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소영의 CQ] 엄마를 향한 두가지 약속
어릴 때 어른들에게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가 “내 나이 돼 보면 안다”였다. 뭘 알게 된다고 하는 건지… 쩝! 철딱서니 없던 나의 질문 혹은 항변에 어른들은 그렇게 허무한 답을 주셨다. 그런데 신기하다. 나이들수록 절실히 느낀다. 그것이 극히 정확하고 완벽한 답이었음을. 진짜 그 나이가 되어야만 알게 되는 것들이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부모의 마음이다.
3년 전 갑자기 아버지께서 암으로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돌아가시면 그리운 사람이라더니 맞는 말인 것 같다. 마지막 순간을 같이 못한 것이 죄로 다가온다. 상상해 보았다. 곁에 있었다면 과연 어떤 말씀을 나에게 남겼을까. 그리고 여쭈어 보고 싶은 게 있다. 착한 딸이었는지 아니었는지 효녀였는지 아니었는지…. 이런 상상을 하다가도 왜 확인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울컥하고 남아있는지 나의 심리를 들여다본다. 아마도 잘 해 드리지 못했다는 죄송함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 한편으로는 당신의 자식으로 살아온 인생을 인정받고 싶은 심리가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자칭 태생이 범생이인 나는 심청이를 만나면 눈먼 아버지를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진 결정이 최선이었는지 묻고 싶었던 에고(ego)가 강한 아이였던 것같다. 그러면서도 수많은 효자효녀 스토리에 감동하고 기죽고 남들처럼 부모님을 기쁘게 하고 싶어 영어단어 암기장 첫장에 “부모에게 희망 주는 자식되자” 라고 적어 놓고 공자님께서 말씀하시길 최고의 효도는 입신양명이라 했으니 일단 공부는 해야겠구나 생각했었다. 일단 내가 중요했다. 부모는 웃는 아이에게서 희망을 발견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완벽한 환경을 못갖춰 준다고 불평하며 부모를 울리고 웃기는 아이였으니부모의 마음 헤아리기보다 늘 내 마음 앞장세우는 아이였던 것이다.
인생 통틀어 ‘효’에 관해 백분토론은 커녕 십분토론도 한 적 없고 효에 관해 심각하게 생각해 보지 않았던 나는 주위사람들이 생각하는 효에 대해 알고 싶어졌다.
미국 친구들에게 구글에 나와 있는 공자(Confucius) 이미지를 보여주며 열심히 효를 설명한 뒤 일주일 후에 예를 들어 달라고 했다. 한 친구는 부모를 행복하게 느끼게 해주는 거란다. 할머니가 디즈니랜드에 놀러가서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갖고 돌아온 후에 평화롭게 눈을 감았는데 할머니께서 행복하게 돌아가셨다고 했다. 디즈니랜드에 같이 놀러간 것이 마지막 효도였단다. 다른 친구는 부모가 자식에게 긍지를 느끼면 그게 자식이 할 수 있는 효라 했다. 또 한 친구는 지역신문(local newspaper)에 자기에 대한 나쁜 기사가 안났으니 자기는 효자라 했다. 또다른 친구는 (이 친구는 아버지를 제삼자 부르듯 이름으로 부른다) 자주 존 (John)에게 전화하고 문자 보내고 가끔 만나서 저녁 먹고 그렇게 관심을 갖고 당신을 돌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 효라 했다. 그 외 기타 등등. 다들 나름대로 자기만의 정의가 있다. 비슷하다. 사람 사는 지구촌에는 부모에게 향하는 공통정서가 있다.
웃기는 사실은 나를 포함해 모두가 자기만족적 경험을 바탕으로 해석을 하고 있으며 아무도 부모에게 직접 당신이 생각하는 효란 무엇인가요를 물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민망한 주제기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학교성적, 장래직업, 친구, 정치, 경제 등의 실용적(?) 대화주제에 밀려 집울타리 밖으로 가출한 철학이 되어버렸음을 느낀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효’라는 것은 부모의 마음을 알아나가는 과정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그 과정 속에서 도리는 스스로 찾아야 되는 것이고…. 두분 부모의 마음을 이해하고자 하는 동기를 갖는 것 자체가 60억 세계인의 평화를 위해 살겠다는 각오를 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일 것이다. 최선의 도리는 잘 모르겠다. 살아계실 때뿐 아니라 돌아가신 후에도 효는 계속되어야 한다고 했으니 잘 모르겠다.
자식이 태어나서 3년 동안은 부모가 눈을 못 떼니 부모가 돌아가시면 3년상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옛 조상님의 뜻은 이해는 가나 내몸 하나 건사하기 바쁜 21세기에 이곳저곳 이사다니며 살았던 평범한 나에게는 매미소리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암튼 부모님의 마음을 알아가는 과정인 ‘효’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던 나는 아버지를 산에 묻고 돌아온 날 혼자 남은 어머니의 손을 꼭 잡고 마음 속으로 두가지를 나에게 약속했다. 약속 하나, 1년에 한 번은 함께 외국여행을 간다. 약속 둘, 1년에 한번 어머니 생신 때 1만불을 보낸다. 이제까지 살면서 자주 전화드려야지, 찾아뵈어야지, 화내지 말아야지, 싫어하시는 것을 하지 말아야지, 음식을 해드려야지 등 해야지/말아야지 리스트를 적어 놓고도 스스로와의 수많은 약속을 지키지 못했던 나는 이 두가지만 지켜도 대견한 것이다. 앞으로 10년. 더 늙어지시기 전에,?열 번 밖에 안 된다. 기껏해야 10년의 약속 밖에 안 된다. 짧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