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기구 비준 망설이는 ‘선진 한국, 후진 정치’

신부남 외교통상부 녹생성장대사가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사진=김남주 기자>

국제기구 GGGI, 종주국 한국에서 국회비준 지연…23일 창립총회

“국제기구 가입 관련 공식 비준은 선진국일수록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래서 시간이 걸리는 것 같습니다.”

국제기구설립협정 발효에 따라 18일 국제기구로 전환된 글로벌녹색성장연구소(GGGI)와 관련, 이 기구 설립에 애써온 신부남 외교통상부 녹색성장대사에게 “국제기구 종주국인 한국 국회가 왜 정작 비준을 안 해주는 거냐”고 물었더니 이런 대답이 나왔다.

내심 야당인 민주통합당 소속 국회 외교통상위원회 법안소위 위원들에 대한 원망의 멘트를 기대했는데, 예상치 못한 ‘품격 높은’ 대답이 돌아온 것이다. 맥이 좀 빠졌다.

당초 신대사를 단독 인터뷰하려 했다. 그러나 GGGI측에서 기자간담회 형식을 제안, 몇몇 기자들에게 연락해서 이날 낮 12시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19층 매화홀에서 오찬을 겸해 이뤄진 간담회자리였다. GGGI는 앞서 16일 외교통상부 출입기자간담회도 가졌다. 국제기구 발효일인 18일은 임박했고, 23일 창립총회도 코앞인데 정작 당사국인 나라의 국회가 비준을 안 해주니 다급했던 모양이다.

이튿날인 19일 유엔안전보장이사회 비상임이사국 확정, 20일 녹색기후기금(GCF) 인천 유치 성공 등에 견주면 GGGI는 국민들에게 그리 익숙한 관심사는 아니었다. 청와대가 이명박 대통령 임기 안에 그동안 심혈을 기울여왔던 외교적 결실을 확실히 챙기려는 모양새임은 분명해 보인다.

제1야당인 민주통합당은 얼마나 이런 상황이 못마땅하겠는가. 18일 아침 전화로 인터뷰한 민주통합당의 한 관계자는 “솔직히 대선 앞두고 MB 치적 만들어 주는 일에 협력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라고 말했다. 이 당 정책위의 다른 관계자는 사견을 전제로 “정권 바뀌면 녹색성장위원회가 과거 ‘지속가능발전위원회’로 회귀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옳건 그르건 MB 치적은 안 돼?

MB정권에서 일어난 일은 모두 MB 혼자 한 것이고, MB정권에서 거두는 결실은 모두 부정하고 싶은 것일까. 정권 획득이 목표인 정당에게 그런 욕심을 이유로 “당리당략밖에 모르는 협량함”이라고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녹색성장 기본법’ 입법 과정의 문제를 인정하더라도, ‘녹색성장’이라는 용어는 이미 고(故)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두루 쓰였다. 2005년 제5차 아·태 환경개발 장관회의에서 한국의 아·태지역 녹색성장 전파를 위한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녹색성장을 위한 서울 이니셔티브’를 제안, 채택된 바 있다.

다른 형태의 공격도 있다. 최근 외교통상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민주통합당 원혜영 의원은 “GGGI가 사업계획 부실로 예산을 잇달아 이월하는 기관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납세자 입장에서 보면 이유를 막론하고 이런 ‘불용예산’은 반가운 것이다. 사용하지 않은 예산이 생기면 국채의 원리금 또는 차입금을 상환하는데 이용하거나 다음해 세입에 추가하기 때문이다. 조상들과?현 세대가 잘 먹고 잘 살겠다고 끌어다 써 후손들이 갚아야 할 빚을 갚거나 다음에 걷어야 할 세금을 덜 걷게 해준다는 데 왜 관료사회와 정치인들은 도끼눈을 뜨고 째려보는가.

GGGI 사람들을 두둔할 이유가 없지만, 국제기구는 한국 사람들끼리 하는 것도 아니니 외교안보적인 이유로 예정된 사업이 이월될 가능성도 높다는 점에서 다른 예산과 차이는 인정돼야 한다.

GGGI 이주섭 과장은 이와 관련, “예산 미집행에 의한 이월 문제는 연구소가 다른 나라의 기여금을 받는 특성 때문에 회계처리가 복잡해진 때문”이라며 “특히 개발도상국 프로젝트의 특성상 프로그램 예산으로 초기에는 예산이 적게 집행되고 후반 집행기에 80% 이상이 집행되는 특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우등생은 그 가족들이 다르다

민족국가의 주권과 권위가 약화되는 세계화 시대에 ‘국익’은 더욱 강조되는 덕목이지만, 5년 단임 대통령제를 채택하는 한국에서는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이 커지는 ‘국익’도 ‘당리당략’에 자리를 내줘야 할 판이다. 관료사회는 자주 정쟁(政爭)의 화마(火魔)를 피하기 위해 기계적 중립성을 요청받기도 한다.

‘MB의 치적’이란 무조건적 논리에 맞서야 하는 GGGI도 마찬가지다. 실제 MB 정부가 대표적 녹색성장의 성과로 내세우는 ‘4대강 살리기’ 사업과 ‘원자력발전소 수출’ 등과는 확실한 거리두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GGGI에서 최고집행책임자(CAO) 역할을 맡아온 외교통상부 서상표 녹색환경협력관은 “GGGI 사업에는 4대강과 원전은 포함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신부남 대사는 지난 10월 초 헬레 토닝 슈미트 덴마크 총리의 초청으로 김황식 국무총리, 송영길 인천시장 등과 제2차 글로벌녹색성장포럼 참석차 덴마크에 다녀왔다.

“보수당 출신의 전직 총리인 GGGI 라스 루커 라스무센 소장과 사회민주당 출신 현 총리가 녹색성장에 대해 열정에 찬 한목소리를 내는 것을 보고 부러웠습니다. 경제성장과 온실가스배출량 감축을 동시에 이루는 저력이 어디서 나왔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신 대사는 국제기구 비준이 안 되는 이유를 묻자 점잖게 “선진국이기 때문”이라고 했지만, 이처럼 정치권에 대한 직설적인 욕보다 훨씬 충격이 강해 보이는 말로 자신의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MB정부의 녹색성장정책은 이제는 하나의 시대정신이 된 ‘신재생에너지로의 인프라 혁신’을 소홀히 했다. 4대강 사업과 원전수출 등이 주된 액션 플랜으로 부각돼, 환경단체는 물론 일부 나이 지긋한 자전거 여행 마니아들을 제외한 일반 국민들로부터 그다지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민주통합당을 비롯한 야당들이 잇따른 국제기구의 성공에 큰 박수를 보내주면서 MB정부의 녹색성장을 정면으로 겨냥했다면, 꽤 큰 승점을 얻을 수도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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