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 70주년, 피로 지킨 ‘자유민주’

27일 경북 칠곡군 다부동 전적기념관에서 열린 ‘이승만·트루먼 대통령 동상 제막식’에서 이철우 경북도지사, 조갑제 동상건립추진모임 대표, 강승규 대통령실 시민사회수석, 김재욱 칠곡군수, 이 전 대통령 양자 이인수 박사 등 내빈들이 제막 후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다부동 전적지, 백선엽 동상 이어 이승만 트루먼 동상도 제막

일제에서 벗어난 신생국의 자유민주 지키려 공산진영과 혈투

희한한 기념일이다. 전쟁에서 이긴 것도 아닌, 멈춘 날을 기념한다. 이승만 대통령의 반대로 전쟁 당사국인 대한민국은 정전협정에 아예 참석하지 않는다. 당사국이 빠진 채, 정전협정은 체결됐다.

종군기자였던 고 최병우는 조인식을 취재했다. ‘기이한 전투의 정지, 당사국 제쳐놓은 결정서로 종막’이라는 제목의 인상적인 글을 남겼다. “백주몽과 같은 11분간의 휴전협정 조인식은 모든 것이 상징적이었다. 너무나 우리에게는 비극적이며 상징적이었다. 학교 강당보다도 넓은 조인식장에 할당된 한국인 기자석은 둘뿐이었다…참전하지 않은 일본인 기자석도 10명을 넘는데, 휴전회담에 한국을 공적으로 대표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볼 수 없었다. 이리하여 한국의 운명은 또 한번 한국인의 참여 없이 결정되는 것이다.”

건국, 2년도 지나지 않아 북의 남침으로 빚어진 참화의 중단이었다. 참으로 허무했다. 70년 전 포성이 멈췄을 때 협정에 조인한 클라크 사령관은 탄식했다. “나는 승리하지 못하고 정전협정에 조인한 첫 미국 사령관이 됐다.”

38선에서 시작한 전쟁은 38선 부근에서 멈춘다. 그후 남과 북은 상반된 길로 달렸다. 누구나 알 수 있듯 남쪽의, 자유민주의 승리다. 1950년 6월 25일, 한반도는 참화의 도가니로 변했다. 소련의 재가를 받은 북의 기습으로 분단에 이어 생떼 목숨들이 피지도 못한 채 졌다. 한민족, 남과 북 모두에 깊고 큰 상흔을 남겼다.

경북 칠곡 다부동 전적지에는 동상이 세워졌다. 6.25 때 나라 지킨 이승만 대통령과 트루먼 대통령의 동상이다. 전쟁을 이겨낸 건 참전장병들의 희생 덕분이다. 앞서 트루먼 주도로 UN이 적시 참전결정을 내리지 못했다면 한반도는 적화됐을 거다. 이승만과 트루먼은 한미동맹을 맺었고, 이는 대한민국 번영의 주춧돌이나 다름없었다. 다부동 전적지에 동상이 세워진 까닭이다.

방한한 콜롬비아 참전대표단은 “농지개혁이야말로 기적 같은 번영의 토대”라고 했다. 6.25 직전, 농지개혁으로 이승만은 나라를 도탄에서 구했다. 농지개혁은 자유민주와 공산 진영간의 대결장을 방불케했다. 북이 먼저 1946년 ‘무상몰수, 무상분배’로 농지개혁을 했다. 말은 무상이었지만 북 농민에겐 소유권이 주어질 수 없었다,

“공산당을 막으려면 농지개혁을 빨리 해야 해!” 이승만은 입버릇처럼 이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1950년 3월, 지주가 수확량 150%를 보상받고, 5년 분할상환하는 농지개혁법이 공포됐다. 북과 달리 남의 농민은 농지를 직접 소유했다. 번영의 기틀인 사유재산제 토대가 마련된 거다. 농지개혁 당시 지주들은 지가증권을 받았다. 그러나 3개월 만에 전쟁이 일어났다.

지주들은 1만%가 넘는 초인플레에서 증권 가치가 떨어지자 팔아서 생활비로 썼다. 이를 신흥기업가들이 사서 모았다. 삼양·두산·선경 등이 입수한 증권으로 일제가 놓고 간 자산이나 기업을 사모았다. 농지개혁으로 산업세력의 주체도 교체된 셈이다. 그러니 노무현 전 대통령도 이승만의 농지개혁을 ‘획기적이고 역사를 바꾼 사건’이라고 평했다.

우남 이승만은 4.19로 하야해야만 했던 집권 말의 실정과 과오를 씻을 수 없다. 하지만 자유민주 건국과 6·25 남침극복 및 한미동맹, 농지개혁이라는 뚜렷한 발자취도 남겼다. 한국은 압축 성장으로 산업화·민주화에 동시 성공했다.

세계 주요 7국(G7) 가입을 거론할 정도로 컸다. ‘단군 이래 최고로 잘 산다’는 말이 지나치지 않다. 반면 북은 세습독재로 주민이 굶주리는 최빈국이다. 특별구역인 수도 평양에서도 아사자가 나왔다. 정전 70년이 흐른 뒤 역사가 웅변하고 있다. 6.25는 한국이 승리한 전쟁이라고 말이다. 대한민국은 경제대국, 문화강국으로 우뚝하다.

