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하나님을 걸고 하는 맹세

“비지니스를 하거나 학생을 유치하거나 인력을 동원하는 일에 기독교 정신이나 선교 사역같은 것을 내걸고 있다면 하나님의 명의를 도용하는 것은 아닐까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할 일입니다.”


예레미야 5장

“그들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할지라도 실상은 거짓 맹세니라”(예레미야 5:2)

우리는 살아가면서 다양한 종류의 맹세를 합니다. ‘맹세했다’는 표현은 잘 쓰지 않지만 다짐, 결단, 서약, 계약과 같은 것들이 다 맹세의 일종입니다.

다시는 이렇게 살지 않겠다며 스스로 다짐하는 맹세도 있고, 결혼식에서 신랑과 신부가 평생 사랑할 것을 약속하는 서로간의 맹세도 있습니다. 부동산 매매 계약도 맹세이고 은행에서 돈을 빌릴 때도 원리금 상환에 대한 맹세를 합니다.

맹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신뢰입니다. 그 맹세를 어떻게 믿을 수 있냐는 것이 관건입니다. 그래서 맹세의 진정성을 입증하기 위해 담보를 설정합니다.

돈을 빌릴 때, 집을 담보물로 설정하는 경우는 물적 담보입니다. 만약 내 맹세를 보증해줄 담보물이 내게 없을 때, 제 3자가 내 맹세의 진정성을 보증해주기도 합니다. 인적 담보입니다.

성경에 보니까 영적 담보도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을 걸고 맹세하는 경우입니다. 실제로 구약에는 영적 담보제도의 다양한 사례가 등장합니다. 서원 제도가 대표적이고, 다윗과 요나단은 하나님을 사이에 두고 맹세했습니다. 그리고 많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약속하며 다짐합니다.

문제는 명의 도용입니다. 예레미야서는 사람들에 의해 영적 담보제도가 악용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는 하나님의 고발입니다. “그들이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할지라도 실상은 거짓 맹세니라”

급기야 예레미야 44장에서는 하나님께서 영적 담보제도의 폐지론을 주장하기까지 하십니다. “이제는, 주님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한다 하면서 나의 이름을 부르지 못하게 하겠다”(예레미야=렘 44:26, 새번역)

예수님은 이 폐지론에 못을 박으셨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마태복음 5:34)

하나님을 걸고 맹세하는 행위는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해 하나님의 명의를 도용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는 순간 하나님의 권위가 내 욕심의 도구와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신뢰를 잃었으면 하나님의 이름을 걸면서까지 맹세해야 할까요? 오늘날 우리는 구약시대의 유대인들과 같은 방식으로 맹세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비지니스를 하거나 학생을 유치하거나 인력을 동원하는 일에 기독교 정신이나 선교 사역같은 것을 내걸고 있다면 하나님의 명의를 도용하는 것은 아닐까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할 일입니다.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