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추적자> 박근형의 ‘명품’ 연기
요즘 SBS 월화드라마 <추적자>가 장안에 화제다. 인터넷에서는 “웬만한 ‘미드’보다 더 잘 만들었다”고 네티즌들의 칭찬이 자자하다. 박근형, 김상중의 극중 대사는 ‘어록’으로 정리될 정도다.
얼마나 재미있기에 그런가 싶어 지난 주말 TV 앞에 앉았다. 그리곤 그 자리에서 10회 분을 연속해서 봤다. 옆에서 기저귀 갈아달라고 우는 8개월 된 아들도 외면하면서.
대선이라는 흡인력 있는 소재, 탄탄한 시나리오, 빠른 전개, 배우들의 명품 연기 등이 어우러져 잠시도 눈을 뗄 수 없었다.
특히 박근형의 카리스마 넘치는 회장 연기가 압권. 올 연말 SBS 연기대상감이라는 소리까지 들린다. 박경수 작가의 통찰력 넘치는 대사가 박근형 씨를 만나 훨훨 날았다. 3일 12화에서 서회장(박근형)이 아들 서영욱(전노민)에게 자존심을 버리라며 충고하는 장면은 인상적이다.
“내 말 잘 듣거레이. 자존심은 미친년이 머리에 꽂고 있는 꽃과 같은기라. 와 시골 마을에 꽃 꽂고 다니는 미친년이 한 명씩 있지 않나. 그런데 희한하재. 얼굴을 맨지고 때리도 하하 웃던 아가 머리에 꽃을 맨지면 살쾡이코롬 변해서 덤비는기라. 자기한테 머리의 꽃이 제 몸보다 중요한 기다. 사람들은 미쳐서 그런 갑다 하겠지만 내가 볼 땐 다 똑같은 기라. 사람들은 머리에 하나씩 꽃을 꽂고 산다. 아무 쓸모없는데도 제 몸보다 중요하다고 착각하고 사는 게 하나씩 꼭 있다. 너한텐 그게 자존심인기라”
박근형 씨는 천부적 소질의 연기자로 불린다. 과거 실험극장 시절 일화 하나. 박근형 씨가 공연을 한 달 정도 앞두고 배역을 펑크 내는 바람에 언더로 뛰던 배우가 공연 준비를 하게 됐다. 그러던 중 공연 3일을 앞두고 박근형씨가 나타나 다시 배역을 맡겨 달라고 간청해 다시 시켜봤더니 수개월 연습한 배우보다 오히려 뛰어나더란다. 3일 연습 후 올린 공연은 대성공이었고.
언젠가 연기자 이순재 씨를 만나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요즘 선배 배우 가운데 젊은 배우들에게 잔소리하는 선배들이 많지 않은데, 나와 박근형이 유일하게 발음, 표정을 지적한다. 그러다보니 몇몇 스타급 연기자들은 드라마를 선택할 때 우리가 출연하는지 미리 살펴보기도 한단다. 출연 명단에 있으면 빠지려고. 때로는 그 친구들의 영향력 때문에 우리가 밀려날 때도 있다.”
박근형 씨에게 혹독한 연기 수업을 받은 사람은 한 두 사람이 아니다. 전도연과 이성재 씨는 과거 일일 드라마에 박근형 씨와 함께 출연해 발성 연습 등 혹독한 연기지도를 받았다. 박근형 씨는 후배 연기자들이 늦으면 큰 소리로 야단치는가 하면, 약속시간에 제때 도착하지 않는 연기자들에게 벌금을 물리는 등 ‘엄격한 아버지’로 통한다고 한다.
<추적자>에 스타급 꽃미남, 꽃미녀가 없는 이유가 박근형 씨의 존재감 때문이 아닐까. 그 덕분인지 <추적자>에 빅스타는 없지만 대신 손현주, 김상중, 류승수, 송영규 등 연기 9단의 주연, 조연들이 가득하다.
박근형 씨는 1958년 휘문고 연극반에서 연기를 시작해 50여 년의 연기 인생을 살았다. 연예인이면 누구나 연기자가 되는 시대, 그에게서 진짜 배우의 모습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