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기운 감도는 젊은 캄보디아

12일 베트남 호치민에서 캄보디아 프놈펜까지 가는 버스가 메콩강가에 멈춰 섰다. 버스를 통째로 싣고 메콩강을 건너는 배에 타기 위해서였다. 강가에서 석양을 뒤로 하고 사진을 한 장 찍으니 한쪽 팔이 없는 남자 아이가 웃통을 벗은 채 다가와 팔을 잡고 돈을 달라고 보채기 시작했다.

끝내 한 푼도 주지 않았다. 배에 올라서자 이번에는 흙먼지를 뒤집어 쓴 더러운 행색의 여자아이가 돈을 달라고 팔을 잡아끌었다.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줬지만 끝내 돈을 주지는 않았다.

툭툭이(Tuk Tuk)를 타고 프놈펜 시내를 달리거나 거리를 걸을 때면 항상 구걸하는 아이나 발가벗은 아이를 안은 성인여자를 만났다. 그녀들을 포함해 구걸하는 캄보디아 사람을 만나면 웃음을 보여줬지만 언제나 야멸차게 거절했다. 돈을 주면 한 사람만 주기 어렵고, 오늘 한번만 주기도 어려웠기 때문이다.

중심가의 가장 큰 도로를 제외하고 프놈펜 도심에는 신호등이 별로 없다. 오토바이와 툭툭이, 승용차(정확하지는 않지만 90% 이상이 도요타)들은 눈치껏 가다 서고 추월하며 아무데서나 유턴을 하거나 역주행도 한다. 그래도 사고가 나는 일은 별로 없다. 서로가 알아서 양보하고 기다리며 방어운전을 하기 때문에 가능하다. 누군가 ‘무질서’로 폄하할 지도 모르지만, 오히려 인간의 육감을 동원해 운영되는 정교한 ‘지능형 교통규칙’으로 보인다.

캄보디아에는 새로운 성장 동력이 필요해 보인다. 에너지와 식량을 자급하는 ‘인프라 혁신’에서 출발해야 한다. 프놈펜 도심의 괜찮은 호텔에서도 아직 저녁 무렵이면 3~4번씩 전기가 끊긴다. 대부분의 전기는 인접 태국과 베트남에서 사다가 쓰므로 전기요금이 좀 과장해서 한국 수준이라고 한다.

통신인프라가 미흡했던 캄보디아에서 유선인터넷 인프라를 과감히 생략하고 무선인터넷 부문에서 주변국들보다 뛰어난 환경과 품질을 보여주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캄보디아에 화석연료 인프라가 턱 없이 부족한 것은 외려 기회일 수 있다. 집집마다 태양광이나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를 생산, 쓰고 남은 전기를 스마트그리드 인프라를 이용해 전력거래소에 내다파는 ‘에너지 전환’이 본격 검토될 수 있다는 의미다.

농산물 문제 또한 발상을 바꿔야 한다. 캄보디아는 쌀농사를 많이 짓지만 태국이 벼를 입도선매, 도정한 쌀을 캄보디아가 다시 비싼 값에 수입하고 있다. 한국에서 움트고 있는 각종 협동조합을 캄보디아에서도 원용해 비싼 농기계를 조합 형태로 소유하고 운용해 식량자급률을 높이는 것부터 시작하면 좋겠다.

다행히 캄보디아는 아직 젊다. 젊은이가 인구구성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아직 높다는 것이다. 젊은이들의 에너지는 좌우, 시공을 초월해 한 공동체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중요한 살림밑천이다.

어둠이 깔리는 15일 저녁. 왕궁과 정부종합청사 옆 훈센 광장에서는 몇몇 젊은이 집단들이 경쾌한 리듬에 맞춰 아이돌그룹의 춤을 선보였다. 노로돔 시아누크 국왕의 장례가 끝난 지 한 달도 안 돼 캄보디아는 슬픔을 뒤로 하고 활력을 되찾고 있는 것이다.

작은 것부터 발상을 바꾸면 젊은 에너지는 순식간에 공동체의 운명을 뒤바꿀 수 있다.

국경의 출입국사무소에서 여행자의 눈높이에 맞는 원가 1달러짜리 지도를 6달러에 판다면 관광객들은 기분 좋게 살 것이다. 국경을 넘는 버스에 50여명(종종 통로에도 간이의자를 놓고 앉는다)의 승객들이 단 한 푼도 주지 않았던 ‘한쪽 팔 없는 아이’도 예외가 아니다. 밝은 표정으로 여행자들의 눈길을 끈 뒤 노래라도 한곡 불렀다면 최소 50달러는 벌었을 것이다.

예전처럼 돈을 벌기가 쉽지 않을 때, 그 때가 바로 혁신해야 할 시기다. 에너지와 식량의 미래를 주변국들에게 통째로 맡겨놓고도 성큼성큼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캄보디아 사람들에게는 ‘희망’ 밖에 남은 게 없다. ‘혁신’이 살찌우는 그 ‘희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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