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묵상] 하나님 얘기로 포장된 자기 자랑
이사야 39장
“히스기야가 사자들로 말미암아 기뻐하여 그들에게 보물 창고 곧 은금과 향료와 보배로운 기름과 모든 무기고에 있는 것을 다 보여 주었으니 히스기야가 궁중의 소유와 전 국내의 소유를 보이지 아니한 것이 없는지라”(이사야 39:2)
히스기야는 보여주고 싶어 안달이 났습니다. 자랑하고 싶었습니다. 죽을 병에 걸렸다가 완치 판정도 받았겠다, 수명도 연장됐겠다, 떠오르는 강대국 바벨론에서 축하 사절단도 보냈겠다, 그는 기분이 최고였습니다. 얘기하고 싶고 보여주고 싶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게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원하는 대학에 붙어도 그렇고, 좋은 직장에 취직을 해도 그렇습니다. 상을 받아도 그렇고, 집이나 차를 사도 그렇습니다. 심지어 어디 괜찮은 식당에 가서 밥 한끼를 먹어도 그렇습니다.
문제는 목에 힘주고 자랑만 하기에는 격이 떨어지는 것 같고, 재수가 없어 보이기도 하고, 교만하다는 얘기를 들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랑 아닌 듯 자랑하는 다양한 기술들이 존재합니다.
기독교인이 자기 자랑을 자랑 아닌 듯 얘기할 때 클리셰처럼 활용되는 표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해주셨다’, ‘하나님의 은혜다’, ‘기도 응답이다’, ‘하나님이 정말 기가 막히시다’와 같은 말들입니다.
자랑은 할 수도 있습니다. 좋은 일이 있으면 과시하고 싶은 건 인지상정입니다. 문제는 자랑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빙자하여 나를 과시하고 싶은데 있는 것 아닐까요?
히스기야가 바벨론 사절단에게 자신의 병이 어떻게 낫게 되었는지 얘기 안했겠습니까? 나라를 투어시켜 주면서 이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을 얘기 안했겠습니까? 하나님 얘기를 했겠지만 그게 결국엔 자기 자랑이었다는 것입니다.
히스기야의 행동이 하나님 보시기에 옳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질책의 메시지를 전달하십니다. 하지만 히스기야는 끝까지 정신을 못 차립니다.
우리는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은혜를 주신 하나님에 대해 얘기할 수도 있고 그 은혜를 받은 나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습니다. 겉보기에는 같지만 완전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나의 교만과 자기 자랑을 솔직하게 표현할 줄 아는 것이 겸손한 척하다가 자신이 정말 겸손한 줄 착각하게 되는 것보다 나을 수 있습니다. 자는 사람은 깨울 수 있어도 자는 척하는 사람은 깨울 수 없듯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