점까지 이르렀다. 지금은 영국에서 망명자 신세로 살고 있지만, 에바디는 여전히 고국을 잊지 못한다. 그녀의 영향력을 통해 이란 여성인권을 비롯한 모든 시민의 인권을 위해 힘쓰고 있다.
<우리가 자유를 얻을 때까지>의 끝맺음이다.
“이것 하나만은 꼭 알았으면 한다. 정부가 노벨수상자를 이런 식으로 대하는데, 평범한 시민에게는 무엇을 못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