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 ‘귀뚜라미 우는 소리’ 홍사성

둥근 달 말없이 혼자 떠있는 겨드랑이 서늘한 밤이었다.

잠시 열어둔 창문 사이로 귀뚜라미 한 마리 들어왔다. 책상 위에 올라앉아 귀뚤거리기에 무슨 말 하는지 들어봤더니 어느새 가을이 왔다고, 지난 여름은 얼마나 잘 살았냐고, 후회되는 일은 없느냐고, 사과나무에 사과는 잘 익었냐고 묻는 것 같았다. 기특하다 싶어 한참 더 귀 기울였더니 세월은 강물처럼 흘러가는 거라고, 지수화풍 흩어지면 어디로 갈 거냐고, 그런데도 아직 끙끙댈 사연 남았냐고, 제법 철학적인 얘기도 늘어놓다 돌아갔다. 둥근 달 말없이 혼자 떠있는 겨드랑이 서늘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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