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불안과 강박, 그리고 존재의 용기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이사야 41:10) <사진 장지룡 독자 제공>


이사야 41장

인간의 두려움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공포(fear)와 불안(anxiety)입니다. 공포란 특정할 수 있는 구체적인 대상에 대해 느끼는 두려움입니다. 예를 들어 높은데 올라갔을 때, 호러 영화를 볼 때, 물에 빠졌을 때, 교통사고가 나는 순간 이런 경우에 느끼는 감정이 공포입니다. 그래서 공포는 두려움을 주는 대상을 파악하고 제거하는 방법으로 극복이 가능합니다.

반면에 불안은 구체적인 대상이 없습니다. 아무런 외부적 자극이 없는 상태에서도, 별일 없이 평안하게 지내는 상황에서도 느낄 수 있는 것이 불안입니다. 불안하기는 한데 왜 불안한지, 무엇 때문에 불안한지 알 수 없는 것이 불안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안은 어떤 행동을 하거나 환경에 변화를 준다고 해도 좀처럼 해결되지 않습니다. 다만, 왜 하는지도 모르는 행동들을 강박적으로 반복할 뿐입니다. 단적인 예로 손톱을 물어 뜯거나, 다리를 떨거나, 입술을 깨물기도 하고, 이유 없이 분주합니다. 지나치게 자주 씻기도 하고, 심한 경우에는 반복적으로 자해를 하기도 합니다.

인간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누구나 불안합니다. 우리가 불안한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존재하는 한 불안합니다. 왜냐하면 존재는 언제나 존재하지 않을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죽어서 존재하지 않게 될까봐 불안하고, 내 존재가 무시 당할까봐 불안하고, 내 존재가 잊혀질까봐 불안합니다. 행복한 순간에도 내가 누리는 행복이 사라질까봐 불안하고, 사랑을 하는 순간에도 사랑이 떠나갈까봐 불안합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말로 다 할 수 없는 기쁨을 주기도 하지만, 부모는 사랑하는 자녀에게 혹시 무슨 일이 생기지 않을까 늘 걱정입니다. 인간은 사랑하면서도, 행복하면서도 동시에 불안합니다. 이런 불안을 존재론적 불안이라 합니다.

인간이 존재하는 한 필연적으로 불안하기에 내 존재를 굳게 붙들어 줄 다른 존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불안은 내 존재를 붙들어주는 다른 존재를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습니다.

성경은 내 존재를 붙들어주는 존재 너머의 존재를 소개합니다. 스스로 존재하는 분의 존재는 불안을 극복하는 근원적 힘이고 우리 존재의 용기이십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이사야 4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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