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20-50클럽’의 출처
요즘 ‘20-50클럽’(인구 5000만명, 국민소득 2만달러 이상 기준을 충족하는 국가)이란 용어가 회자되고 있다. 이 용어가 널리 사용되게 된 계기는 5월28일자 <조선일보>에 ‘세계 7번째, 20-50클럽 오른다’는 기사가 나간 이후였다. 이후 기획재정부의 보도자료에서 이 용어가 인용되고 이명박 대통령이 현충일 추념사에서 언급하면서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게 됐다.
이후 ‘20-50클럽’이 어디서 나온 용어인지, 세계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용어인지를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급기야 <미디어오늘>(6월26일)과 <주간경향>(983호)은 ‘20-50클럽’에 대한 출처와 의미에 대한 비판적 기사를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미디어오늘>과 <주간경향>은 <조선일보>를 출발점으로 보지만 사실 ‘20-50클럽’은 정운찬 전 총리가 총리 시절에 만들어 즐겨 쓰던 용어였다. <미디어오늘>의 허완 기자는 야구용어인줄 알았다고 기사 서두에 밝혔는데, 정 전 총리가 야구를 좋아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정 전 총리는 우리나라에 자부심을 갖자는 취지에서 강연 서두에 이 용어를 종종 언급했다.
덧붙여 정 전 총리는 우리나라가 세계 5대 스포츠 이벤트를 치룬 몇 안 되는 나라라고도 했다. 정 전 총리가 만든 신조어를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5-20-50클럽’이다. 20-50클럽 국가 중 동계·하계 올림픽, 월드컵, 세계육상선수권대회, FI 그랑프리 대회를 모두 개최한 나라는 한국, 일본,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가 유일하다.
하지만 정 전 총리가 활동할 당시 공식인구가 5000만 명이 되지 않아 언론에서 받아쓰기엔 무리가 있었다. 공식인구가 5000만 명을 넘어선 후 <조선일보>가 적극 애용하면서 많은 이의 입에 오르내리게 된 것이다. 사석에서 만난 정 전 총리는 “용어 사용에 대한 로열티를 받아야겠다”고 농담하기도 했다.
<주간경향>은 장덕진 서울대 교수의 말을 인용해 “20-50클럽이 해외에서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것 같지는 않다. G20 개최로 어마어마한 이득을 볼 것같이 발표했던 것처럼, 20-50클럽도 국내 정치적인 필요에 따라 만들어진 것 같다”고 비판했다.
<미디어오늘>도 “자부심은 스스로 갖게 되는 것이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며 “부러 자부심을 갖도록 강요 또는 고취하는 건, 오히려 뿌리 깊은 열등감의 다른 표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두 매체에서 밝혔듯 ‘20-50클럽’은 G20 같은 보편적인 용어가 아닌 행정부 2인자에 의해 만들어져 한 언론사가 애용하면서 널리 알려진 신조어 불과하다. 그렇다고 이 용어를 사용하면 안 되는 어떤 이유가 있을까? 국제적 기준이 아니라서? 아님 한 나라의 상황을 표현하기엔 부적절해서?
국내 언론에서 국가의 지표를 나타내는 용어를 쓸때 꼭 국제표준이 있어야 하나? 또 7개 나라만 충족한다면 그것으로 의미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20-50클럽은 신조어지만 팩트임에 틀림없다. 국민이 이 사실에 자긍심을 갖든 진실을 호도한다고 생각하든 그것은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이의 몫이다.
김남주 기자 david9303@theasian.as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