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한 사람이 걸어온다’ 최명숙
한 사람이 온다.
한 사람이 다가왔다.
구름사이 빗살무늬 햇살아래
금빛 은행나무 길을 지나
가을 길을 걸어왔다.
투명하게 퍼지는 푸른 빛깔 종소리
낙엽 쌓인 성당의 돌담길을 따라
해묵은 기억의 잔영들이 피어있고
종탐위로 뻗은 담쟁이덩굴의 붉은
잎보다 더 붉은 사랑.
죽는 날까지 떨어지는 가을빛을 견디며
손을 잡아주며 옷깃을 여며주고
내 가슴을 묻어줄 한 사람의 기도.
사랑의 깊이를 짐작할 수 없어도
살아가는 길목마다 그 온기 따뜻하고
어둠의 실크로드 가을저녁 위를
걸어오는 한 사람.
그 길을 걸어와 내 앞에 선 한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