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진권 ‘놀부’ 창립자, ‘코토 요리사관학교’ 설립한다
‘놀부’ 창업주… 마리스꼬 등 9개 체인 18개 식당 직영으로 운영?
지난 12월 말 한 외식업체로부터 한 통의 이메일을 받았다. ‘베트남 코토와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을 부탁드립니다’ 베트남 사회적기업인 코토(KOTO, Know One Teach One) 지미팸 대표 인터뷰 기사를 읽었다며 한국에서도 이와 유사한 일을 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메일과 함께 첨부된 파일을 보니 ‘놀부 보쌈’ 창업자로 유명한 오진권 대표였다. 오 대표는 현재 ‘이야기 있는 공간’의 대표로 있으면서 ‘마리스꼬’, ‘사월의 보리밥’, ‘오리와 꽃게’ 등 9개 음식 체인 18개 식당을 직접 경영하고 있다. 정직원만 500명이 넘는다.
4일 서울 사당역 마리스꼬에서 만난 오 대표는 “늘 생각만 해왔던 일을 베트남에서 오래 전부터 해왔던 분이 계시다는 것을 알고 반가운 마음에 연락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코토는 불우한 청소년에게 요리를 가르쳐주는 곳입니다. 베트남에선 요리학교도 드물고 뜻있는 일이라 국제사회에서 많은 도움을 받아 코토가 성공할 수 있었지요. 한국에는 요리를 가르치는 곳이 많습니다.
“하지만 학비, 숙소, 생활까지 책임지는 곳은 없습니다. 불우한 학생 외에도 요리를 정말 배우고 싶은 학생이나 인생의 목표가 없는 학생들을 선발해 교육시키고 싶어요. 교육, 숙식 등 모든 것을 제공하는 진정한 의미의 요리사관학교를 설립하고 싶습니다. 재원 대책도 마련돼 있습니다.”
-오랫동안 생각해 온 일이라면 굳이 코토와 함께 할 필요가 있을까요? 교육은 국내 대학의 요리학과와 협력하면 될 것 같고요.
“코토가 설립된 지 10년 이상 됐고, 많은 노하우를 갖고 있을 겁니다. 또 코토란 이름의 로열티도 존재하고요. 지미팸 대표의 철학도 알고 싶습니다.”
-지금도 어려운 청소년이나 요리를 배우고 싶어하는 청소년들에게 기회를 주고 있지 않으세요?
“그럼요. 열정이 있는 학생들에겐 기회를 주고 있어요. 지금도 방학이라 여기서 요리를 배우고 있는 고등학생이 있습니다. 한번은 어떤 여자분이 공부를 싫어하는 남동생이 있는데 받아줄 수 있느냐고 해서, 먼저 강연하는 곳으로 보내달라고 했어요. 와서 강연을 듣더니 꼭 일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지금 방배점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배우고 있습니다.
아, 또 있어요. 앵벌이라고 알죠? 지하철에서 코팅된 종이를 나눠주면서 돈을 구걸하는. 그걸 하던 26살 청년이 있었어요. 선천적으로 키가 작은 청년이에요. 좀 전에도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문자가 왔는데, 이 친구를 데려와 요리를 가르쳤어요. 그런데 이 친구가 도망을 잘 쳐요. 그리곤 얼마 있다 또 오고요. 8번인가 그랬어요. 계속 받아주려고요.”
오 대표는 인터뷰 중 배석한 직원들에게 바로 10여 명의 학생이 생활할 수 있는 공간과 교육장을 마련해 보라고 지시했다. 지미팸 대표도 1월 중순 전에 만나 보기를 희망했다. 지미팸 대표와 다리를 놔줄 수 있는 그의 이복형 문영진 우리밀 대표와도 다음날 만났다.
“필이 꽂히면 바로 실행해 옮기자는 것이 제 경영방식입니다. 길을 다 알고 있는데 늦추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요. 시도해서 안 되는 일이면 그걸로 접어야죠.”
군에서 사병 식당 관리하며 음식 재능 발견해?
월남전 참전 경험도 코토에 특별한 관심을 갖게 해줬다. 맹호부대 하사관 출신인 그는 호치민에서 1년간 생활했다. 당시 사이공을 잡은 공로로 3박4일의 휴가를 받아 갔던 하노이 여행도 각별했다. 코토가 있는 곳이 하노이와 호치민이다.
“참전 경험 때문인지 베트남이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1998년 호치민을 여행했는데, 예전 그대로인 것도 많더라고요. 지미팸 대표와 일도 잘 될 것 같아요.”
오진권 대표는 성공한 직업군인의 표본이다. 얼마 전에는 육군TV에서 내무반 교육용으로 그를 인터뷰했다. 인텔 사장과 현역 군인 두 명이 이번 기획에 함께 캐스팅 됐다.
-군 생활은 얼마나 하셨나요.
“11년, 상사로 제대했어요. 중학교 졸업 후 배고픈 게 싫어 구두닦이부터 여관보이, 식당종업원 등 안 해본 게 없어요. 배운 거 없고, 가진 기술, 돈도 없으니 희망이 없더라고요.?재워주고 먹여주고 돈도 주는 군대나 가자해서 하사관 지원을 했죠.”
