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 칼럼] 실버타운 노인들의 수다..’어떻게 죽을까?’
2년째 되니까 깨끗한 천국 같은 실버타운의 은밀한 속살이 보인다. 어떤 노인은 “실버타운은 저승을 가는 대합실”이라고 했다. 그 말이 맞는 것 같다. 다른 세상으로 가는 노인들의 모습들을 종종 봤다. “노년에 남은 게 시간밖에 없다”고 말하던 할머니가 컴퓨터 포커게임으로 시간을 죽이다가 그 옆 바닥에 쓰러져 저세상으로 갔다.
노부부가 저녁을 맛있게 먹고 가더니 새벽녘 영감님이 이웃 약사 출신 부부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고 일어나 보니까 함께 잠들었던 늙은 아내가 시신이 되어 있다고. 앰블런스가 와서 조용히 그 할머니를 모셔갔다. 언제나 마지막 행진을 하는 것 같아 보이던 파킨슨병 앓던 노인이 어느 순간 그림자 같이 사라져 버렸다. 젊어서 이 나라의 넘버 투맨이었다던 노인이나 장군 출신들이 허리가 아파 몇 걸음을 걷지 못하고 신음을 한다.
공동식당에서 진보니 보수니 정치 얘기를 하고 선거 때 밤새 댓글을 썼다던 교장 출신 할머니도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휴거를 하듯 바로 다른 세상으로 가는 친구도 있다. 마라톤이 건강에 최고라고 하면서 매일 새벽 안개 낀 한강 변을 달리던 고교 동창이 심장마비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기도 했다.
젊어서 유명 탤런트들과 원없이 연애를 해봤다고 자랑하던 낭만파 선배도 요즈음은 투석을 하며 두문불출하는 방콕 삶이라고 카톡을 보내왔다. 부자였던 그는 “아무리 빌딩을 여러 채 가지고 호텔을 가졌어도 세월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하고 있다.
실버타운에서 밥을 먹는데 몇몇 노인이 다가와 ‘웰다잉’에 대해 내게 자신들의 의견을 말했다.
“마취제로 쓰이는 프로포플 두 병이면 고통 없이 조용히 저세상으로 갈 수 있는데 그게 정맥주사라 자기가 스스로 놓기가 어려워요.”
그 노인은 약학박사 출신이다. 또 다른 노인은 이렇게 말한다. “저승가기 쉬운 방법은 목을 매다는 거예요. 죽은 모습이 남에게 폐를 끼쳐서 그렇죠. 미리미리 줄을 준비해 둔 노인들도 있어요.”
옆에서 밥을 먹으며 얘기를 듣던 여성 노인이 말했다. “곡기를 끊고 조용히 굶어 죽는 것도 방법이예요.”
그 말에 다른 노인이 말한다. “그건 너무 시간이 걸려요.”
또 다른 노인이 제안했다. “여기가 바닷가인데 바다로 들어가면 되지 않을까요?”
“저한테는 그런 용기가 부족해요.” 프로포플을 주장하던 노인의 대답이었다. 또 다른 노인이 말한다. “지금은 이런저런 웰다잉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하는데 가장 중요한 건 치매가 걸리면 불가능해지죠. 그게 제일 무서워요.”
한 팔십대 노인이 그에게로 온 동창회의 카톡내용을 전달해 보여주었다. ‘자기 나름의 인생 마무리’라는 제목의 글로 이런 내용이 적혀 있었다.
‘인간은 죽음을 앞두고 가장 그다운 개성의 꽃을 피운다고 한다. 감사의 기분이 넘치면서 유종의 미를 거두는 그런 끝이었으면 좋겠다. 혼자 죽는 고독사라도 그것이 자유로운 생활의 끝이라면 후회없는 죽음으로서 손색이 없을 것 같다. 그러나 언제까지 발견되지 않는 건 피해야 하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 여러 장치를 준비해 둘 필요가 있다. 정들어 살던 집에서 누구에게도 부담을 주지 않고 혼자 조용하게 이 세상과 하직하는 건 나름 평온한 죽음의 한 모습이다. 인생의 라스트 신이 가까워질 때 자신의 살아온 자취, 생각, 희망, 남기고 싶은 말 등을 정리하고 장례를 미리 가족들에게 얘기해 두고 가는 건 어떨까’
노인들은 늙어서야 깨닫는 것 같기도 했다. 돈이 많다고 땅이 많다고 잘산다고 못산다고 잘생겨서 못생겨서 그런 것들은 삶과 상관이 없었다는 것이다. 돈이 많아도 나이 칠팔십이면 소용없고 건강해도 구십이면 의미가 없다고 한다. 두 다리로 걸어서 봄날 꽃구경 다니고, 이가 좋을 때 맛있는 음식집 찾아 다니고, 눈이 괜찮을 때 영화를 보고 책을 읽고 귀가 들릴 때 아름다운 음악을 감상하고 베풀 수 있을 때 남에게 베풀고 즐길 수 있을 때 마음껏 즐기는 게 잘 사는 최고의 방법이었다고 후회들을 하는 것 같다.
노인들의 수다…..남의 일이 아니네요.
제가 오늘 처음으로 엄변호사님의 칼럼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묵언 수행처를 찾다가 우연히 노년의 수행처가 걸렸나 봅니다. 변호사님의 칼럼을 지금 새벽에 읽고 있습니다. 님이 있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