북한 중국 러시아도 ‘전승절’에 성대한 기념식을 했다. 우크라이나와 전쟁 중인 러시아는 국방장관을 필두로 한 대표단을 평양으로 보냈다. 중국 대표단도 속속 평양에 도착했다. 이들 참관 아래 북은 열병식도 한다. 북·중·러에 맞서 한미일도 뭉쳐야 한다. 잇단 미사일 발사와 핵 으름장에 결연히 맞서야 한다. 북이 중·러와 연대를 강화하는 움직임이다.

동북아에 예사롭지 않은 조짐이 감지된다. 한미일 3국 간 철통같은 연대로 대비해야 한다. 김정은은 전승절을 앞두고 열사묘를 참배했다. 김정은은 열사묘에서 “자주적인 강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영원히 승승장구…” 운운했다.김정은은 중국 인민지원군 열사능원도 찾았다. 6.25 전쟁에 참전해 숨진 중국군인들의 묘다. 마오쩌둥의 장남 마오안잉도 여기에 묻혀 있다. 김정은은 그의 묘에 꽃을 올리며 “조중 인민단결의 역사와 전통은 굳건히 계승될 것”이라고 했다.

정전 70주년 기념식은 부산에서 열렸다. 식이 열린 ‘부산 영화의 전당’은 미군 스미스 특수부대를 태운 수송기가 착륙한 비행장 터에 세워졌다. 유엔군이 한국 땅에 첫 발을 내디딘 수영비행장 터에서다. 73년 전 변방의 나라를 지키기 위해 피흘린 UN군 희생과 정전의 뜻을 되새겨야 한다. 수영비행장에 도착한 스미스 특임대는 불과 나흘 만에 부산에서 경기도 오산까지 이동해 죽미령 일대에서 북한군과 교전했다.

오산 전투는 UN군이 북과 벌인 첫 전투였다.기념식에는 참전국 대표와 용사 및 가족들이 함께했다. 데임 신디 키로 뉴질랜드 총독 등 25개국 170여 참전대표단, 유엔참전용사와 후손, 6·25참전유공자, 정부와 군 주요 인사 등 4000여명이 참석했다.

22개 유엔 참전국 국기와 태극기, 유엔기가 들어오면 방한한 유엔 참전용사 62명도 의장대 호위를 받으며 입장했다. ‘영웅의 길’ 퍼레이드가 펼쳐지는 거다. 공연 ‘그날의 기억’은 유엔군 헌신을 재구성한다. 재연배우가 스미스 부대의 첫 느낌을 이야기한다. 소년소녀 합창단은 당시 유엔군과 야전병원 환자들에게 불러줬던 ‘오빠 생각’을 부른다. 18세, 기관총병으로 참전한 도널드 리드(미국) 옹에게 국민포장이 수여됐다. 소총수 고 토마스 콘론 파킨슨(호주) 옹에게는 국민훈장 석류장이 추서됐다.
리드 옹은 한국전참전기념비재단 재무국장을 역임, 기념비 건립에 기여했다.

파킨슨 옹은 호주 참전용사협회장을 지냈으며 기념비 건립을 주도했다. 2019년 89세로 영국 ‘브리튼스 갓 탤런트’에서 우승한 콜린 새커리 용사가 아리랑을 열창했다. 유엔소년소녀 합창단 등 100명의 합창단도 함께 불렀다. 앞서 전날 감사 만찬도 열렸다.

유엔 참전국 대표와 ‘영웅의 제복’을 착용한 참전용사가 함께 나오는 ‘히어로즈 마치(Heroes March)’가 시작이다. 박민식 장관 환영사에 이어 ‘평화의 사도메달 수여’, ‘세상에 단 하나뿐인 영웅의 신발(One & only Heroes Shoes)’ 착화식 순이었다. 평화의 사도 메달은 찰스 에드워드 아모스 등 13명에게 수여됐다. 영웅의 신발은 국군과 유엔참전용사의 헌신에 감사드리기 위해 맞춤형으로 제작했다.

참전용사 64명은 방한한 24일 3D스캔으로 발을 측정해 신발을 만들었다. 실종된 전우를 찾다 지뢰 폭발로 부상한 호주 용사 어니스트 홀덴이 대표로 신었다. 몇 달 전, 국가보훈부는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에 한미 6·25전쟁 참전용사 10대 영웅의 영상을 송출한 바 있다.

다부동에 두 대통령의 동상을 제막한 데 이어 ’10대 영웅들 동상’도 만들면 어떨까? 맥아더 유엔군 총사령관, 밴 플리트 부자, 윌리엄 쇼 부자, 딘 헤스 공군 대령, 랄프 퍼켓 주니어 육군 대령, 김영옥 미국 육군 대령, 백선엽 육군 대장, 김두만 공군 대장, 김동석 육군 대령, 박정모 해병대 대령. 한국과 미국의 10대 참전 영웅들을 기리자는 뜻에서다.

북의 기습 남침으로 3년간 남북의 한민족이 겪었던 참극을 가슴 깊이 새겨야 한다. 전쟁 비극을 다시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정전 70주년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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