생존을 위해 간 군대였지만 오 대표는 이곳에서 재능을 발견한다. 월남전 참전 후 경기도 안양에 있는 부대로 복귀한 그는 사병 식당을 책임지게 된다. 당시 군대에서는 쌀, 부식들을 뒤로 빼돌리는 일이 많았다. 오 대표는 군에서 제공하는 모든 재료를 아낌없이 사용해 정성껏 음식을 만들도록 했다. 사병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어떤 병사는 ‘오진권 중사 계속 취사반장 시켜주십시오’라는 소원 수리까지 써냈다. ‘나한테 이런 재능이 있구나’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
“못 먹고 어렵게 자라서 그런지 음식에 대한?관심이 컸어요. 열악한 환경에서 힘들게 군생활하는 청년들이 밥이라도 잘 먹도록 해주고 싶었죠. 군에서 쌓은 경험으로 제가 음식에 소질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죠. 그때 군 복무를 하면서 퇴근 후에 안양역 앞에 4평짜리 분식집에서 라면 끓여 팔기 시작해 지금까지 오게 됐어요.”
1975년 분식점으로 출발 외식업계 ‘마이다스의 손’으로?
-그 과정에서 힘든 적도 많았을 것 같은데요.
“1975년도에 분식점을 시작해서 1982년도에 상사로 제대를 했는데, 7년 동안 승승장구했어요. 그런데 욕심이 과하면 화를 부른다고 1982년도에 제대 후 퇴직금까지 쏟아 부은 사업이 실패하면서 한 순간 알거지가 됐죠. 거의 잠도 자지 않고 택시운전을 해서 300만원을 모아 신림극장 뒷골목에서 실내포장마차를 다시 시작했죠. 그게 놀부보쌈의 원조에요.”
놀부보쌈이 ‘대박’을 터트리면서 ’놀부‘ 체인점을 열게 된다. 2003년 2월 20여 개의 직영점과 360여 개의 체인점을 거느린 기업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혼을 하면서 놀부 경영권을 전 아내에게 넘겼고 이후 순애보(순대와 보쌈의 사랑)라는 프랜차이즈 사업을 시작했지만 ‘영업정지 가처분 신고장’을 받으면서 위기를 맞았다. 소송에서 패해 ‘순애보’ 체인점들에 50억원의 손해배상을 해주면서 프랜차이즈 꿈을 접었다.
“그때 정말 난생 처음 자살을 생각했어요. 금전적으로도 힘들고, 마음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요. 정말 자살을 생각하면서 교회에 갔는데, 지금은 소천하신 하용조 목사님이 ‘저기도 자살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고, 여기도 자살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고’ 하면서 저를 가리키는 거예요. 조물주께서 소중하게 만들었는데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 그것은 살인이나 마찬가지다. 고난 뒤에 찾아올 복을 생각하라 그러시는 거예요. 생각해보니 어렸을 적 구두닦이를 할 때 보다는 낫거든요. 다시 마음을 먹고 지금의 ‘이야기가 있는 외식 공간’을 설립하게 됐죠.”
음식업은 발명 아닌 발견 “맛집 탐방 중요한 일”?
현재 그는 9개 체인 18개 식당을 모두 직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정도 체인이라면 가맹점을 유치해 더 넓혀갈 수도 있을텐데, 그럴 계획이 없다. 매장을 100개로 늘리는 것보다 한 개의 매장을 잘 키우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사업의 첫 번째는 외형을 키우는 게 아닌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다. 그리고 맛있는 메뉴 개발을 위해 맛집 탐방을 중요한 업무로 여긴다.
“얼마 전에는 벌교추어탕에 다녀왔어요. 채널A의 ‘착한식당’을 즐겨봅니다. 거기에 소개된 곳을 비롯해 잡지 등에 나온 맛집은 늘 찾아다닙니다.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음식은 발명이 아니라 발견이거든요. 조리사들도 매년 태국 연수를 보내고 있습니다. 새로운 맛을 발견하라고요.”
-라이벌로 여기는 음식점이 있으세요.
“그런 건 없고요. 강북 송추 가마골 김호겸 대표, 오발탄 이헌영 대표, 벽제갈비 김영환 대표에게 배우는 게 많죠. 음식에 대한 철학이 남다른 분들이세요.”
오 대표는 매출의 1%를 노숙자와 생활이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2010년 ‘맛있는 기부’ 실천기업을 설립해 매일 사당역 14번 출구 주차장에서 ‘밥퍼’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그 외 전주대 객원교수로 외식사업에 대한 강의를 하고 있으며 ‘맛있는 성공’이라는 책을 출판하는 등 외식업 경영에서 경험을 통해 형성된 경영 노하우를 전달하고 있다.
코토와의 제휴 외에도 올해 세운 중요한 계획은 중국 장춘에 세운 ‘크레이지 스푼(Crazy Spoon)’이 안정적으로 정착하는 것이다.
“이름 멋지죠? 이탈리안 퓨전 식당인데, 우리 회사의 첫 해외사업입니다. 동업인이 한족인데, 중국 외식업계에서 명망이 높은 분이세요. 상황을 봐 가며 베이징에도 진출할 계획입니다.”
오 대표는 인터뷰 말미 “KFC 창업주도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다 65세에 꿈을 이뤘다”며 “내가 그 나이가 되려면 3살이 더 남았는데, 그 때쯤엔 KFC 정도의 음식업체를 일구지 않을까 기대하며 계속 전진할 생각”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