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신앙이란…”내 실체에 대한 솔직한 자백”
스가랴 7장
“그 금식이 나를 위하여, 나를 위하여 한 것이냐 ”(슥 7:5)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지난 여러 해 동안 해온 그대로, 다섯째 달에 애곡하면서 금식하는 것을 계속해야 합니까?” 사람들의 질문에 하나님께서 다른 질문으로 대답하십니다. “그 금식이 나를 위한 게 맞느냐?”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이냐?”
유대인들은 바벨론에 사로잡혀 간 이후 매년 기간을 정해서 금식을 했습니다. 포로 생활이라는 극한의 상황 속에서 일년에 최소 한달씩 금식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그것을 포로 생활이 지속되는 70년 동안 빠짐없이 지켰습니다.
70년이면 한 사람의 일생입니다. 금식을 며칠까지 해보셨습니까? 만약 우리 주변에 누군가가 매년 한달씩 무려 70년 동안 금식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신앙은 어떻다고 평가받을까요?
무언가 꾸준히 지속적으로 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직장에서 30년 근속상을 주는 이유가 있습니다. 긴 세월, 한길 걸어온 수고와 노고는 상으로 치하할 만하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 정말 대단한 민족입니다. 포로 생활 70년 동안 그들은 변함없이 신실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70년의 금식 생활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냐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평생 교회 다녀도 하나님과 무관할 수 있습니다. 다들 하나님을 위해서라고 말은 합니다. 주의 이름으로 하는 일이고 하나님을 위해서라고 굳게 믿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 굳은 믿음을 향해 질문하십니다.
“누구를 위한 것이냐?” 묵직한 질문입니다.
사탄 숭배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자신 숭배입니다. 사탄 숭배는 우상 숭배라는 것이 티가 나기라도 하지, 자신 숭배는 하나님을 섬기고 있다는 착각에 스스로가 감쪽같이 속습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 길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인간은 무엇을 해도 자기중심적입니다. 하나님을 믿어도 나 중심적으로 믿습니다.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면서도 실상은 나를 위할 때가 압도적으로 많지 않습니까? 내가 믿는 하나님보다, 하나님을 믿는 내 믿음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좋은 신앙이란 이와 같은 내 실체에 대한 솔직한 자백이자 시인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슨 일을 했는가?”보다 “하나님이 나를 위해 무슨 일을 하셨는가?”를 기억하고 사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