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사명감과 익숙함
신명기 34장
“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신 34:7)
기력이 다하여 생을 마감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몸이 더 이상 생명을 유지할 여력이 남아 있지 않을 때 우리는 내쉰 숨, 다시 들이쉬지 못합니다. 그러나 모세는 아직 눈의 총기가 가득한데 하나님이 불러가십니다. 모세 스스로도 더 할 수 있겠다고 느꼈습니다(신 3:25).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기에 충분한 기력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모세를 멈추어 세우시고는 그만하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를 기억해야 합니다. 므리바에서 마치 자신이 하나님이라도 된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하나님을 대리하는 일이 그에게 너무 익숙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하는데 도가 튼 것입니다.
어떤 일이든 오랜 시간 꾸준히 하다보면 익숙해지곤 합니다. 처음 할 때보다 일이 훨씬 수월해집니다. 도가 트는 경우도 있습니다. 달인의 경지에 오르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명감과 익숙함은 상극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도가 튼다는 것은 위험신호일 수 있습니다. 할만하다 싶은 생각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과 떨림이 퇴색되기 때문입니다.
40년 전, 80세의 모세는 하나님께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나는 자격도 없고, 그럴 만한 힘도 없고, 파라오를 설득할 말주변도 없고, 자신도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못하겠다는 모세를 세우시고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하나님이 능력이 부족하셨다면 능력있는 사람을 세우셨을 것입니다. 가나안 정복에 있어 일의 효율을 따지셨다면 굳이 리더십 교체를 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도가 터서 달인의 경지에 오른 모세를 계속 사용하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기력이 남아서 더 할 수 있다고 하는 모세를 멈추어 세우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힘이 있다고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힘이 없다고 못 할 일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면 할 수 있고, 불러가시면 그만해야 하는 일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나의 쓸모를 평가하는 분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산산조각난 유리파편도 예술가의 손에 들리면 스테인드 글라스가 됩니다. 인생이 깨어지는 것도, 붙여지는 것도 다 하나님의 기획 안에서 진행되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