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몰라서 다행인 하나님의 뜻
예레미야 21장
“이 도성 안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전쟁이나 기근이나 염병으로 죽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너희를 에워싸고 있는 바빌로니아 군대에게 나아가서 항복하는 사람은, 죽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람은 적어도 자신의 목숨만은 건질 것이다.”(렘 21:9)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기면 크리스천들은 기도 부탁을 하곤 합니다. 그러면 형제자매가 조심스레 꺼내놓은 기도제목을 가지고 우리는 기도합니다.
남유다의 시드기야 왕도 국가의 풍전등화 상황에서 예레미야에게 기도 부탁을 했습니다. 그의 기도제목은 무엇이었을까요? 국가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도와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군대가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고 있는 상황에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태도입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예레미야를 통해 주신 말씀이 시드기야의 기대와 완전히 달랐다는 것입니다.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이 망하고, 귀중한 예배 처소인 성전이 무너지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방신을 섬기는 사람들에게 패배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응답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내 기대와 다를 수 있고, 하나님은 내가 원하던 길과 전혀 다른 길로 인도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 상황 속에 있어보면 그렇게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나는 회사에 취직하고 싶은데 하나님의 뜻은 창업이었다’ 이 정도라면 내 길과는 다른 하나님의 길을 어렵사리 인정할 수는 있겠지만, 우리 집이 망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어떻겠습니까? 회사가 부도나서 직원들의 생계에 당장 문제가 생기는 경우라면 어떨까요?
남유다의 상황에 비슷한 예를 좀 더 들자면, 우리나라가 일본의 식민지배 아래 들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고, 독립운동이 아니라 투항운동을 하라는 응답을 받는다면 기분이 어떨까요?
어쩌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주어진 가장 큰 축복은 결정적인 하나님의 뜻이 가려져 있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나에게 주어진 하루하루를 전쟁처럼 살다가, 한참을 지나 치열했던 지난 날들을 돌아보면서 하나님의 뜻을 더듬어 발견하도록 하신 것, 그것은 인생의 무게를 감당하며 살게 하시는 하나님의 배려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