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사람들은 얼마나 행복한가
“캄보디아 사람들 가난하지 않습니다. 행복지수가 높아요. 나름대로 잘 살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 관점에서 이래라, 저래라, 빨리해라 그러는데 그래선 안 됩니다.”
캄보디아에서 순복음 등까오 교회를 꾸려가면서 순복음교회가 운영하는 비정부기구(NGO) ‘굿피플(Good People)’ 캄보디아 대표를 맡고 있는 구현서 목사가 13일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의 한 호텔에서 기자를 만나 한 말이다.
같은 날 저녁에 만난 캄보디아 정부 고위 공무원에게 다짜고짜 “진짜로 캄보디아 국민들의 행복지수가 높은가”라고 물었더니 손사래를 친다. 이 공무원은 다만 “캄보디아 국민들은 크메르루즈의 끔찍한 살육과 베트남 침공, 내전으로 이어진 고단한 현대사를 거친 뒤 아픈 기억을 잊고 안정을 찾은 지 얼마 안됐으므로 삶의 활력이 넘쳐 보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캄보디아 국민들은 지난 1975년부터 1979년까지 4년간 자행된 크메르루즈의 살육통치를 벗어나자마자 인접 베트남이 침공(1979년), 철수(1988년)한 뒤 1993년까지 내전이 계속됐다. 캄보디아 국민들은 마침내 1993년 5월 국민의회 총선거를 실시, 입헌군주제를 채택하면서 국내외 정치가 안정됐다. 한시름 놓았던 것이다.
12일 기자는 베트남 호치민에서 출발, 육로로 국경을 넘어 프놈펜까지 왔다. 한국기업인 금호고속버스를 탔고, 프놈펜 국경을 넘자 베트남의 그것과는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홍수 때문인지 1층 높이가 넘는 키의 기둥 네 개를 올린 뒤 그 위에 원두막처럼 지은 캄보디아 시골집들이 길을 따라 늘어서 있다. 길 양쪽 모두 지평선이 보일 정도로 끝없이 이어진 대지에서는 여느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땅을 쓰다듬고 곡식을 일구는 농부를 간간이 만날 수 있다. 올 들어 첫 번째(아니면 작년의 마지막) 추수가 끝난 메마른 논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는 소들은 말랐지만 평화로웠고, 사람보다 수적으로 많았다.
교복을 입은 중학생들이 자전거를 타고 재잘거리며 귀가하는 모습. 큰길가 노점에 벌여놓은 고기와 생선 좌판에서 파리를 쫒으며 연신 하품을 해대는 중로의 아낙들. 이들의 모습에서 행복의 단초를 찾은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심지어 버스를 싣고 메콩강을 건너는 바지선에 타려고 나루터에서 기다리다가 만난 ‘팔 없는 소년’의 구걸하는 모습, 프놈펜 시내 도로 한복판에서 발가벗은 아이를 안고 툭툭이(오토바이에 승객용 수레를 장착한 교통수단)에 손을 내민 눈 풀린 여인의 뒷모습에서조차 행복이 감지됐다.
누구든 저개발국 사람들의 행복지수를 평가절하할 이유는 없다. 같은 원리로 한국 사람들의 행복지수를 부풀릴 하등의 이유가 없다. 캄보디아 고위 공무원이 “한국 사람들이 가장 행복해 보인다. 안 그럴 이유가 있니?”라고 기자에게 물었다. 기자의 대답은 고작 “그랬으면 좋겠다(I hope so)”였다.
행복은 물질적으로 상대적이지만, 공간적·시간적으로도 상대적이다. 죽을 만큼 힘든 공동체의 고난 끝에 찾아온 행복은 배고픔의 비참함을 압도한다.
캄보디아 사람들의 경제가 하루 속히 풍요롭길 바라지만, 나날이 행복지수가 급락하는 다른 나라들을 따라가는 식이라면 말리고 싶다. 천천히 지속가능한 행복을 찾는 지혜가 지구촌의 중심인 아시아에 시급하다. <프놈펜=이상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