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재석 칼럼] 비상계엄 열흘, 탄핵 정국…”그래도 희망을 보았다”

계엄 포고 열흘 시점, 일상은 평온하다. 직장인과 학생들은 출근과 등교로 발걸음이 바쁘고, 병아리 같은 유치원생 어린이들도 ‘삐약삐약’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여의도와 광화문에서 탄핵 찬반 시위가 연일 벌어져도, 일상은 변함없이 돌아간다. 증권시장 또한 큰 변동 없이 평상을 유지하고 있다. 주부들은 계엄 포고 첫날이 잠시소요를 제외하곤 사재기도 퍼 나르기도 하지 않고 있다.

거대 야당이 그동안 갈아놓은 칼을 청룡언월도 쓰듯 마구 휘둘러도, 여당이 혼란 속에서 12월 14일 있을 탄핵 2차 투표에서 어떤 스탠스를 보일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어도 일상은 평온하다. 대통령이 내란 기도 수괴 혐의로 경찰 수사 대상이 되어도, 경찰의 No.1, No2 역시 경찰 수사 대상이 되어도, 대통령과 전 국방장관과 전 계엄사령관을 포함한 관계 장성들이 고위공직자수사처의 수사 대상이 되어도, 이번 사태의 수사에서 소외된 검찰이 경찰 및 공수처와의 수사 갈등을 빚고 있어도 일상은 평온하다.

심지어 계엄 선포 해프닝 아흐레째인 12일 자신에 대한 탄핵과 수사에 배수진을 치겠다는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가 자신의 비상계엄 선포가 정당했다는 자기합리화와 야당을 향한 적개심으로 가득 찼어도 그걸 바라보는 대부분 국민들의 표정은 그러거나 말거나 다. 극히 일부를 빼곤 그냥 편안한 일상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의 그 같은 평정심은 어디서 오는 걸까?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엄청난 뉴스를 수시로 접해온 우리 민족의 수난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조선시대는 차치하고라도 해방 후 우리의 현대사를 보자. 6‧25→4‧19→5‧16→10‧17→10‧26→12‧12→5‧18→6‧29 등 굵직굵직한 사건 등에 치이다보니 웬만한 충격에 대해선 불감증이 생겨서 인 것 같다는 분석이 나옴직도 하다.

다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촘촘한 시스템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대한민국이 총합 세계랭킹 7위 국가로까지 평가받는 현실에서 이 같은 해프닝이 현실적으로 의도한 대로 이행되기 어렵다는 것을 이번 사태가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계엄 사태를 주도한 세력은 처음 그들의 시스템대로 진행했다고 착각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은 또 다른 시스템, 예컨대 국회의 계엄 조치 무효화 의결 등으로 인해 무위로 돌아갔다.  이후 모든 시스템이 계엄의 불법성을 지적하는 쪽으로 돌아갔음은 알려진 바와 같다. 세계에서 가장 악랄한 스탈리니스트 국가와 대치하고 있는 휴전선이 철통 같이 지켜지고 있는 것 또한, 우리 시스템이 건강하게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를 반영이라도 하듯,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피치, 무디스 등 3대 국제신용평가사는 10일 계엄 포고사태에서 비롯된 탄핵 정국에도 한국 국가신용등급은 여전히 안정적이라는 의견을 냈다. 특히 S&P는 비상계엄 사태가 한국의 국가 신용 등급에 미칠 여파를 두고 “실질적 영향이 없다”고 평가하면서 “비상계엄이 몇 시간 만에 해제됐고 한국의 제도적 기반이 탄탄한 것으로 판단한다”고 덧붙였다.

그래도 남는 의문. 무엇이 그토록 우리를 차분하게 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무엇보다 성숙한 시민의식 때문이 아닐까?

우리는 국내뿐 아니라 외국에 나가서도 이제 대한민국의 긍지를 뽐낼 정도로 성숙한 국민이 되지 이미 오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 바로 그 성숙한 시민이 가장 무섭다는 사실. 현상태에서 헤게모니를 쥔 더불어민주당이든 초대형 사태에 질질 끌려가는 국민의힘이든 가장 무서워해야 할 건 바로 민심이라는 사실을 직사해야 할 것이다.

필자는 이번 사태를 통해 다시 한번 대한민국의 희망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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