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익의 시선] 함경도 보따리장사 할아버지의 추억

“살아오면서 재벌 회장이나 권력자를 만날 때면 속으로 그들에게 아무 것도 바라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나의 내면에서 할아버지는 내 걸음으로 나의 박자에 맞추어 또박또박 인생길을 걸으라고 했다. 할아버지의 기일날, 이렇게 혼자 글 향을 피우며 할아버지에게 감사의 절을 올린다.”

50년 된 무덤을 열었다. 할아버지의 뼈 조각들이 흙속에 묻혀 있었다. 다리뼈와 발뼈를 찾았다. 평생 길을 걷던 할아버지를 받쳐 주던 중심축이었다. 갈비뼈와 머리뼈를 찾아가지고 상자에 담았다. 나는 그 상자를 차의 뒷좌석에 싣고 할아버지에게 그동안 변화된 서울의 모습을 구경시켜 드렸다. 할아버지의 혼령이 차창 밖의 번쩍이는 고층빌딩들을 보면서 놀라는 것 같은 환각이 들었다.

나는 할아버지를 분골한 후 작은 나무상자에 담아 나의 아파트로 모셔 왔다. 손자 집에 얼마간 묵으면서 지내시는 것도 괜찮을 것 같았다. 바다가 보이는 아름다운 언덕 나무 아래서 할아버지와 이별할 예정이다. 50년 동안 할아버지의 묘를 돌봤다. 내가 죽으면 할아버지의 묘는 잡초가 우거지고 묘비만 공허하게 남을 것 같았다. 어느 날 포크레인의 삽에 밀려 쓰레기가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할아버지의 묘를 정리하는 것이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할아버지의 묘를 보살피라고 내 아이들에게 의무를 지워주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생각이다. 수많은 산을 차지하고 있는 봉분들을 본다. 화려하게 꾸민 무덤들이 많다. 막상 파보니까 무덤 속은 공허했다. 벌레들이 기어다니는 축축한 흙 속에 뼈 조각들이 뒹굴 뿐이었다. 할아버지는 묘지 속에 뼈로 존재하지 않았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살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지독히 가난한 집 둘째아들이었다. 소년 시절 먼지가 풀풀 이는 만주의 메마른 땅에서 하루 종일 일을 해도 밥을 먹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어린 나에게 만주에는 먹는 흙이 있다고 했다. 떡같이 찰진 고운 노란색 흙이라고 했다. 나중에야 그게 지독히 가난한 조상의 모습인 걸 알았다.

할아버지는 러시아로 도망 가서 목부(牧夫) 노릇을 했다고 내게 말했다. 할아버지는 열흘 정도 한글을 배운 것이 배움의 전부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평생 깊은 산골 마을을 돌아다니는 보따리 장사꾼이었다. 할아버지 모습은 독특했다. 평생 머리를 빡빡 깎았다. 광목으로 만든 한복바지 저고리에 조끼를 입고 보따리를 옆에 끼고 다녔다.

세상이 미국화된 1960, 70년대에도 할아버지는 죽을 때까지 고집스럽게 그런 복장이었다. 아마도 내가 일곱 살쯤이었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새벽 4시에 강원도로 떠나는 버스에 나를 데리고 탔다. 하얗게 얼어붙은 북한강변의 양평을 지나 비포장길을 털털거리며 달리던 버스는 점심 무렵에야 홍천읍에 도착했다. 차부 앞에는 국수를 파는 초라한 노점상이 있었다. 찌그러진 냄비에 퉁퉁 불은 삶은 밀가루 국수가 담겨있었다. 위에 파를 썰어 넣은 민간장이 약간 묻어 있을 뿐이었다.

할아버지는 그 좌판 앞에 앉았다. 나는 길바닥에서 먹는 게 창피한 느낌이 들었다. 할아버지에게 중국음식점에 들어가 짜장면을 사달라고 했다. 할아버지는 안 된다고 하면서 나를 기어이 옆에 앉혔다. 나는 화가 나서 볼이 가득 부어 있었다. 잠시 후 할아버지가 미소를 지으면서 내 손을 잡고 할아버지의 허리춤으로 가져갔다. 돈다발이 가득한 전대가 만져졌다. 할아버지는 지나가는 사람들을 가리키면서 내게 말했다.

“저기 양복 입고 넥타이 매고 멋을 내고 지나가는 사람들 보이지? 저 사람들 주머니를 보면 아마 돈이 없을 거다. 할아버지는 빈대가 들끓는 합숙소에서 자고 이런 국수를 먹어도 돈이 많아. 사람은 겉이 아니라 속이 꽉 차야 하는 거다.”

어린 나는 돈이 많은 할아버지가 왜 그런 궁상을 떠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할아버지는 홍천읍에서 구입한 약재와 노루 가죽을 보따리에 싸고 끈으로 멜빵을 만들어 등짐을 졌다. 보따리 장사꾼 할아버지가 취급하는 물품들이었다.

할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노천리로 가는 시골길을 걷기 시작했다. 찬 바람이 불고 회색하늘에서 눈이라도 쏟아질 것 같았다. 여우고개 산마루에서 내가 더이상 걷기 싫다고 화를 내고 길바닥에 앉아 떼를 썼다. 할아버지는 잠시 앉아 담배를 피워 물고 있다가 이런 말을 했다.

“기다렸다가 지나가는 트럭을 보고 사정해서 차를 타고 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 그냥 걷자. 조금만 참아라. 그러면 곧 끝이 나올 거다..”

할아버지와의 수많은 추억이 있지만 어린 시절 그 두 장면은 인식의 벽에 아직도 화석같이 남아 있다. 할아버지는 겉을 꾸미는 걸 싫어했다. 남의 신세를 지려고 눈치보지 말라고 했다. 할아버지의 교육 덕분에 나는 어떤 길거리 음식도, 나쁜 음식도, 부끄러워 하지 않고 먹을 수 있었다.

살아오면서 재벌 회장이나 권력자를 만날 때면 속으로 그들에게 아무 것도 바라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나의 내면에서 할아버지는 내 걸음으로 나의 박자에 맞추어 또박또박 인생길을 걸으라고 했다.

할아버지의 기일날, 이렇게 혼자 글 향을 피우며 할아버지에게 감사의 절을 올린다.

One comment

  1. 살아 오면서 재벌회장이나 권력자를 만날 때면 속으로 그들에게 아무 것도 바라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아 할아버지…..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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