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소영의 CQ] 교수와 대통령


가끔 일요일 이른 아침 워싱턴DC 시내를 산책한다. 모던과 클래식이 엉성한 듯 묘하게 잘 어우러진 분위기에 크고 작은 역사가 입혀진 거리를 커피와 쇼팽(의 피아노곡)을 벗삼아 무작정 걷는다. 그 흔한 자동차 한대 안 보일 때는 이 도시가 나를 위해 디자인된 듯한 평화로운 착각마저 든다.

돌아오는 길에 집에서 몇 블록 안 떨어진 곳에 위치한 하얀집 백악관을 지날 때가 있다. 어제까지 유난했던 관광객들의 카메라 찰칵거리는 소리, 억울한 심정을 글로 토해낸 성난 피켓의 외침은 이 시간만큼 새벽공기 속에 잠잠하다. 너무 조용해 하얀집 하나 전시해 놓은 야외박물관에 온 듯하다.

이럴 때 나는 스페셜 이벤트 플래너(special event planner)가 된다.

하얀색 건축물이니 새까만 밤에 업라이트조명(uplighting)을 위로 올려 하이라이트를 주면 깔끔할 것이다. ‘월화수목금토일’을 ‘빨주노초파남보’로 나눠 입히고 오즈의 마법사(The Wizard of Oz)의 오버 더 레인보우(Over the Rainbow) 바이올린 연주곡으로 분위기 조작(mood manipulation) 단계로 이끈다. 아니다. 바이올린 피아노 듀오가 낫겠다. 보컬인 하이톤의 바이올린이 피아노가 원곡으로 흐르는 애절함에 밝은 정서를 입혀 무겁지 않게?받쳐줄 것이다.

어느 미국인인들 어릴 적 꿈과 함께 했던 이 클래식을 사랑하지 않을까. 무지개 너머에 있을 아무도 가보지 않은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 흥미로운 모험에 대한 기대감, 긴장해소와 갈등해결의 실마리가 되는 곳…. 그 어딘가에 있을 ‘희망(Hope)’을 갈구하는 노래. 극히 대중적이지만 예술성을 포기하지 않은 명작이다. 콘셉트도 맞다. 이 하얀집은 희망을 주는 집이어야 한다.

이렇게 한참을 보안국(The U.S. Secret Service)이 들으면 어이없어 할 ‘안전불감’ 상상에 푹 빠져 있다가 다시 걷는다. 럭셔리한 상상에 빠져 있다 나온 나는 멀리 홈리스 피플(Homeless people)을 보며 이들을 위해 어떤 스페셜 이벤트를 기획할 수 있을까 또 묻는다. 상상이 하늘을 치솟고 수많은 아이디어가 분출되지만 내 자신을 놀래킬 만한 금메달급 아이디어가 없다. 그래서 나의 결론은 늘 “그 누가 못해도 이 하얀집에 사는 능력자는 할 수 있어야 한다” 이다.

이 하얀집은 3억 인구를 대표하는 사람이 사는 곳이고 우주여행을 가는 부자도 렌트를 할 수 없는, 세상사람들 다 아는 대단한 집이니 일단 집에 대한 예의를 갖춰야겠다. 어릴 적에 여행사 가이드가 할리우드 비버리힐즈 유명스타들의 화려한 집을 보여주겠다며 안내한 적이 있다. 나중에 왜 남이 사는 집대문 보려고 비싼 돈 내고 시간 버려야 했는지 후회된다면서 가이드를 무안하게 한 적이 있다. 이 하얀집은 다르다. 이 집은 남의 집이지만 궁금하다.

며칠 전 대학원 강의가 있었다. 늘 오프닝 디스커션(opening discussion)으로 3시간 수업을 시작한다. 이날의 주제는 최근 개최된 공화당/민주당 전당대회와 같은 정치컨벤션(Political Convention)의 지역경제적 효과이다. 통계적으로는 지역주민의 고용창출과 개인소득에 의미있게 기여하지 않는 것으로 나와 있다. 토론은 자연스럽게 몇 달 후 개최될 대통령선거 이벤트로 이어졌다. 다양한 국적과 개성을 지닌 대학원생들로 이뤄진 수업에서 성, 정치, 종교 이 세가지는 내가 스스로 금기시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날은 정치이벤트(Political events)와 정부이벤트 (Government events)를 다루니 자연스럽게 백악관 이벤트를 기획했던 전문가의 경험담, 백악관 이벤트 인턴십을 했던 제자들의 이야기를 하며 백악관 이벤트 주최자의 자격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되었다. 각자 나름대로 국가대표인 대통령은 이런저런 사람이어야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는데 나의 우매한(?) 질문에 단순하지만 보편적 진실과도 같은 공통된 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약속과 실천이다. 국민에게 무엇을 주겠다고 약속한 것을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일할 터전을, 건강한 노후를, 안정된 수입을, 안전한 사회를, 세금혜택을, 풍부한 밥상을, 밥상 위의 희망을, 교육의 기회를, 그리고 당신 자식의 행복을 등등. 약속은 이상적 미래형이고 실천은 현실적 진행형이기에 약속과 실천 사이의 리스크를 줄이고 성과가 드러났을 때 국민들은 약속받은 것과 얻은 것에 대한 차이를 판단하고 그 다음을 평가할 것이다.

약속은 ‘지키지 말라’고 있는 것이라는 우스갯소리에 쓴웃음을 짓는 우리는 다시 누군가의 약속에 현혹되기도 한다. 불행히도 이미 정치인들의 깨진 약속(broken promise)에 익숙한 대중은 그래도 오늘 희망을 갖는다. 희망이 생존의 이유가 된 결과다. 아마 과거에 지켜지지 않은 약속리스트를 돌아보면 희망은 가장 큰 거짓말이라는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으나 그래도 약속은 최선인가 보다.

