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우리가 드릴 영적 예배
로마서 12장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의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우리가 드려야 할 영적 예배는 몸을 드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구절에서 ‘영적’이라는 단어의 헬라어를 보면 ‘로고스’라고 되어 있습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주로 spiritual 또는 resonable로 번역하고, 한글 성경의 공동번역은 ‘진정한 예배’로, 새번역은 ‘합당한 예배’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를 다 종합해보면 로마서 12장 1절은 우리가 드려야 할 본질적인 예배가 무엇인가? 예배의 본질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 당시 로마인들은 영혼은 깨끗하고 몸은 더러운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몸과 영혼의 이원론은 헬라 철학의 근본적 전제입니다. 몸은 영혼의 껍데기일 뿐이라는 것이 로마인들의 사고방식이었습니다.
로마서 12장 2절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라는 말이 있는데, 당시 로마에서 신앙생활하고 있는 성도들이 가장 쉽게 본받을 수 있는 것이 로마인들의 이원론적 세계관이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전혀 다른 세계관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영혼의 부활이 아니라 몸의 부활이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몸’의 부활을 믿습니다. 예수님을 기념하는 가장 중요한 의식인 성찬식은 주님의 ‘몸’에 참여하는 의식이라는 것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선포를 들은 사람들은 언제나 몸의 회복이 함께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은 죄용서와 구원이 단순히 영혼의 영역에서만 일어나는 국소적 현상이 아니라 전인격적 변화라는 것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전인격적인 것이 가장 영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 예수님께서는 다툰 형제와 먼저 화해하고 나서 예배를 드리라고 하셨겠습니까? 인간 관계가 틀어진 상태를 영적이지 못하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왜 제사장이나 레위인이 아니라 선한 사마리아인이 인정을 받았을까요? 한 생명을 살리는 일이 그 어떤 종교적 신령함보다 더 신령하다는 것입니다.
나는 어떤 것을 신령하다고 여기며 살고 있을까요? 성경이 영적이라고 여기는 것들은 외면한 채 내 눈에 신령해 보이는 것들에 마음이 빼앗겨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