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연극동문회 ‘하얀중립국’…”세대초월 공감연기”
“조명 들어왔다. 뒤에 사람들은 다음 장면 스탠바이. 고개 숙이지마!”
연출가 최종률(미대 66학번) 씨의 음성이 관악문화원 공연장에 쩌렁쩌렁 울린다. 많은 사람이 휴가로 도시를?비운?6일 ?밤. 서울 신림동 관악문화원에서는 서울대 연극동문회(회장 이순재) 부설극단 관악극회가 공연을 앞두고 막바지 비지땀을 흘리고 있었다. 첫?작품 ‘하얀 중립국’이 8월23일~9월1일 대학로 동덕여대 공연예술센터에서 공연된다.
지난 3월 창단 이후 매주 한 차례 모여 호흡을 맞춰오다 지난 7월부터 2회로 연습 횟수를 늘렸다. 직장인이 많았지만 연습 날엔 한 걸음에 달려왔다. 초기 연습실을 제공한 김인수(공대 74학번) 한창텔레콤 대표는 프로배우이기도 하지만 대부분이 대학 졸업 후 연극과는 담을 쌓고 살았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왕년의 실력이 나왔다. 공연 1000회의 금자탑을 쌓은 서울대 연극동아리의 저력이다.
<금관의 예수>, <빈 방 있습니까>의 연출가 최종률 씨의 엄격한 지휘와 <한지붕 세가족>의 중견 배우 심양홍(문리대 64학번) 씨의 다정다감한 지도가 큰 힘이 되고 있다. 이날도? 연습무대에 선 심양홍 씨는 ‘아미’ 역을 맡은 문혜인(인문 04학번) 후배에게 “중얼거리지 말고 내용을 분명하게 전달하라”며 발성법을 교정해줬다.
이번 ‘하얀 중립국’에는 80대의 48학번 대선배로부터 20대 어린 후배까지 다양한 연령의 서울대 동문들이 함께 한다. ‘빨간 마후라’의 원로 영화배우 신영균(치의학 48학번) 씨, 국민배우 이순재(철학 54학번) 씨, 심양홍 씨가 신부로 출연해 무게감을 더한다. 총 출연배우 24명, 스태프 76명이 참여한다.
서울대 연극동문회 회장을 맡고 있는 이순재 씨는 “이번 공연을 시작으로 젊은 후배들과 함께 한마음으로 활동할 수 있는 무대를 계속 만들겠다”는 각오다. 49년 만에 연극무대에 서는 신영균씨는 “내 인생의 뿌리는 연극”이라며 각별한 애정을 보이고 있다.
‘하얀 중립국’은 스위스 작가 막스 프리시의 희곡 ‘안도라’를 현대적으로 각색한 작품으로, 지상낙원이라는 ‘하얀 나라’의 남성이 ‘검은 나라’의 여성과 결혼하면서 드러나는 집단의 편견과 인간의 이중성을 고발하는 블랙코미디다.
제작총괄을 맡은 윤완석(상대 73학번)씨는 “다민족사회로 진입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출신국가에 따른 편견, 배타적 태도와 공격성 그리고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왕따와 폭력 문제를 <하얀 중립국> 안에서 찾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대 연극동문회는 이 작품을 시작으로 다문화가정 자녀들을 위한 연극교실을 열 계획이며 이번 공연에 다문화가정 자녀들을 무료 초청한다고 밝혔다. <문의 070-7788-5331>
김남주 기자 david9303@theasian.asia
■ 공연 개요
제 목 하얀 중립국
일 시 8월23일~9월1일(월~목 오후 8시, 금~토 오후 4시, 오후 8시, 일 오후 4시)
장 소 동덕여자대학교 공연예술센터(대학로)
제 작 서울대학교 연극동문회
제작총괄 윤완석
연 출 최종률
원 작 막스 프리시 작 (Max Rudolf Frisch) 안도라(Andorra)
번 역 김혜영
각 색 최종률, 신영선
관람료 일반 3만원
※청소년 및 대학생, 장애인, 다문화가족, 국가유공자, 65세 이상 50% 할인
■ 작품 해설
하얀 중립국은 스위스 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막스 프리시(Max Frisch)의 대표작이며 가장성공적인 작품인 희곡 안도라(Andorra)를 원작으로 하였다. 막스 프리시는 이 작품을 통해 반유대주의 이념을 고발하고 타인과 자신에 대한 편견의 해악을 부각시켰다. 이 작품은 독일의 제3제국시대 당시의 선입견에 의한 유태인 배척주의, 박해와 학살을 소재로 하여 인종적 편견을 고발하면서 안도라에서 일어났던 사건이 특정한 시대와 공간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시대 어느 공간에서도 얼마든지 반복되어 일어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러한 가능성을 오늘의 현실에 맞게 각색한 작품이 <하얀 중립국>이다.
■ 줄거리
하얀 나라는 표면상으로는 평화를 사랑하는 이상적인 국가다. 그러나 실상 하얀 나라 사람들은 타국 사람에 대해 극히 폐쇄적이며 배타적이다. 그들은 자칭 지상낙원을 자랑하며 기묘하고도 이중적인 그들만의 삶을 즐긴다. 그러던 중 하얀 나라에서 사람들에게 존경 받던 교사가 젊은 시절 검은 나라를 여행하다 만난 검은족 여인과의 사이에서 사생아를 낳게 된다. 사람들의 비난이 두려웠던 교사는 진실을 숨기고 피살 위험에 빠진 한 노란족 아이인 시로를 자기가 구출해 입양했다고 거짓말을 하게 된다. 사람들은 관대한 척 교사의 영웅적인 행위를 칭송하며 그 아이를 받아들이지만, 시로가 청년으로 성장하자 본색을 드러내 점점 소외시키기 시작한다. 따돌림을 당할수록 시로의 인간성은 황폐해지고, 이복 여동생 아미와의 금단의 사랑만이 유일한 도피처가 된다.
모성본능을 이기지 못해 아들을 만나러 왔던 시로의 친모가 살해당하는 사건이 터지고 그 와중에 이웃 검은 나라의 검은 군대가 하얀 나라에 무혈입성하게 된다. 기상천외한 노랭이 검열에 의해 시로가 노란족으로 거짓 판명되면서 집단의 광기에 사로잡힌 마을 사람들은 시로를 살인범으로 몰아 처형장으로 끌고 간다. 자신의 거짓말로 인해 끝내 아들을 잃게 된 교사는 자살을 하고, 아미는 미쳐버린다. 거짓이 진실을 가린 이 비극적 죽음에 대하여 하얀 나라 사람들은 자기변명으로 일관하며 범죄행위를 덮어버리고는 익숙한 일상으로 다들 복귀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주점에서 희희낙락할 때 진실을 외면할 수 없던 노신부만이 집단의 광기가 빚은 이 끔찍한 죄악에 대하여 깊은 탄식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