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하나님을 내 손으로 쥐고 흔들다

사사기 17장

“어머니께서 은 천백을 잃어버리셨으므로 저주하시고 내 귀에도 말씀하셨더니 보소서 그 은이 내게 있나이다 내가 그것을 가졌나이다 하니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하니라”(삿 17:2)

미가의 어머니는 복과 저주의 기준이 명확했던 사람입니다. 돈을 잃어버리고는 상스러운 저주를 거침없이 퍼붓더니, 돈이 다시 들어오자 이내 평온함을 되찾고 부드러운 사람이 됩니다. 따뜻한 축복의 말을 아끼지 않습니다.

“내가 내 아들을 위하여 한 신상을 새기며 한 신상을 부어 만들기 위해 내 손에서 이 은을 여호와께 거룩히 드리노라”(삿 17:2)

이 어머니는 무당에게 내는 복채와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을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헌금함에 돈을 넣는다고 다 하나님께 드린 것이 아닙니다. 헌금의 기준은 입금처가 아니라 돈의 출처에 있습니다. 어떤 동기에서 나온 돈인가? 이것에 대한 점검이 없다면 하나님께 드린 돈으로 우상을 만드는 모순이 생기고 맙니다.

“이에 미가가 이르되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하니라”(삿 17:13)

집에 신당도 있었겠다, 주문 제작한 신상도 도착했겠다, 이제는 제사장만 있으면 금상첨화였던 차에 우연찮게 레위인을 만납니다. 하나님이 만나게 해주신 사람이라고 확신하지 않았을까요? 그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레위인을 자기 집안의 제사장으로 고용합니다.

내 뜻대로 움직여줄 제사장, 내 입맛에 맞는 메시지를 전해줄 설교자, 내가 원하는 복을 빌어줄 영적 리더를 돈 주고 산 것입니다. 이렇게 제사장을 고용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이미 우상숭배적입니다. 하나님을 내 손으로 쥐고 흔들겠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사기 17장은 미가의 가족 이야기입니다. 그들의 평범한 일상을 다룬 다큐드라마 한 편을 보는 것 같습니다. 이 평범한 가정의 이야기가 그저 그 시대 그들만의 이야기일까요?

“내 뜻대로 움직여줄 제사장, 내 입맛에 맞는 메시지를 전해줄 설교자, 내가 원하는 복을 빌어줄 영적 리더를 돈 주고 산 것입니다. 이렇게 제사장을 고용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이미 우상숭배적입니다. 하나님을 내 손으로 쥐고 흔들겠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사사기 17장은 미가의 가족 이야기입니다. 그들의 평범한 일상을 다룬 다큐드라마 한 편을 보는 것 같습니다. 이 평범한 가정의 이야기가 그저 그 시대 그들만의 이야기일까요?”(본문 가운데) 고난주일 첫날 십자가란 내게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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