교수직을 갖고 있는 나도 학생들과의 약속에 대해 생각해본다. 첫 교시 실라버스(syllabus, 강의계획서)에 대해 설명한다. 실라버스는 학생과 나와의 약속이다. 사인없는 일종의 계약이다. 열심히 수업에 충실하면 여러분이 이 수업을 떠날 때 수업 듣기 전과 다른 이런저런 결과를 얻게 된다고 명시한다. 그리고 구체적으로 약속한다. 여러분의 지적 성장을 위해 나는 이러한 계획을 갖고 있다고. 학생이 나의 약속에 대해 기대한 것과 학생이 얻는 것의 차이는 학기 말 학생들의 교수평가에서 알 수 있다.

가끔 정년이 보장된 교수직을 그만 두고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접한다. ‘프로페서(Professor)’라는 닉네임을 가지고 일반 미국인들에게 ‘굿(good)’ 이미지를 갖고 있는 제28대 우드로우 윌슨(Woodrow Wilson) 대통령, 최근으로 보면 지난 6월 당선된 이집트 모하메드 모르시(Mohamed Morsi) 대통령이 있다. 가끔 경제학자들이 경제 난국 타개를 외치며 나서기도 한다. 지난 1월에는 보스톤대학의 경제학교수인?라리 코틀리코프(Larry Kotlikoff)가 대통령 출마의사를 밝힌 적이 있다. 이들에게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질문을 던질 수 있겠는데 동종업(?)에 종사하는 나는 그들의 실라버스가 궁금하다. 실라버스에 숨어 있는 그들의 관리원칙과 지도성향은 감출 수가 없다.

실라버스는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제한적이다. 방대한 주제들을 한학기 15개도 안되는 세션에 나누기가 쉽지 않다. 몇 년 전에 2009년 연례 주주미팅에서 발표된 소니리포트를 보고 매우 공감한 적이 있다. 2010년 수요가 요구되는 최상위 10개의 직업은 2004년에 존재하지 않았던 직업들이며 현재 우리는 아직 개발되지도 않은 기술을 이용하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학생들에게 존재하지도 않는 직업을 준비토록 가르치고 있는데 그 ‘문제’라는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미국 노동부(The U.S. Department of Labor)는 현재 학생들이 38세가 되기까지 10~14가지 다양한 직업을 가질 것이며 2명 중 1명은 한 직장에서 5년도 안 돼 직장을 떠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동종 산업내에서 업종의 세분화로 인해 수평적 이동기회가 증가할 것임이 분명하다. 앞으로는 지금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직업환경이 급변하고, 직업인에게 필요한 새로운 지식과 기술이 끊임없이 요구될 것인데 인간의 평균수명 100세를 바라보는 현 시대에 대학을 마치는 대부분이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20대 초반이다. 나머지 인생 40~50년을 한 직장 혹은 같은 업종에 종사하기란 직업 소명의식이라는 아름다운 명제만으로는 더 이상 버티지 못하는 세상이 될 것이다.

기존 대학 수를 줄이고 마을마다 직업훈련센터 수를 증가시켜 시시각각 변할 미래직업환경에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믿는 나는 학생들의 미래직업 타이틀에 대해 생각하며 어떤 강의내용으로 내 고객인 학생들에게 서비스를 해야할 지 고민해 본다.? 2012년 현재 가르치고 있는 내용이 졸업 후 몇 년도 안 돼 현장에서 유용하지 않은 지식이 되지 않기 위해, 교실에서 듣지도 배우지도?않았던 새로운 직업에 맞닥더라도 상황을 분석할 수 있는 사고능력과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통찰력을 키우기 위해 매학기 실라버스 수정은 만만치 않은 작업이 되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교수는 길을 내는 작업을 하는 사람이 아닌가 싶다. 길옆 건축물은 배운 지식을 활용하여 훗날 학생이 세울 것이다. 새로운 건축물을 내면서 누군가는 또 옆길을 낼 것이다. 지식전달자인 교수가 닦는 길이라는 것은 당연히 배우는 사람보다 지식의 한 단계 혹은 몇 단계 위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행복의 길이 되었든 안전한 길이 되었든 계획서를 갖고 있는 대통령은 국민을 위해 길을 낼 수 있는 능력있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믿는 나는 궁금하다. 그럼 대통령은 어떤 면에서 국민보다 한 단계 위여야 할까? 직업고용창출? 기업이 하면 된다. 국민에게 봉사? 봉사왕으로 대처하면 된다. 국제관계 발전? 베테랑 외교관이 할 수 있다. 원활한 소통과 갈등해결? 범종교인과 협상전문가가 할 수 있다. 국민화합? 스포츠영웅이 가능하다…. 뉴스 속의 인물처럼 근접할 수 없는 대통령에게 직접 물어볼 수도 없고 기회가 되면 학생들에게 어떻게 생각하는지 살짝 물어봐야겠다.

가르치는 교수지만 학생들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알게 된다. 분명한 사실은 아무리 공부를 못하는 꼴찌라도 교수가 제대로 강의준비를 했는지 안 했는지를 알고 있다. 학생은 알고 있다. 교수가 실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마찬가지다. 무학(無學)의 촌로라 할지라도 무직의 백수라 할지라도 알고 있다. 대통령이 희망의 나라로 길을 내고 있는지 아닌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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