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영상의 글로컬 뷰] “방문동거(F-1) 비자도 일할 수 있게 해주세요”

<함박마을 메타포 고려인들의 삶과 이야기> 표지

[아시아엔=임영상 한국외대 명예교수, 아시아발전재단 자문위원] 2024년 11월 22일 오후 4시 인천시 연수동 함박마을 함박종합사회복지관에서 ’함박마을 아카이빙‘ 두 번째 행사로 <함박마을 메타포 고려인들의 삶과 이야기> 북콘서트가 열렸다. 첫 번째 행사인 <함박마을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 소감 나누기 행사가 열린 것이 2022년 11월 29일이니 만 2년 만이다. (<아시아엔> 2022-12-12 “[인천 고려인마을 ④] 함박마을 사람들의 삶과 이야기”)

2년 전에는 함박마을 주민들이 주인공이었다면, 이번에는 마을의 외국인주민, 고려인이 주인공이다. 8명의 고려인 구술자 중에 3명은 일터의 사정으로 참석하지 못했으나, 6명의 필자와 함박마을 주민들이 많이 참석했다. 인천교육청 관계자와 지역의 사회단체, 또 필자와 같은 손님들도 기쁜 마음으로 참석해 고려인 이야기책의 출판을 축하했다.

함박마을 고려인의 삶과 이야기 북콘서트에 모인 사람들. 맨 앞줄 오른쪽이 대표 필자인 디아스포라연구소 박봉수 소장이다.

2022년 3월 8일, 유튜브로도 생중계했던, 인천 연수문화원이 주최한 <고려인 이주 이야기 – 들꽃 같은 사람들> 북콘서트에서도 사회를 맡았던 박상문 ㈜인디엔드코리아 상임고문은 고려인 구술자와의 대화에 앞서 책을 미리 읽은 소감을 밝혔다. “8명의 고려인 이야기를 읽으면서 여러 차례 눈물을 흘렸습니다.” 필자 역시 지난 25년 동안 러시아와 중앙아시아, 우크라이나 등 구소련 현지에서, 또 귀환 동포로 전국의 고려인마을에 사는 고려인의 삶을 만나면서 종종 가슴이 먹먹해지곤 했었다.

“방문동거(F-1) 비자도 일할 수 있게 해주세요”

“저는 현재 비자가 방문동거(F-1)라서 구직 활동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도 함박마을에서 주민으로서 봉사활동을 하고 싶은 마음에서 ’인천고려인엄마들‘ 모임 회원으로 마을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페르가나에서 시작된 실, 함박마을에 수놓다 구잘‘, 93쪽) “와이프는 고려인이구요. 남편이 러시아 사람이에요. 남편이 일해야 먹고 살 수 있는데, 남편이 일할 수 없어요. 그런데 와이프는 지금 암에 걸렸어요. 일할 수 없어요. 그리고 아이도 둘이나 있어요. 치료도 받아야 합니다. 이 가족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거지요?” (’고려인 맘들의 대모 차예카테리나‘, 240쪽)

고려인과 결혼한 우즈벡 사람 구잘은 왜, ’한국에서 고려인 가족이 일할 수 없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구잘이 열심히 활동하는 인천고려인엄마들(맘카페) 대표인 차예카테리나는 기회가 닿을 때마다 F-1 바자 취업이 중요한 문제라고 역설하고 있다. 2023년 7월 8일 유정복 인천시장 일행이 함박마을에서 ’고려인 문화주권‘ 제막식 행사를 할 때도 고려인엄마들과 함께 현수막을 걸고 호소했다.

인천고려인엄마들 회원 가족들이 F-1 비자 취업 허용을 요구하고 있다. (<기호TV> 유튜브 캡처)

”처음 함박마을에 왔을 당시에 한국인들이 많았는데 요즘 밖에 나가면 이제 한국인들 보기 힘들 정도예요.(…) 둘째 아이가 중학교 진학할 때쯤에 이사할 생각을 하고 있고 학교도 이렇게 좀 한국인들이 있는 학교로.”(’함박마을의 따뜻한 마음씨 김크레스티나‘ 150쪽)

“학교에서도 선생님들이 너무 어려워요. 우리 학생들이 많아서. 그리고 다 러시아말로 말하고, 선생님한테도 욕을 많이 하고 있어요. (…) 우리가 다 들을 수 있고. 그리고 우리 보면 욕을 안 해요. (’장애와 맞선 고려인 가족의 힘 최마리아‘, 279쪽)

“쓰레기 분리배출 문제 때문에 한국인들하고 갈등이 많잖아요. (…) 남자도 여자도 길에 다니면서 담배를 피우고, 심지어 유모차에 아기를 태우고 담배를 피우고 있어요. 그리고 담배꽁초를 함부로 버려서 길에 널려 있는 게 담배꽁초잖아요” (’고려인의 손과 발 남이리나‘, 172쪽)

1만2천여 주민 중에 9천여 명이 외국인 주민이고 그중에 97%가 고려인인 함박마을. 연수동의 문남초등학교와 함박초등학교는 이미 절반 이상이 고려인 학생이다. 수업시간도 통역 선생님이 도와주니 한국어를 열심히 배우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한국인과 상생(相生)하기 위해서는 “한국어를 배워야 한다”라고 주장하는 구술자(남이리나)도 있다. 그뿐만 아니다. 2023년 1월부터 함박마을 도시재생주민협의체 임원들 12명이 매달 회비를 갹출해 개최하는 어울림축제에 열심히 참여하는 고려인들도 적지 않다. ‘자원봉사의 달인 김인나,‘ ’미래의 희망을 키우는 서마리아,‘ ’고려인의 안전한 생태계를 꿈꾸는 지예지‘ 등의 구술자들이 늘 앞장서고 있다.

2024년11월 함박마을 어울림축제 웹자보와 디아스포라연구소가 환우돕기를 위해 내놓았던 물품들

2024년 11월 함박마을 어울림축제에는 단체마다, 각자 자기가 팔거나 교환하고 싶은 물건을 가지고 나와서 홍보도 하고 판매도 하고, 교환도 했다. 디아스포라연구소는 판매금 전액을 고려인 활동가 중 암을 앓는 여성을 지원했고, 주민협의체는 수익금과 임원들이 갹출해 연수구청에 장학금으로 기부했다.

이주와 재이주의 삶을 살아온 고려인, 한국에서도 고려인 상점가가 형성된 안산과 인천 등에 익숙해졌다. 그러나 고려인이 적은 인구감소지역 지방 도시가 일자리와 저렴한 주거, 자녀교육 등에서 수도권보다 좋겠다는 ‘정보’가 있다면, 고려인가족들은 이주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충북 제천이 좋은 사례를 보여주고 있으며, 경북 영천과 전북 익산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아직도 지역특화형 비자 사업이 주는 비자 혜택을 잘 모르는 고려인가족이 많다. 인구감소지역 지방 도시들은 한국어를 상실한 고려인의 한국 정착 초기에 필요한 한국어 야학교실과 수시로 각종 상담을 담당할 수 있는 동포(고려인)지원센터도 운영하고 있거나 또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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