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쓰임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받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장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고전 1:9)
하나님이 우리를 왜 부르셨을까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위해 부르셨습니다. 써먹기 위해서가 아니라 교제하기 위해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사역보다 사랑을 위해 부르셨습니다.
쓰임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받는 것입니다. 꼭 일이 있어야 부른다면 그건 알바 모집 아닐까요?
세상은 일이 있어야 부릅니다. 그리고 쓸모를 고려해서 부릅니다. 쓸모가 없으면 안부릅니다. 그가 나에게 얼마나 쓸모있는가? 나는 그에게 얼마나 쓸모있는가? 이것이 인간의 가치를 평가하는 세상의 기준 아닌가요? 소위 몸값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역하다 지치는 이유
하나님나라에 할 일이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오전 9시에도 사람을 부르시고, 오후 5시에도 사람을 부르셔서 일을 시키시고는 똑같은 일당을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마 20). 효용가치나 쓸모에 따라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부모는 아이가 태어나준 것만으로도 기뻐하지만, 사장은 이익을 가져다주어야 기뻐합니다. 아이가 자라면 인간 부모는 점점 사장같이 변하기도 하지만 하나님은 변개치 않으시고 끝까지 아버지가 되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안심하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시급이 아닙니다. 일당도, 월급도, 연봉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복을 주시고, 복이 되게 하시려고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그 복은 바로 그리스도와의 연합입니다. 일을 시키려고 부르시기 전에 교제하려고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일 없어도 그냥 찾아가고 그냥 연락할 수 있는 게 사랑입니다. 우리는 꼭 무슨 일이 생겨야 하나님을 찾지만, 하나님은 일 없어도 늘 우리를 찾고 부르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몸값을 예수님의 목숨값으로 격상시켜 놓으시고는 영원한 생명을 선물하셨습니다.
만약 꼭 시키실 일이 있다면 사랑을 확인한 관계에서만 그 일을 맡기십니다. 사랑 없이 사역하면 악해지고 독해집니다. 그리고 그 악함과 독함이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상처가 됩니다. 예수님은 사랑을 먼저 확인하시고 베드로에게 사역을 맡기셨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양을 먹이라”(요 2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