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나는 이런 사람이 좋더라”

“나는 숨길 것도 없고, 또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그런 사람을 좋아한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자기 주위에 높은 성벽을 쌓고 자기 내부를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게 하려는 사람을 싫어한다.”

밤중의 실버타운은 적막하다. 창은 농도 짙은 어둠에 물들어 검은 거울이 된다. 거기에 내 모습이 비치고 있다. 책상 앞에 놓인 시계의 초침 소리가 시간의 벽을 두드리고 있다. 내가 나에게로 돌아가는 시간이기도 하다. 갑자기 요란한 스마트폰 벨소리가 고요를 흔들어 놓는다. 액정화면에 고등학교 시절 은사의 이름이 떴다.

“나야 바로 밑에 와 있어.”

선생님 나이가 여든 여섯쯤일 것이다. 제자 소식이 궁금하면 직접 전화를 하기도 하고 찾아가기도 하는 성격이다. 서울의 내 집 밑에 와 계시다는 것 같았다.

“선생님 저 지금 동해에 내려와 삽니다. 집에 없어요.”

내가 미안한 마음으로 말했다.

“아니야, 지금 실버타운 아래 주차장에 와 있다구.”

나는 깜짝 놀랐다. 이 적막한 밤에 선생님이 나를 찾아온 것이다. 오후 2시 이천에서 직접 차를 몰고 출발해 7시간만에 도착했다는 것이다. 저녁을 들지 않으셨다고 했다. 나는 급히 라면을 꺼내 끓여 들였다.

“이렇게 맛있는 국수는 처음이구만.”

노인이 된 선생님의 말이다.

“얼마 전 내가 근무했던 다른 고등학교에 초청을 받았어. 3학년 담임선생을 모시는 자린데 다 죽고 나 혼자만 남았더라구. 나는 요즈음 보고 싶은 제자들을 직접 찾아다니고 있어.”

나는 밤 늦도록 선생님과 이런저런 속 깊은 얘기들을 나누었다. 선생님은 마음 속 밑바닥까지 투명하게 들여다 보이는 좋은 사람이다. 산중의 호수처럼 맑고 깊이가 있다.

대학 졸업 무렵 겨울 눈덮인 가야산 원당암에서 만난 내 또래의 청년이 있었다. 밤하늘에 총총히 떠 있는 별을 보면서 우리는 돌같이 굳은 떡을 아궁이 속 남은 재에 구워 먹으면서 허기를 채운적이 있다. 그때 그가 내게 이런 말을 한 게 기억에 남아있다.

“우리 아버지는 남의 묘를 돌봐주는 댓가로 받은 땅 두 마지기로 가족들을 먹여 살렸죠. 나는 지독한 가난에 익숙해서 그런지 썩지만 않았으면 어떤 음식이라도 먹을 수 있어요. 내 소원은 고시에 합격해서 불고기집 하는 식당주인 딸 하고 결혼했으면 좋겠어.”

자기를 다른 사람 앞에 부끄럼 없이 드러내는 사람. 그는 좋은 사람이다. 그는 그해 합격하고 검사가 됐다. 세월이 흐르고 잡지 표지에 점잖은 검사장으로 사진이 난 그의 모습을 봤다.

고시공부 시절 합천의 청강사란 절에서 같이 겨울을 난 고시생이 있었다. 눈 덮인 산길을 함께 걸을 때 그가 이런 말을 했었다.

“나는 가난한 교사의 5형제 중 맏아들이다. 니는 서울법대를 나왔다는 게 얼마나 무거운 짐인줄 아나?”

그의 진솔한 말에 그가 지고 있는 고뇌의 무게가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았다. 그와는 서울의 왕십리 개천변 건물 지하독서실에서 같이 숙식 하면서 지내기도 했다. 그때 그가 내게 이런 고백을 했다.

“내가 요즈음 상사병이 걸렸다. 같은 독서실의 끝방에서 공부하는 여대생을 혼자 사랑하게 됐는데 사흘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직접 가서 말을 할 용기는 없고 해서 편지를 썼는데 네가 가서 그걸 전해다오.”

“그런 방자 노릇 하기 싫다. 이 나이에 그런 행동이 주책이고 냉혹하게 거절당하면 나이 어린 여자 앞에서 얼마나 멋 적고 부끄럽겠냐?”

“아이다. 제발 내 부탁을 들어주라. 내가 상사병이 걸려서 그런다. 여자 앞에서는 한 마디도 못할 것 같다. 정말 부탁한데이”

그는 싹싹 빌면서 거의 울상이 되어 내게 사정했다. 그 정직성에 휘말려 나는 맥없이 허락해 버렸다. 그리고 매몰차게 거절당하고 얼굴이 뿌예서 돌아온 적이 있다. 맑은 샘물같이 속을 드러내던 친구는 판사 생활을 하다가 일찍 세상을 떠났다. 그는 좋은 사람이라는 생각이다.

가난하다고, 힘들다고, 다 그렇게 솔직하고 담백하지는 않았다. 나는 얼굴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음울한 사람, 자기를 자꾸 감추려는 사람을 싫어했다. 따스한 정이 흐르지 않는 결백도, 가을 달처럼 교교하기는 하지만 차갑다. 그런 사람은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변호사를 시작할 무렵 옥수동 산 위 달동네에서 치과를 개업한 친구가 있었다. 그가 나를 자기 진료실로 데리고 가더니 구석 탁자 위에 놓인 대학노트를 펼쳐 보여주었다. 그날 찾아온 환자의 숫자와 받은 돈을 적어놓은 것 같았다.

“이것 봐라. 오늘 겨우 환자 세 명을 봤다. 이제 나는 곧 망할 것 같다.”

나는 숨길 것도 없고, 또 숨기려 해도 숨길 수 없는 그런 사람을 좋아한다.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자기 주위에 높은 성벽을 쌓고 자기 내부를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게 하려는 사람을 싫어한다.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낸 부자친구가 있었다. 어려서부터 그는 자신의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 자신의 사생활을 철저히 비밀에 붙였다. 남에게 단점이 드러나는 걸 극히 꺼리는 것 같았다. 그가 우정을 강조할 때마다 어쩐지 거리감이 들었다. 나는 그에게 “친구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고백하고 마음의 끈을 끊어버렸다.

어느 면에서 그와 나의 내면에는 이미 그 끈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자기 혼자만 우뚝서서 다른 사람을 내려다보는 사람들이 있다.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다. 나는 좋은 사람들만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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