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노후 생활 ‘명품’으로 만들려면

“(나는) 노년에 정신의 빵을 만들면서 혼자 잘 지내려고 노력한다. 고독도 잘 익혀 삶의 깊은 맛이 나게 하려고 한다. 그 또한 명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중학교 3학년인 손녀는 빈 시간이 거의 없다. 내가 보고 싶어 하니까 손녀는 학원 근처의 치킨집에서 만나자고 했다. 치킨을 주문하고 잠시 기다리는 동안에도 손녀는 손에 수첩을 들고 거기 적힌 영어단어들을 외우고 있었다. 그 모습에 나의 중학시절이 겹쳐진다. 내가 영어를 공부하고 있으면 할아버지가 다가와 따뜻한 눈길로 말했다.

“너무 열심히 하지 말거라. 일류가 안 되도 자기 하고 싶은 것 하면서 살면 된다. 사람은 다 제 먹을 것 타고 났다.”

할아버지는 내가 어떻게 살기를 바란 것일까. 인생의 전반부는 뭔가가 되고 싶었고 돈이 많았으면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다른 사람의 가치 기준에 따라 나를 맞추고 살았다. 30대 중반쯤 인생관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이 삶에서 나는 무엇을 찾는 것일까 하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말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 뭐지? 내가 혼자 즐길 수 있는 취미가 뭐지? 라는 생각이 엄습했다. 내가 정말로 추구하는 목표와 그 방법만 찾으면 노년까지도 인생을 혼자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버지는 기나긴 노년의 적막을 어떻게 보냈을까. 아버지는 젊어서 사진을 찍는 게 취미였다. 동네 사진관을 한 적도 있다. 인생 후반부 아버지는 새를 좋아했다. 집에서 수십 마리 예쁜 새들을 키우면서 혼자 즐겼다. 아버지는 저세상으로 가기 전까지 그렇게 살았다. 어쩔 수 없이 나도 아버지를 닮은 것 같다. 혼자 지내는 게 훨씬 마음이 편한 것 같다.

어느 날 우연히 바둑을 두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어려서부터 바둑을 좋아하다 보니까 평생 바둑을 두고 살았다고 간단히 말했다. 뭔가 느껴지는 말이었다. 작은 차를 자기 집 삼아 전국을 흘러 다니는 친구들이 있다. 달빛에 번들거리는 밤바다를 보면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만드는 모습도 괜찮은 것 같았다. 자신만의 일정을 만들어 조정하고 관리하는 자연인들이었다. 남들의 가치관에 흔들리지 말고 하늘이 내려준 자기의 길들이 각자 따로 있는 건 아닐까.

내가 하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었던 일과 혼자 즐길 수 있는 취미를 가질 수 있다면 노년까지 혼자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생각해 봤다. 살아 오면서 뭐가 가장 즐거웠지? 책과 영화가 어려서부터 가장 친한 친구였다. 어둠침침한 만화방과 극장이 나의 천국이었다.

20대쯤이었다. 눈덮인 얼어붙은 강가의 방을 빌려 한겨울을 지낸 적이 있었다. 강이 얼 때부터 녹을 때까지 마을은 고요했다. 그 시절 혼자 책을 보면서 하던 내면의 여행이 지금도 기억의 벽에 단단하게 붙어있다.

군대 시절 적막한 전방 고지의 막사에서 책을 읽으면서 그 안의 많은 인물들과 대화를 나누면 외롭지 않았다. 수많은 철학자나 수행자들, 현인들의 정제된 말 한마디를 듣는 게 좋았다. 2-3년 시집만 읽은 적이 있다. 주옥같은 말들을 골라 노트북에 담아 올 때면 강가에서 그물을 당겨 은빛 물고기를 잡아 오는 낚시꾼 같은 느낌이었다.

어느 시점부터 자연스럽게 글을 썼다. 글쓰기는 정신의 빵을 만드는 작업이었다. 내가 겪은 체험들이 밀가루였다. 거기에 빵에 들어가는 버터와 우유 같이 정서와 철학을 집어 넣어 반죽을 만들었다. 그걸 영혼의 불에 구우면 정신의 빵이 될 것 같았다. 시간이 가면서 빵을 만드는 재료의 질을 높여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혼자 제주도에서도 살고 인도여행을 좋아하는 시인의 수필집을 통해 ‘궤렌시아’라는 걸 알았다. 음악을 들으면서 아름다운 문장을 쓰거나 반복해서 읽어보라는 것이다. 그걸 실행해 봤다. 즐거움도 있었지만 질 좋은 글빵을 만들 수 있는 재료가 내면에서 만들어지는 것 같았다. 마음 속에서 문장들이 녹고 섞여 한결 고급스런 향기가 나는 재료가 되는 것 같았다.

한 중견 판사로부터 성경 속의 시편 23장을 천번 써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그렇게 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했다. 몰입해서 시편을 한자 한자 정성들여 써 보았다. 마음이 텅 비어지는 느낌이다. 그 자체가 깊은 기도인 것 같았다.

그걸 쓰면서 조선의 명필인 추사 김정희의 말이 떠올랐다. 한일자를 만 번 쓰니 글자에서 강물이 흘러나오는 것 같더라고 했다. 시편을 계속 쓰면 영혼의 생명수가 넘쳐나지 않을까. 그 샘물로 반죽을 하면 점도 높은 반죽이 될 것 같다. 노년에 정신의 빵을 만들면서 혼자 잘 지내려고 노력한다. 고독도 잘 익혀 삶의 깊은 맛이 나게 하려고 한다. 그 또한 명작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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