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십자가에서 죽지 않으면 부활의 영광을 맛볼 길도 없습니다”
예레미야 14장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복을 구하지 말라”(렘 14:11)
복을 구하지 않으면 무엇을 구해야 할까요? 복을 구하러 신을 찾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복을 구하지 않을 것이라면 인간이 굳이 신을 찾을 일도 없습니다.
“너는 이 백성에게 은총을 베풀어 달라고 나에게 기도하지 말아라.”(렘 14:11, 새번역) “너는 이 백성을 너그럽게 보아달라고 나에게 빌지 마라”(렘 14:11, 공동번역)
자비를 구하지도 말고 은혜를 구하지도 말아야 한다면 무엇을 구해야 할까요?
사태의 심각성을 알게 해달라는 것이 먼저입니다. 내 죄가 어떤 죄인지를 깨닫게 해달라는 것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무슨 잘못을 저질렀는지 모르고 구하는 용서만큼 공허한 것도 없습니다.
“그들이 금식할지라도 내가 그 부르짖음을 듣지 아니하겠고 번제와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그것을 받지 아니할 뿐 아니라 칼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내가 그들을 멸하리라”(렘 14:12)
금식도 소용 없고 번제와 소제도 소용이 없습니다. 본질을 잃은 맹목적 열심은 도리어 상황만 악화시킬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유다백성들에게 궁극적으로 전하고자 하시는 메시지는 ‘망해보라’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불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는 수치를 당해보라는 것입니다.
망해봐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잃어봐야 비로소 깨닫게 되는 소중함이 있습니다. 그걸 발견하고, 그걸 깨닫는다면 망하는 게 망하는 게 아니고 잃는 게 잃는 게 아닙니다.
벼랑에서 떨어져야 내 등에 날개가 달려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있습니다. 추락하는 상황에서만 배울 수 있는 날갯짓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때로는 우리를 벼랑 끝으로 몰고 가십니다. 떨어지면 죽는다고, 제발 한 번만 살려달라고 절규하지만 하나님은 듣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벼랑 끝으로 밀어버리십니다.
십자가란 그런 자리입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으면 모든 것이 끝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죽지 않으면 부활의 영광을 맛볼 길도 없기에 예수님은 골고다 언덕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죽는 게 죽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사는 것 같이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