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구원받은 자가 누리는 평안
로마서 5장
2023년, 지앤컴 리서치가 만 19세 이상의 전국 개신교인 2000명을 대상으로 신앙의식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신앙생활의 이유에 대해 묻는 항목에 ‘마음의 평안을 위해서’라고 응답한 비율이 42%로 가장 높았고, ‘구원과 영생’이라고 응답한 비율이 36%로 그 다음이었습니다.
그런데 6년 전에 실시했던 동일한 설문에서는 ‘구원과 영생’이라고 답한 비율이 42%로 가장 높았고, ‘마음의 평안’이라고 답한 비율이 37%였습니다.
나는 왜 예수를 믿는지 한번 생각해 봅니다.
구원받으면 평안할 수 있지만, 평안하다고 구원받은 것은 아닙니다. 마음의 평안(Inner peace)은 음악 감상이나 독서, 명상, 수양, 운동 등을 통해서도 충분히 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롬 5:1)
로마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누리게 되는 하나님과의 화평에 대해 말합니다. 화평은 헬라어로 에이레네eirene인데, 평화, 평안으로도 번역할 수 있고, 히브리어로는 ‘샬롬’입니다. 구원 받으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화평은 내 마음의 평안이기 전에 창조주와의 관계 회복입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된 인간만이 자기 자신과의 관계도 평안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애착 인형, 애착 베개라는 것이 있습니다. 인간은 인형이나 베개와 같은 헝겁 덩어리와도 애착 관계가 잘만 형성되면 그것을 품에 안고 있는 동안 평안을 누립니다. 하물며 사람이 창조주 하나님과 애착 관계가 형성되면 어떨까요?
구원이란 하나님과 애착 관계가 회복되는 것입니다. 불안한 것들과 형성되어 있었던 애착을 끊어내고 불변하시는 하나님과 애착을 형성하는 과정이 신앙생활입니다.
로마서는 팍스 로마나pax romana시대에 기록되었습니다. 로마와의 화친이 곧 평화를 의미하던 시대에 바울은 하나님과의 화평을 말했습니다.
오늘날은 부에 의한 평안, 사회적 위치에 의한 평안, 외모에 의한 평안, 힘에 의한 평안, 약물에 의한 평안, 볼거리/놀거리에 의한 평안을 말하는 시대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얻은 평안이 얼마 가지 못한다는 것을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압니다. 사람들이 애착으로 시작해서 집착에 이르는 이유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집착적이지 않습니다. 그 사랑에 붙들리면 우리 또한 집착으로부터 풀려납니다. 존재의 근원이신 분과 애착이 시작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