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수 칼럼] 흐르는 강물처럼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 포스터

문득 예전에 감명 깊게 본 영화 한 편이 떠오른다. “삶은 마치 흐르는 강물과 같고, 사랑하는 사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어도 완전히 사랑할 수 있다”는 인생의 철학이 담겨 있던 이 영화의 대사를 되뇌는 요즘이다.

지난 22일 밤 베트남야구협회에서 한 통의 이메일을 받고 많은 생각에 잠겼다. 지난 10년간 라오스와 베트남을 오가며 야구를 보급하고 그들과 함께 해온 수많은 시간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

무모할 정도로 척박한 환경과 가능성이 희박했던 라오스의 야구전파. 시작이라는 인식조차 정확히 인지하지 못한 채 시작된 라오스에서 2017년 7월 3일 라오스야구협회가 설립되는 꿈같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쓰기 시작했다.

모든 것들이 불가능하고 야구전파에 대한 가능성을 아무도 믿지 않았던 상황에서 오로지 “Never ever give up“의 인생철학을 지키기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려왔던 내 신념이 이런 놀라운 기적을 만들어 내었다.

또다시 베트남에 들어가 2021년 4월 10일 베트남 최초로 야구협회를 창설하고 국가대표를 뽑는다고 할 때도 주위에서 라오스에서 야구를 보급했던 것처럼 똑같은 이야기들이 들려왔다.

“불가능한 일을 왜 사서 고생하느냐”며 말리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았다. 그래도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 포기하지 않고 지금껏 달려올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 야구인이 아닌 단지 야구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비전문가인 두 사람 덕분이었다.

이만수 감독과 제인내 대표(오른쪽) 가족 

라오스는 제인내 대표, 베트남에는 이장형 선생 덕분이었다. 전문가도 쉽게 행동으로 옮길 수 없었던 일들을 이들은 아무 욕심 없이 오로지 자신들이 좋아하고, 사랑하는 야구를 어떻게 해서라도 젊은 청소년들에게 알리고 또 가르쳐 주고 싶은 간절한 마음으로 행했다. 이렇게 이들과 함께 시작했던 우공이산(愚公移山)이 지금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이장형 베트남야구지원단장(왼쪽)과 이만수 감독

나는 이들을 도와주는 조력자의 역할을 할 뿐이다. 야구인이라면 너무나 당연하게 해야 할 의무이자 책임이기에 이들의 요청을 포기하거나 외면할 수가 없었다. 이들이 없었다면 인도차이나반도에 야구를 보급하는 무모한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다고 나는 확신한다.

53년 동안 오로지 야구인으로 끊임없이 달려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 학생 선수와 프로 선수 그리고 미국 메이저리그와 한국 프로 야구팀에서의 지도자 생활까지… 오랜 세월 야구인으로 살았으면서 여전히 야구를 통해 동남아시아에 야구를 전파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평생 운동을 업(業)으로 또한 야구인으로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대중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순탄하거나 화려하지 않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명성을 얻었던 선수 생활에 열광했던 대중들이 참 많았다.

그러나 기량이 떨어지고 세월의 무게에 후보선수로 전락하고 그들의 눈에서 보이지 않게 되면 한순간 안개 걷히듯 사라져 버리는 것이 세상의 인기인 것이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새로운 것들이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환갑이 넘은 나이에도 야구를 통해 국내뿐만 아니라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 내가 가진 재능을 기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진정으로 야구를 사랑하기 때문이다. 유니폼을 벗고 현장에 없어도 그리고 나를 알아주지 않고 세상 사람들이 등을 돌려도 나를 강하게 붙잡아 준 것은 ‘야구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었다.

지난 50년 동안 수도 없는 고난과 역경이 있었지만 포기하지 않고 다시 일어설 수 있었던 것 또한 야구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야구를 하는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 내 깊은 내면에는 작은 물이 흘러 모여 어느새 넓은 바다가 될 만큼 사랑과 열정으로 가득 차게 된 것이다.

지금이 있기까지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나를 지켜준 인생철학 “Never ever give up“을 되뇌면서 여기까지 달려올 수 있었고 앞으로도 달려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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